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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그가 파안대소할 때는


입력 2008.05.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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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나라, 박정희>차갑게 비춰졌지만 소탈한 미소 소유자

정주영 차관 도입 보고할때, 통일벼 성공할때, 중동 진출할때

분노를 참거나 결의에 차 있을 때는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문다. 어떤 공직자가 아주 만족스런 보고를 올리면 “그러면 그렇지”하며 그의 성명과 직함을 함께 풀네임으로 부른다.

“김학렬 부총리!”

이런 식으로 신임을 표시해 준다.

대통령 박정희 가까이에서 일했던 공직자들의 말이다.

그가 1.21사태에 대한 보복을 위해 김일성 숙소와 김신조 부대의 위치를 파악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다. 우리 군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여 보고를 하자 “그러면 그렇지”하며 입을 한일자로 다물었다. 미국의 반대로 보복은 결행되지 못했으나, 그래서 더욱 분노는 그의 내면에서 강하게 끓어올랐다.

그의 검은 얼굴이 굳어져 더 검게 보일 때가 있다. 부정 부패에 관한 정보를 접했을 때, 그리고 정부가 지불보증을 해서 외국차관을 제공해준 기업이 근로자의 복지는 돌보지 않고 사장실을 호화롭게 치장한 것을 볼 때가 그러했다.

텔레비전에 비치는 대통령 박정희에게서는 거의 웃음을 볼 수가 없었다.

1977년 9월 그는 일본 동경방송(TBS)과의 인터뷰에서 웃음과 거리가 먼 대통령으로 비치는 것이 약간은 억울하다고 했다.

“나를 여러 사람 앞에서 평소에 웃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이는 보도진의 카메라가 멋쩍은 장면만 잡기를 좋아하니까…….”

사진은 카메라를 든 사람의 연출이니 어쩌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어울릴 때는 파안대소가 잦았다고 한다.

“그이는 이가 고르지 못하고 들쑥날쑥하거든요. 그래서 웃으면 아주 어린애 같지요.”

부인 육영수의 말이다.

둘째딸 근영은 그런 아버지를 “참 귀엽다”고 했다.

산림녹화를 독하게 추진했던 박정희가 일찍이 군시절에 나무의 생명력에 탄복한 일이 있었다. 사단장으로 각 부대를 순시하는 길에 플라타너스 가지를 지팡이 삼아 짚고 다니다가 아무데다 꽂아 두었는데, 나중에 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다 보니 거꾸로 꽂힌 지팡이에서 새싹이 돋은 것이었다.

전 국무총리 고건이 1970년대 내무부 새마을 담당관으로 산림녹화 업무를 맡아보던 시절에 대통령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플라타너스의 생명력에 감탄한 대통령이 파안대소를 하실 때 입안의 덧니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1974년 제1차 에너지 파동으로 국내 경제에 위기가 닥치자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오원철은 중동 진출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신념의 공격적인 대응이다.

그는 대통령에게 첫째, 고온에다 사막지대인 중동은 작업환경이 열악해서 선진국 기술자들이 기피하는 곳이라 근로의욕이 왕성한 우리 기술자들에게 유리하며, 둘째, 우리는 후진국보다 월등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선진국에 비해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또 유리하고, 셋째,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우리 건설 기술로 어느 나라보다 더 공기를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 한가지를 덧붙였다.

“각하! 중동에 진출하자면 뒷거래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방면에는 소질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박정희는 파안대소했다. (신동아 1997년 7월호)

한 비료공장의 관계자가 준공식에 참석했던 대통령에게 공장시설을 안내하고 설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시설의 용도와 생산과정을 훤히 알고 있는지라 그는 건성으로 대통령을 따라다니는 모양이 되었다.

“각하께서 다 알고 계시니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대통령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청와대 출발 전에 오원철 수석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미리 예습을 하고 왔네.”

그 관계자는 또 하나의 비료공장이 준공되어 식량증산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을 기뻐하던 그때 대통령의 웃음을 잊을 수 없노라고 했다.

소탈한 웃음. 1977년 8월 11일 하계 휴양지인 진해 앞바다 저도에서 담소 중에 입을 가리고 웃고 있다.

대통령 박정희가 전남 해남의 통일벼 재배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키가 작고 낱알을 풍성히 달고 있는 통일벼의 탐스런 모습을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벼 한 포기를 따서 손바닥으로 문질러 한알씩 세어 보았다.

낱알 100개가 열리기 어려운 재래 품종보다 두배 이상의 결실을 가져다주는 통일벼의 다수확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알 한알 꼼꼼히 세어 100개를 넘고 200개에 이르니 초가을 날씨에 이마에 땀이 솟는데도 220, 230에서 234개까지 모두를 세어 확인하고는 “그러면 그렇지”하고 밀짚모자를 고쳐쓰며 돌아앉았다. 그러고는 막걸리 한사발을 시원하게 들이키며 파안대소했다.

