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시대 다시 보는 ´박정희 패션´
입력 2008.07.08 08:32
수정
<그리운 나라, 박정희>70년대 노타이 오픈칼라 유행시켜
2008년의 쿨비즈 운동은 2005년 일본 노타이운동의 따라하기
남자들이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있다.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에서부터 고객을 상대하는 은행이나 백화점 직원들까지 노타이 차림이 부쩍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2008년 여름의 두드러진 특징은 단연 넥타이 차림의 정장을 거부한 노타이 바람이다.
넥타이는 사회생활을 위한 남성 패션의 아이콘이었다. 회사에서나 공식석상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기본 예의가 없다 하여 눈밖에 나게 마련이었다.
국내의 유명한 작곡가들이 청와대의 초청을 받아 한 자리에 모인 일이 있다. 대통령을 면담하는 자리인만큼 정장 차림에 엄숙한 분위기였는데 유독 노타이에 티셔츠 바람으로 태연히 나타난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박정희 시절의 이야기다.
대통령 박정희가 그에게 다가가 정장 차림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편해서 입었다는 것.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겁도 없고 어찌 보면 배짱도 보통 배짱이 아니다.
그때 ´새마을´ 노래 작곡을 끝내고 작곡가들을 초청했던 박정희는 그 티셔츠 차림의 인물에게 새마을 노래의 음악반주를 맡기라고 비서관에게 지시했다.
바로 그가 국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홍연택이었다. 그렇게 해서 새마을 노래는 박정희 작사 작곡, 홍연택 반주로 전국에 울려퍼지게 되었다(후일 홍연택은 국내 최초로 민간 교향악단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창단, 한국 교향악계를 지휘하는 ‘대부’로 활약한다).
박정희가 왜 홍연택을 선택했을까. 이유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노타이의 티셔츠 차림이 의미하는, 형식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방식의 삶을 고집하는 파격(破格)의 모습이 눈에 띄었던 것은 사실이다.
박정희의 양복이나 넥타이를 보면 구식이다. 촌티 나는 용모도 그렇고, 네꾸다이(넥타이), 고뿌(컵) 등 식민지 시대의 언어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갈데없는 구식 사람이다.
그는 양복이 오래되어도 새로 맞추지 않고 수선을 해오라고 시켰고, 넥타이도 낡은 것을 애용했다. 그 무렵 유행하기 시작한 넓은 넥타이를 권해도 막무가내로 옛것만을 고집했다. 그가 유행을 무시하는 것은 남들이 하는 대로 물덤벙술덤벙 따라가는 인생과 차별되는 그 나름의 오기와 고집이기도 했다.
겉보기에 그는 보수성이 강한 듯하지만, 사실은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실용성과 독창성을 중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름에 넥타이를 매지 않고 하얀 셔츠깃을 밖으로 내놓아 저고리깃을 덮는 노타이 오픈칼라 셔츠 차림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무더운 여름철에 공무원들의 노타이 차림을 허용하고 권장하면서, 직접 몇차례 노타이 오픈칼라 셔츠 차림을 디자인하고 시제품(試製品)을 만들어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 직원들에게 착용시켰다고 한다. (김정렴 회고록 <아, 박정희>)
당시 노타이 오픈칼라 셔츠는 공무원들의 여름 패션이라 할 만큼 공직사회의 대유행이었다. 그런데 뭇사람에게는 까무잡잡한 얼굴의 박정희가 흰 셔츠 칼라로 양복 저고리깃을 덮던 모습이 강한 기억으로 남아 ‘박정희 패션’으로 불리고 있다.
한 언론인이 택시를 타고 관공서에 가니 경비원이 달려나와 경례를 올려붙이면서 출입문 안쪽으로 안내를 하더라고 했다. 웬일인가 싶어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곧 그 자신이 노타이 오픈칼라 차림을 하고 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 관공서에 근무하거나 또는 고위 공직자로 착각해서 그러더라는 것이었다. 박정희 시대가 아닌 2007년 여름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박정희 패션’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다.
2008년 여름은 고유가(高油價)가 노타이 바람을 불러왔다. 이른바 쿨비즈(Cool-Biz)운동이라 하여 노타이 근무제를 실시하는 대기업이 50곳이 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배럴당 140달러를 넘실거리는 고유가 때문에 목을 죄고 몸을 뜨겁게 하는 넥타이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1976년 7월 수원 새마을연수원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연수원생들과 점심으로 국수를 먹고 있다.
