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⑥] 해외 연금개혁 배워야…핵심은 ‘최대의 재정 안정화’
입력 2023.03.23 07:00
수정 2023.03.23 07:00
독일, 공적연금 축소하고 사적연금 보완 도입
스웨덴, 급진적 구조개혁 한방에 재정 안정화
일본, 보험료 인상·급여 하향 등 모든 방법 동원
칠레, 민간연금·공공연금 등 선택지 다양화
데일리안은 지난 <연금개혁 ①~⑤ 시리즈>를 통해 우리나라의 연금 개혁과 풀어가야 할 과제 등을 짚어봤다. 연금 문제는 워낙 ‘뜨거운 감자’이다 보니 외국에서도 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동일하게 사회적 갈등이 빚어졌다. 심지어 권력이 교체되는 일도 적잖게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스웨덴, 일본 등 선진국들은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처지처럼 심화하는 저출산·고령화 및 경기침체의 상황에서 1990년대부터 공적연금을 지속해서 개혁해 재정 안정화를 이뤄냈다.
독일은 1889년 인류 역사상 최초 공적 연금제도를 도입한 나라다. 당시 평균수명은 47세,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5세였기 때문에 연금재정에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기대수명이 늘고 출산율은 줄어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연금 개혁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독일은 1989년에서 2017년 사이 11차례 연금법을 고쳐가며 공적연금을 개혁했다.
독일 연금 개혁의 핵심은 사적연금인 ‘리스터 연금제도’ 도입이었다. 2001년 시행한 리스터 연금은 공적연금의 급여 수준을 낮춰 재정 안정화를 도모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보험료를 지원하고 세금공제를 해주면서 원금을 보장해주는 형태의 사적연금이었다.
전체 노후소득보장체제를 단층의 공적연금 중심에서 다층 노후소득보장제도로 전환한 것이다. 은퇴자 증가, 노동인구 급감 등 인구구조의 변화를 겪은 독일은 이를 통해 공적연금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스웨덴은 공적연금을 대상으로 매우 강력한 재정 안정화 개혁을 이뤄낸 것으로 유명하다.
전체 노인 대상의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의 이중 공적연금 체제로 매우 관대한 노후소득보장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북유럽 복지선진국 스웨덴도 경제위기와 저출산·고령화의 파고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에 스웨덴은 1999년 기초-소득비례연금의 이중 체제 공적연금 구조를 부과 방식의 명목 확정기여형(Income Pension) 연금과 완전적립방식의 확정기여형 연금(Premium Pension) 구조로 전면 개편했다.
명목 확정기여 방식의 연금은 개인이 부담한 보험료에 일정 수준의 이자를 추가한 금액만큼 연금으로 받아 가는 제도로, 연금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효과를 발휘했다.
여기에 스웨덴은 공적연금에 자동조정 장치까지 가미해 인구학적 요소를 반영하는 식으로 급여 수준을 하향 조정했고, 연금수급 연령도 상향 조정했다. 이렇게 단 한 번의 급진적 구조개혁으로 스웨덴은 공적연금의 재정안정을 이뤘다.
스웨덴은 1999년 개혁으로 공적연금 보험료를 18.5%로 고정한 이후 현재는 더는 보험료율 인상을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자동조정 장치로 급여 수준을 인하하는 방법으로 연금재정 안정화를 도모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전후에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 비정규 고용 증가로 인한 고용기반의 약화, 1인 가구가 증가하는 가족 형태의 변화, 경제성장의 침체 등 연금 재정에 영향을 주는 각종 악재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일본 역시 1985년부터 2012년 사이 다섯 차례에 걸쳐 연금법을 바꾸고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재정 안정화 방안을 시행하며 지속해서 공적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보험료 수준의 경우 2004년 개혁으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해 2017년까지 18.3%로 인상했고, 이후 더는 보험료율은 올리지 않고 고정했다.
급여 수준은 1985년과 2000년 연금개혁에서 각각 인하한 후, 2004년 개혁 때 자동조정 장치를 도입해 인구 및 경제 상황 변수를 반영해 자동으로 하향 조정되게 했다. 연금수급 연령은 1994년과 2000년 개혁 때 각각 연금 부분별로 60세에서 65세로 올렸다.
일본은 공적연금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기반을 확대하고 국고 부담을 강화해 수입을 증대하는 방식으로도 재정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칠레의 경우 최근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 대통령이 공공연금기구 설립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칠레는 1980년대 당시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군사 정권이 연금 제도를 완전히 민영화하면서 공공연금이 사라졌던 바 있다.
보리치 대통령이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직접 공개한 연금제도개혁안에 따르면, 정부의 연금 제도 개혁안은 현재 민간 연금회사인 AFP(Administradoras de fondos de pensiones de Chile)만 취급할 수 있는 연금 상품을 새로 설립할 별도의 연금 기구에도 취급 권한을 주어 연금 가입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방안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보리치 대통령은 기존의 AFP를 존속시키는 한편 AFP와 성격이 다른 새로운 민간연금운용 전문기업, 공공연금기구를 동시에 설립하는 안을 공개했다. 이렇게 되면 연금 가입자는 AFP, 신설 민간연금기업, 공공연금기구 등 자신의 연금 자산을 맡길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이처럼 연금 가입자가 더 좋은 연금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관에 의탁할 수 있도록 하면 결과적으로 가입자의 연금 수령액도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리치 대통령은 내다보았다. 그는 정부가 제안한 연금 제도가 실행되면 연금 수령액이 남성은 지금보다 평균 46%, 여성은 52%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살펴본 연금 개혁을 이뤄낸 국가들을 보면, 급여 수준 하향 및 보험료율 상향 등 가능한 한 최대의 재정 안정화 개혁을 한 후 최근 연금수급 연령을 상향 조정함으로써 추가적인 재정안정 효과를 추구하고 있다.
유호선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들은 이미 공적연금이 성숙해 급여 수준이 상당히 높은 상태였기에 급여 수준 감액, 보험료율 조정 등의 개혁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2차 국민연금 개혁 당시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대폭 감액했기에 급여 수준 인하보다는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인상해 수입을 확대하는 쪽으로 개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