그때 수행 비서관 하나가 다가와 보고를 했다.

“각하, 저기 280알짜리가 있습니다.”

그 말에 박정희는 깜짝 놀라 막걸리 사발을 놓고 일어났다.

“임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280알이면 벼줄기가 부러진단 말이야. 큰일 아닌가?”

가서 또 낱알을 세어 보니 230여개짜리였던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 논객이기도 한 재미동포(한은지)가 통일벼를 재배한 고향의 부친
이 대통령 일행을 맞아 겪었던 일을 회고한 이야기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사업이 조선소 건설이었다. 조선소 건설은 돈도 기술도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외국에 나가 손을 벌리니 돈을 빌려주겠다는 곳이 없었다. 못하겠다고 잔뜩 움츠러든 정주영을 박정희가 거의 강제적으로 다시 해외로 내보냈다.

영국에서 돌아온 정주영을 경제부총리 김학렬이 만났다.

“정 회장님, 내 목이 붙어 있게 됩니까, 달아나게 됩니까?”

다급하게 물었다.

“염려 마시오. 목에 깁스를 해도 됩니다.”

큰소리를 치고 곧 청와대에 올라가 보고했다.

“각하, 차관제공에 완전 합의를 봤습니다. 당장 일거리로 배 두척의 주문도 받아왔습니다.”

그러자 박정희는 파안대소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는 탁자 서랍에서 현대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꺼냈다. 그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논의를 하려 하자 정주영은 아연 긴장하고 말았다. 사업계획서는 2년 전에 제출한 것이다. 정주영은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을 대통령이 서랍 속에 간직했다가 즉석에서 꺼내는 것을 보고 식은 땀이 날 지경이었다. 충분한 기술적 검토가 없이 불확실하고 불가능한 것까지 보태서 부풀려 놓은 것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무엇보다 차관도입은 정부의 지급보증 없이는 불가능했던 사실이 중요했다.

“보증은 부자지간도 안 서는 거라고 하는데 그걸 정부가 나서서 서줄 때는 얼마나 많은 검토를 했겠어요. 국민소득 250달러 언저리밖에 안 되던 시절에 정부가 보증을 안하면 외국에서 차관을 절대 안 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던 시절인데 어떡할 거요? 앉아서 굶어 죽어?”

그러면서 정주영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조선소를 지은 거요. 아주 혼났어.” (이코노미스트 2007년 3월16일)

1970년대는 아침에 눈뜨면 무슨 기공식이나 준공식이 벌어지는가 하면 허구한날 긴급조치라는 정치적 강압으로 으시시했다.

그 시절 유명 앵커 봉두완은 “국민 노릇 해먹기 힘들다”는 투로 정부에 대한 공격이 신랄했다. 육영수와 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청와대 소접견실에 박정희가 나타나더니 “깡패 왔구만”했다.

“기자들도 술 많이 마시지? 그런데 기자들은 어디서 술을 마시나?”

박정희가 물었다.

“그건 보안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봉두완의 장난기가 발동해 대통령 내외를 웃겼다.

저녁상이 차려지자 박정희는 찌개에 밥을 비벼먹자고 제안했다.

“저는 면장 손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상놈들이 먹던 비빔밥 같은 것은 잘 안먹습니다.”

봉두완은 술도 몇잔 걸쳐 불콰해진 터라 겁없이 익살을 떨었다.

“그래, 나는 없이 자랐다, 왜?”

박정희는 이렇게 대꾸하며 파안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적인 교감의 자리를 가졌던 봉두완은 이렇게 회고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의 대소사를 ‘주인’의 입장에서 챙겼다. 그런 성격이 그를 독재로 이끈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누구보다 확고한 국가관을 갖고 있었다. 나라를 어떻게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신앙에 가까운 집념을 가진 지도자가 바로 박대통령이었다. 18년 5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간 박정희 대통령. 그는 정치적 공과(功過)를 떠나 내게는 너무도 인간적인 면이 많았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월간조선 2000년 5월호)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는 그의 표정은 대체로 무뚝뚝한 편이었다. 그래선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박정희 역을 맡았던 배우들도 시종 굳은 표정에 매서운 눈초리,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겁을 주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대인관계의 윤활유 같은 친화적 제스처와는 거리가 멀었다. 개방적인 사교술보다는 숫기가 없어 스스럼을 타는 성격이라 폐쇄적으로 자기 감정을 다스리는 편이었다.

그런 박정희의 파안대소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는 덧니가 있어 치열이 고르지 못한 편이었는데, 기분이 한껏 상승되었을 때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덧니가 드러나도록 파안대소를 해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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