[거부권 정국] ① 양곡법·방송법·노란봉투법…巨野 입법 폭주 끝이 안 보인다
입력 2023.04.01 00:30
수정 2023.04.01 00:52
169석 앞세운 민주당, 당리당략 위한 법안 남발
"법사위원장 속한 與가 법안 막아" 명분 내세워
본회의 직회부 등 온갖 꼼수 동원해 '입법 독재'
압도적 과반 의석(169석)을 앞세운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 행태가 멈출 줄 모른다.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전문가들까지 반대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본회의 직회부로 단독 처리하는 등 논란이 되는 법안들을 일방 처리하거나, 강행 처리를 예고하고 있다. 거대 야당이 의회 권력을 악용, 당리당략을 위한 법안을 남발하고 온갖 꼼수를 동원해 '입법 독재'를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이 지난달 23일 3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검토 중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쌀값이 전년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모두 매입하도록 한 내용이 핵심이다. 개정안 시행 이후 벼 재배 면적이 증가할 경우 매입 의무화 요건이 충족돼도 매입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민생 1호 법안'이자, 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건너뛰고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방식으로 처리한 첫 사례다. 국회선진화법에는 상임위에서 이견이 큰 쟁점 법안은 최장 90일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논의하도록 돼 있다. 안건조정위는 제1교섭단체와 그 밖의 소속 의원 3대3 동수로 구성되며, 4명의 찬성이 있어야 법안을 의결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양곡관리법을 처리하면서, '무늬만 무소속'인 윤미향 의원을 동원해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했다.
윤 대통령은 그간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무제한 수매라고 하는 양곡관리법은 결국 우리 농업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등의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여당도 이 법안이 시행되면 쌀 생산량은 더욱 늘어나고 그에 따라 정부는 의무적으로 쌀을 더 사들여야 해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반대해왔다. 장기적으로 쌀값 하락을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반대 이유 중 하나였다.
온갖 꼼수를 동원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오는 4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자, "정부여당이 우리 농민과 농촌을 짓밟을 태세"라고 여론전을 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쌀값 안정화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식량 안보전략 포기 선언이나 마찬가지"라며 "후쿠시마 농산물은 사줄 수 있어도 우리 농민의 쌀은 사줄 수 없다는 말이냐"고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도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 등 관련 3법의 본회의 직회부 안건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3법은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안으로 각각 KBS, MBC, EBS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를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공영방송 이사를 현행 9~11명에서 21명으로 늘리고 미디어 관련 학회, 기관 및 단체로부터 추천을 받도록 한 것이 골자다. 또 성별·연령·지역 등을 고려해 100명이 참여하는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신설, 이 추천위가 3인 이하 복수로 사장 후보를 추천하도록 했다.
여당은 새롭게 이사 추천권을 얻게 되는 단체들이 친민주당, 친민노총 성향이라며 "방송장악법"이라고 반대해왔다. KBS노동조합(1노조)과 MBC노동조합(3노조)도 "민주당과 언론노조의 공영방송 영구장악법"이라고 비판 대열에 섰다. "시청자위원회 등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는 단체들은 사실상 친민주당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보수 언론시민단체 미디어연대의 지적도 제기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현 정부가 공영방송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정치적 독립을 위해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전원이 퇴장한 가운데 자당 소속 11명과 지난해 성비위 의혹으로 민주당에서 제명된 무소속 박완주 의원의 찬성으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안건을 의결했다.
이후 민주당은 지난달 28일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방송법 개정안과 미래산업 및 디지털 포용 관련 법안 제정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서는 특히 KBS 수신료 인상을 용이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 여당이 'KBS 방탄법'으로 규정한 한국방송공사법안 등이 집중 논의됐다. 민주당은 이 자리에서 "수신료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공영성이 떨어져 선정적 방송을 하게 된다"며 KBS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이뿐이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달 9일에는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간호법 제정안 등 7개 법안에 대한 본회의 직회부 요구 안건을 단독으로 통과시킨 바 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등 노동단체나 화물단체에 특혜를 주는 법안도 의석수로 밀어붙일 것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무리한 입법 추진의 명분으로 법사위원장을 차지한 국민의힘이 법안을 막고 있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정당한 절차를 거친 법률 처리를 국민의힘이 회피하고 거부하면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민주당의 이러한 기세는 위헌적 법안을 서슴없이 내놓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서 최기상 의원 등 민주당 의원 44명은 대법원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헌법 104조에 따르면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도록 돼 있는데,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기 전 대법원에 대법원장 후보 추천위를 신설해 후보자를 추천하자는 것이다.
야권 성향의 현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기 종료를 6개월 앞둔 가운데 사실상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박탈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헌법상 대법원장 임명권을 민주당이 빼앗아서 좌파가 주요 법원 요직을 영원히 장악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권성동 의원도 페이스북에 "시민단체와 야합하는 위원회 정치, 무리한 알 박기 등 민주당 폐습의 결정체"라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