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우리도 쇠고기 좀 먹어야겠다
입력 2008.06.2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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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나라, 박정희>호주 등 시찰하고 외자유치 축산업 부흥
조국을 위해 미친듯이 일하던 시절 소를 키워낸 뚝심의 정치
청와대 앞에 나타난 소 한마리를 놓고 역대 대통령들의 처리 방식을 비교한 유머가 한물 갔나 싶더니 최근 ‘미친 소’의 등장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원본의 내용은 이러하다.
박정희는 소를 농촌에 보내 새끼 낳아 키우도록 했고, 최규하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앞을 가로막고 나선 전두환은 ‘하나회’를 집합시켜 먹자판을 벌이는데, 노태우는 남의 눈에 안띄게 그 소를 혼자 처리한다. 이어 김영삼은 소를 아들에게 주고 김대중은 북한에 보낸다. 그리고 노무현은 왕방울 같은 소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니 쌍까풀 수술 어디서 했노?”라고 철딱서니없는 소리를 한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이야기다.
그 다음 이명박 앞에 히이 웃는 소가 나타난다. 비서관들이 “미친 소다!” “너나 먹어”라고 서로 등떠밀다가 모두 달아나 버리자, 혼자 남은 이명박이 “미치겠네!”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는다. 이 정도가 아니다. 이명박이 소를 마주보고 히이 웃더라는 식으로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어느 술집 탁자에 둘러앉은 젊은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씁쓸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우스갯소리가 ‘미친 소’의 등장으로 블랙유머 같은 음산한 느낌으로 변질되고 있다.
익명의 자유가 질펀하게 허용되는 온라인이나 촛불을 들고 나선 오프라인에서도 전혀 차이가 없이 사납게 뒤틀려버린 민심은 이구동성으로 권력의 중심부를 향해 “이명박 OUT” 따위의 직격탄을 연방 날리고 있다.
‘대통령과 소 한마리’ 유머는 대통령들의 자질에 대한 냉혹한 평가와 함께, 소를 농촌에 보내 키우게 하는 박정희에게만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거기엔 박정희 평가의 비교 우위를 보여주기 위한 작위적인 느낌이 끼여들 틈새가 없다. 유독 박정희 대목만은 이의없이 합의된 민심의 진정성이 읽히고 있다.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를 노래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소는 농가의 재산목록 1호이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소가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주인에게 헌신하는 우직한 충성과 은덕을 탄주하는 우덕송(牛德頌)은 우리네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 가족이나 다름없이 정이 든 소를 우시장에 데리고 나갈 때의 모질지 못한 농심(農心)은 더욱 그러했다.
소 판 돈을 허리에 차고 막걸리를 취하도록 마시고 마셔도 허전함을 달랠 길 없고 자꾸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것이 우리네 소였다. 중노동을 묵묵히 담당하며 농촌을 지키다가 누군가들에게 육신을 쇠고기로 보시(布施)하는 것이 이별의 끝모습이기에…….
해방 직후 시인 정지용이 소설가 김동리에게 신세 갚을 일이 있어 쇠고기 한근을 사들고 그의 집에 간 일이 있다.
김동리 부인이 차려주는 저녁상을 받고 새로 술상을 받아도 고기 한점이 보이지 않았다. 지용은 쇠고기를 자기가 먹자고 사온 것은 아니지만 섭섭했다. 동리가 부인에게 “이 양반이 사온 쇠고기 어찌 됐소?”하고 물었다. 그러자 부인이 부끄러운 낯으로 “제가요, 한번도 쇠고기 반찬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요”라며 고개를 떨구더라는 것이었다.
김동리 내외의 모습에 지용은 이렇게 탄식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참으로 적빈여세(赤貧如洗)로구나!”
김동리는 말하고 있다.
“워낙 오랫동안 뼈 쭉정이와 풀뿌리만 먹어오던 차라 처음은 곰국이란 말만 들어도 살 것 같고 솥뚜껑을 열 때 훅훅 오르는 허연 김과 구수무레한 냄새만 맡아도 침이 돌았다. ” (단편 <山火>에서)
다른 나라들은 살코기만을 주로 먹는데 오죽하면 우리네는 머리에서 발끝, 꼬리, 내장, 선지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거두어 먹을까.