여름 무더위에 넥타이로 목을 죄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해공 신익희가 기차 안에서 화장실에 다녀온 후 넥타이를 매다가 쓰러져 심장마비로 숨지는 불행한 사건도 있었다.
넥타이를 매면 산소호흡량이 7퍼센트 감소하고 사고 능력도 15% 떨어진다고 한다. 반면 넥타이를 풀면 체감온도가 2도 내려가고 그만큼 냉방에 소요되는 전력을 줄일 수 있다. 그것을 일반화할 때 전력 절약을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연 3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어느 직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아예 반팔 티셔츠를 입게 할 정도로 노타이 바람은 드세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규율이 요구되는 사무실이나 점잖은 공개석상에서는 티셔츠보다 양복을 입되 셔츠의 목부분 첫단추를 풀어 넓은 칼라로 저고리깃을 덮는 오픈칼라 셔츠 차림이 정장 분위기를 살리는 깔끔한 멋과 함께 안정감을 주어 안성맞춤의 스타일로 통하고 있다. ‘박정희 패션’ 그것이다.
여름철 일의 능률과 경제성을 저해하는 넥타이를 풀어버린 것이 박정희 시대였다. 당시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옷차림을 보고 굳이 행정 지시가 없어도 거의 의무적으로 따라 입었다. 넥타이를 매야만 정장이라는 인식을 깬 노타이 오픈칼라 셔츠는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흐트러짐 없이 깔끔해서 파격의 실용미(實用美)를 보여주는 차림이었다.
2008년의 쿨비즈운동은 기업뿐만 아니라 관가에서도 한창인 모양이다. 정부종합청사에서 노타이 패션쇼가 열리는가 하면 청와대에서도 직원들에게 공식행사의 경우를 제외하고 노타이 차림의 출근을 허용했다고 한다. 에너지 절감을 위한 여름철 공직사회의 변화된 모습이다.
그런데 지금의 공직사회가 박정희 시대보다 성숙되지 못하고 께느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쿨비즈운동도 알고 보니 2005년부터 일본에서 시작된 노타이 근무제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쿨비즈라는 신조어도 만들고 노타이 근무복 운동을 하니 이제서야 우리 기업과 정부도 쿨비즈 소동을 벌이는 모양새가 어쩐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 문화예술 쪽이나 각계에서 은근슬쩍 관행으로 지속돼온 일본 베끼기, 일본 따라하기는 여전한 모양이다.
이미 30여년 전에 노타이 오픈칼라 셔츠 차림을 창안하고 유행시킨 우리가 지금에 와서 고작 쿨비즈운동이라니. 갖다붙일 말이 쿨비즈밖에 없는 상상력의 빈곤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노타이 운동을 한다는 공무원들, 그들이 있는 시청이나 구청 따위 공공건물은 왜 그리 고대광실로 거대해지고 호화찬란해지기만 하는 것일까. 중산층이 무너진 민생경제는 갈수록 고달프기만 한데, ‘눈 먼 돈’ 마구 집어쓰듯 거대하게 지은 공공기관에서 공복(公僕)입네 하고 노타이 차림을 한다고 해서 과연 그걸 절약과 실용으로 믿어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박정희 시대는 고위 공직자로부터 면사무소 공무원까지 제 몫의 임무에 결코 소홀함이 없었고, 박봉에도 국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사명감으로 모두의 눈빛이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의 노타이 오픈칼라 셔츠는 절약과 실용성을 위한 복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닌 공직사회의 진정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오로지 국익을 위해 노심초사하던 최고지도자의 지존(至尊)의 나라사랑 정신을 디자인한 것으로 보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고유가 시대라고 해서 쿨비즈 소동에 덩달아서 그냥저냥 노타이 차림을 권장하는 정도의 요즘 공직사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고유가 때문만 아니라도 쿨비즈 운동의 일본보다 훨씬 앞서 이미 1970년대에 여름철 넥타이를 벗어던진 선구적인 발상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요는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그토록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졌는데도 박정희가 있고 없음의 차이는 왜 이리 크기만 한지….
박정희를 넘어서는 것은 아득한 꿈이란 말인가.
☞대통령의 쇠고기, 추억에서 분노의 변곡점까지!
☞박정희, ´기러기 아빠´된 사연
☞시위대 앞으로 뚜벅뚜벅 나간 대통령
☞ 박정희의 금연이 성공못한 이유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