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밀 사태와 남은 과제 [임유정의 유통Talk]
입력 2022.10.28 07:03
수정 2022.10.28 07:03
내달 전직원 370여명 정리 해고 통보
LG생건에 매각 불발 후 사업 종료 결정
신동환 대표 2018년 취임 후 적자 지속
소속직원 동반자로 인식하고 협의책 만들어야
45년 업력의 유제품 제조업체 ‘푸르밀’이 내달 30일을 끝으로 사업을 종료한다. 전직원 370명을 정리해고 하고 인기 제품 비피더스·가나초콜릿의 판매를 중지키로 결단했다. 올초에는 이를 위한 밑작업으로 명예퇴직 신청자도 받았다.
푸르밀의 위기는 연쇄적 ‘태풍’을 몰고 올 것으로 우려된다. 본사 직원은 물론 낙농가와 전국의 대리점, 그의 가족들까지 고려하면 연관 인원만 수천명에 이르러 관련 업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듯 하다. 대량 해고가 현실화 됐다는 점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푸르밀 측은 사업 종료 배경으로 유시장 축소로 인한 판매 부진을 꼽았다. 그러나 동종 업계에서는 ‘방만 경영’에서 비롯된 사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푸르밀은 한때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됐으나, 오너 경영 체제로 돌입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번 사태의 관건은 피해 여부다. 오너 일가의 비도덕적 행위로 인한 책임을 애꿎은 직원들이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 직원이 하루 아침에 밥벌이 수단을 잃고 실직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라는 경제적 한파 속 직원들이 처절하게 울부짓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푸르밀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공들였던 매각에 잇따라 실패했고, 유업계를 둘러싼 환경 역시 최악이다. 지속된 적자 속 미래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저출산 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2026년에는 미국과 유럽산 유제품에 대한 관세 철폐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기업의 존재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중대한 결정을 일방적인 통보로 일관했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익을 대변할 수 없는 대표자들을 불러 모아 사회적 합의의 형식을 갖춘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집단 정리해고는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한다. 회사와 노조는 푸르밀을 유지하는 것을 포함해 노동자들을 살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회사가 망해도 기업주는 배불리 지내는 일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기업의 무책임한 행동은 반복될 게 분명하다.
20여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한국은 대규모 산업 구조조정과 감원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아직도 당시의 공포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숱한 가정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때의 고통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과거엔 제3의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노사정이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선제적인 노사정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노사정은 지금이라도 실업대책 마련 등을 놓고 대타협의 길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푸르밀 노사는 지난 25일 첫 교섭을 기점으로 상생 방안을 논의 중이다. 양측은 오는 31일 2차 교섭을 앞두고 있다. 푸르밀이 45년을 함께 걸어온 직원들을 비즈니스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인식하고 성숙한 협의책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