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캐롯 시즌 한 달②] 고양 캐롯 받아들인 KBL…10구단 유지와 상생
입력 2022.11.15 11:03
수정 2022.11.15 11:05
데이원, 창단 후 가입비 내지 않아 출발부터 불안
어렵게 10구단 유지, 구단들 상생 방안 마련해야
2022-23시즌 프로농구의 최대 화두는 역시나 신생 구단 고양 캐롯 점퍼스의 탄생이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는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매각될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고 시즌이 끝나자 곧 사실임이 드러났다. 지난 5월 10일부로 구단 매각이 진행됐고 26년간 이어졌던 오리온 구단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구단을 물려받은 팀은 대우조선해양건설의 자회사 데이원자산운용이었다. 특이점이라면 오리온 구단의 역사를 계승하지 않고 해체 후 창단이라는 흔히 볼 수 없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그동안 프로농구에서 진행된 수차례 구단 매각은 팀 운영의 주체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전 팀의 역사를 계승하는 방식이었다.
데이원자산운용의 농구팀 운영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지난 6월 데이원의 가입 승인을 놓고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임시 총회를 열었는데 팀 운영 자금과 관련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우여곡절 끝에 가입 승인이 결정됐다.
고양 캐롯 점퍼스로 명명한 이후에도 자금과 관련한 문제는 계속됐다.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지난달에는 KBL 가입비 격인 특별회비(15억원) 중 1차분(5억원)을 내지 않아 리그 참가가 불발될 뻔한 일도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10구단 유지를 위해 무리하게 데이원의 가입을 승인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만큼 프로농구에서 10개 구단 체제 유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10구단 체제가 완성된 한국 농구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90년대 농구 열풍과 함께 탄생한 프로농구는 농구대잔치를 이끌던 실업팀(현대전자, 삼성전자, 기아자동차, SBS, 상무, 기업은행, 한국은행, 한국산업은행)들을 중심으로 팀이 꾸려졌다.
금융권 팀들의 경우 상법상 프로 구단을 보유할 수 없었기에 인수 작업이 진행됐고 대기업 및 이에 준하는 기업들이 인수 및 창단 절차를 거치며 총 10개팀이 구성됐다. 그리고 이들 팀들은 수도권과 지방을 연고로 고르게 배치되며 프로팀의 구색을 갖춰나갔다.
프로 출범 첫 해였던 1997년 구성된 팀들을 살펴보면,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수원 삼성 썬더스, 대전 현대 다이냇, 대구 동양 오리온스, 인천 대우증권 제우스, 경남 LG 세이커스, 광주 나산 플라망스, 안양 SBS 스타즈, 원주 나래 블루버드, 청주 SK 나이츠 등 총 10개팀이다. KBL은 원활한 선수 수급과 중계권료 확보, 각 팀 전력의 균형 등을 고려해 10개팀을 유지하되 늘리지도, 줄이지도 않을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90년대 말 IMF 사태가 터졌고 프로농구팀을 운영하던 일부 기업들이 손을 떼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적지 않은 팀들의 운영 주체가 바뀌게 됐는데 구단을 인수한 기업들은 아예 연고지를 바꾸는 등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연고지 밀착 실패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프로농구의 연고지 정착 문제는 국내 다른 프로 스포츠들과 비교해도 심각 수준이다. 80년대 초반 출범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프로 구단으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프로배구는 꾸준히 연고지 내 팬들과의 스킨십을 시도하며 충성도 높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농구는 연고지 문제뿐만 아니라 잦은 팀명 교체, 그리고 일부 구단들은 매각 이후 과거 구단의 역사를 계승하지 않으려는 등 팬심이 떠나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모습이다.
급기야 고양 캐롯 점퍼스는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해체 후 재창단의 길을 걸으며 가뜩이나 성난 팬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로 인해 오리온의 1회 우승 경력과 영구결번 10번(김병철) 등의 역사는 계승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KBL이 데이원의 인수를 허락한 이유는 10구단 체제 유지 때문이다. 만약 오리온이 그대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면 당장 9구단으로 줄어들어 리그 경기 수가 줄고 중계권료 확보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여기에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며, 구단 수 감소는 자연스레 아마추어 선수들의 프로 입성 불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가뜩이나 상황이 좋지 않은 한국 농구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사안임에 분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10구단 체제가 유지됐으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기존 구단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게 연맹과의 협업 및 공생 노력이 필수적이며 향후 또다시 매각 이슈가 발생했을 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만 한다. 준비가 되지 않고서는 한국 농구의 장밋빛 미래를 그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