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룹 회장 물갈이 현실로…거세지는 관치 논란
입력 2022.12.13 10:14
수정 2022.12.13 10:14
신한 이어 농협금융도 교체
정부 입김 낙하산 의문부호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의 잇따른 회장 물갈이가 현실화하고 있다. 연임이 유력하다고 여겨지던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예상 밖의 용퇴를 선언하며 자리에서 물러난 데 이어, NH농협금융 역시 회장을 바꾸기로 결정하면서다.
특히 농협금융에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관료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내정되면서 연말 금융권 인사철을 앞두고 불거진 관치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달 초 열린 신한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진옥동 신한은행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천했다. 현재 수장인 조 회장이 회추위에서 더 이상 회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진 행장이 만장일치로 임기 3년의 새 회장 후보로 선정됐다.
이는 시장의 기존 예상을 크게 뒤엎는 결과다. 금융권에서는 조 회장의 연임을 사실상 기정사실로 여겨 왔다.
조 회장은 이 같은 결정의 이유로 세대교체를 통한 조직 변화를 꼽았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단 해석이 분분하다. 각종 사모펀드 손실 사태를 둘러싼 금융당국이 압박이 계속되자 연임에 부담을 느꼈다는 얘기다.
실제로 조 회장은 갑작스런 용퇴를 발표하면서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사태 제재를 배경 중 하나로 들었다. 조 회장은 "사모펀드 사태로 고객들이 피해를 보고 직원들도 징계를 받았다"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조 회장의 행보는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 도전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손 회장을 상대로 라임자산운용 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의결한 상태다. 문책경고가 확정되면 금융사 취업이 3년 간 제한돼 연임이 불가능해지는 만큼, 손 회장 측은 제재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행정소송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분수령은 주중에 나올 판결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손 회장은 오는 15일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인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징계를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앞서 손 회장은 DLF 사태로 당국의 문책경고 징계를 받고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승소했다.
이런 와중 농협금융도 손병환 현 회장을 전격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손 회장 역시 당초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취임 이후 농협금융의 실적이 눈에 띄게 성장했고, 기존 5대 금융 회장들 중 가장 젊은 인물인 만큼 변수가 크지 않았다는 평이다.
하지만 농협금융 회추위는 전날 열린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을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이 내정자가 예산·금융·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 경험을 해 실물경제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정확한 정책 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내정자는 새 정부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선임된 관료 출신 금융사 CEO란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이 내정자는 재정경제부 증권제도과장과 혁신기획관, 기획재정부 행정예산심의관, 정책조정국장, 예산실장 등을 거쳐 제2차관을 역임했다. 금융 관련 경력이 비교적 적지만,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1년 금융위 상임위원을 지냈다.
이처럼 금융그룹 수장들의 얼굴이 대거 바뀌게 되면서 가뜩이나 계속돼 온 관치 금융 잡음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말 금융그룹 회장들의 잇따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정부가 이들의 인선에 개입하려 한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아 왔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전날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철학과 다르게 금융권 낙하산이 연이어 거론된다"며 "10만 조합원 단결대오로 저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인 금융그룹들의 특성 상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