1972년 제주도 도립목장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박대통령은 축산 관계자들에게 소를 항상 깨끗이 닦아주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축산도 식량”이라면서
오랜 세월 쇠고기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5.16 이전에 국민 1인이 1년에 쇠고기를 평균 1근을 먹는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대통령 박정희가 그것을 보도한 예전의 신문기사 내용을 따님인 박근혜에게 전하면서 “부자가 1년에 1근만 먹을 리 없으니 숫제 고기 못먹는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 아니겠냐”고 했다.
박정희가 “우리도 고기 좀 먹어야겠다”며 축산개발에 고심을 해도 당시 축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자연조건상 축산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만 했다. 박정희는 축산왕국인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한 후 외국 차관과 기술을 들여와 푸른 초원에서 우유가 생산되고 고기가 나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그렇게 성공시킨 축산업이 오늘날엔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미FTA와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는 국가경제가 커진 것에 상응하는 개방 압력이다. 그렇긴 해도 우리 축산 농가에 대한 제대로 된 처방과 대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졸속 처리를 했기 때문에 촛불 난리가 난 것이다.
미국 쇠고기의 위력이 아무리 강해도 소를 숭상하는 인도 같은 나라에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그 나라의 신앙과 전통, 고유정서를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박정희 시대에 인도 총영사로 나가 있던 노신영이 대통령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은 이야기가 있다. 영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한 그 선물은 다름 아닌 쇠고기 통조림이었다. 쇠고기를 사먹을 수 없는 사정을 살펴주는 대통령의 알뜰한 온정에 모두는 가슴이 뭉클했다.
노신영은 미수교국인 인도와의 외교적 과제를 기필코 달성해야겠다고 오지게 결심을 하고, 쇠고기는 서울에서 오는 손님 식탁에 내놓거나 직원들의 특별한 회식 때에 가끔씩 먹으면서 소중히 아껴 두었다. 노신영이 2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도 쇠고기 통조림은 꽤 많이 남아 후임 대사에게 인계되었다.
노신영은 재임 기간에 북한이 끈질기게 반대해 오던 인도의 남북한 동시 수교를 기어이 이루어냈다. 그것은 대통령의 자상한 보살핌에 따른 감동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국을 위해 우리는 그저 미친 듯이 일했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는 노신영의 말이다. (<노신영 회고록>)
외교관들로 하여금 미친 듯이 일하게 만드는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미친 소’ 외교 때문에 고개 숙인 대통령이 있다.
고개 숙인 대통령에게는 무엇이 부족할까.
현안에 대한 전문적인 검토나 협상 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국가를 위한 진정한 리더십이다. 농촌에 대한 진정한 보살핌이 없다.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대통령은 바로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이다. 그런 대통령을 뽑은 국민 역시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이런저런 대통령을 만나는 것도 운수 소관이다.
MBC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박정희 장군역을 맡았던 이진수라는 연극배우가 있다. 박정희를 꼭 닮아 연극촌인 동숭동에서 그를 보면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랐다고 하는 그 이진수가 전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요금을 안받더라는 것이다. 대통령 박정희의 분신으로 대접해 그냥 내리시라고…….
이런 대목에서는 가슴이 더워지고 숙연해진다.
대통령도 대통령 나름이다.
노무현 시절에 청와대 비서관과 출입 기자들이 “택시 타고 청와대 가자고 말하기가 겁난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신문 칼럼으로 나왔었다. 그뿐이 아니다. “대통령 좀 수입할 수 없을까”라는 아주 가혹한 탄식도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촛불을 들고 나와 ‘미친 소‘ 수입보다 ‘대통령 수입’을 외치는 소리가 더하면 더했지 나아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고개 숙인 대통령은 권력 의지를 실현했지만, 이 난국에 세종로의 컨테이너 장벽 너머로 어디를 마음대로 갈 수도 없는 구속된 권력의 실상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촛불 민심 속을 파고든 어둠의 정치 세력이 있다.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어둠의 세력이 촛불 시위 속에 준동하는 것을 보노라면 한국의 민주 정치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먼 방랑길을 헤매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