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동해] 죽변항을 가다
입력 2022.09.22 07:00
수정 2022.09.22 06:21
경북 최북단, 동해 어업전진기지
국가어항 이용고도화사업 이후 어항 활기
동해바다의 쪽빛이 더 푸르러진 9월 동해안의 주요 어항이자 국가어항인 경북 울진군 죽변항을 찾았다.
연안항이었던 죽변항은 1995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이후 정비를 거쳐 지난 2012년 해양수산부의 이용고도화사업 시범 사업지로 선정되면서 2015년부터 총사업비 560여억 원을 투입해 동방파제와 남방파제, 소형선 부두, 호안, 부대공, 해군부두 등을 시설·확충해왔다.
또 수협활어위판장, 냉동·냉장 여객선 터미널, 어항정보시스템 등 각종 항만 인프라가 구축됐고, 내년에는 위판·가공·유통·판매·어업인 복지시설 등이 함께할 수산 복합시설인 죽변수산물유통복합센터가 완공될 예정이다.
죽변항은 경북 최북단 어항으로 동해안 굴지의 양항일 뿐 아니라 국방상으로도 중요한 어업 전진기지다. 내년에는 개항 100주년을 맞는다.
오징어·꽁치·가자미·대게 등이 주로 죽변항 위판장을 통해 주로 거래된다. 특히 유명한 울진대게는 대게의 크기가 큰 게가 아닌, 울진 앞바다에서 잡은 게의 다리모양이 대나무를 닮아서 대게라고 부르게 됐다고 하는데, 11월부터 5월까지가 제철이다.
두 배로 넓어진 죽변항…지금은 가을오징어철 위판이 한창
요즘은 가을오징어 철로, 죽변항 위판장에서는 오징어채낚기 어업인들이 밤새 건져 올린 싱싱한 오징어를 새벽부터 실시간 위판이 진행된다고 한다. 해수 온도 상승 등의 영향으로 예전보다는 수확량이 줄어 어민들의 속을 상하게도 하지만 오징어가 성장해 태풍을 잘 견디고 씨알이 제법 굵은 오징어가 올라올 때면 그래도 활기를 띤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어민들이나 상인들 모두 어려웠던 것에 비하면 올여름은 바닷가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며 죽변항도 점차 되살아나기 시작했다고 죽변항 사람들은 말한다.
이곳 죽변항에서 30여 년 넘게 수산물을 판매해 온 상인 김 씨(68)는 “그간 좀 힘들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관광객들도 많이 늘었다”면서 “죽변항이 원래 이 근동에서는 가장 큰 항으로 보기보다는 찾는 이들도 많고 수산물 판매량도 많은 곳”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최근 죽변항의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대뜸 “정말 많이 달라졌다. 내항도 두 배는 넓어졌고 해군 전용부두도 옮겨가는 바람에 바다 앞이 확 트인 느낌이고, 수협 시설도 들어서면서 수산물 관리가 편해졌다”면서 “앞으로 더 달라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전했다.
새벽 위판을 끝낸 위판장은 이날 파고가 일면서 오후 위판은 열리지 않아 애석하게도 갓 잡은 수산물의 신선함은 볼 수 없었다.
다만 어선들의 안전한 정박과 신속한 위판업무 수행을 위해 수협 위판장 앞 물양장 공간을 대폭 늘리고 어선들이 대거 입항하는 시간에 맞춰 정박할 수 있는 공간을 정하는 등 어업인들의 조업 인프라를 개선했다는 전언은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위판장 인근에 자리한 죽변수협은 위판에 필요한 업무와 중매인들의 도소매 거래 시 수산물 중간 가격책정 등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다. 죽변수협에서 5년 차라는 판매부 직원은 “물양장의 효율적 운용으로 조업공간 이용률이 높아지면서 어업인들의 조업 안전성도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수협 관계자는 “요즘은 오징어와 적(홍)가자미 등이 많이 들어온다. 지난 8월에는 오징어가 5만3000마리가 들어왔고, 활어가 4000~6000원 선에 거래됐다. 대게는 지난 1월에 가장 많은 21만 마리의 위판량을 올렸다”고 전했다.
풍부한 수산물 못지않은 바다 풍광…새 해양관광명소로 급부상
죽변항은 수산물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바다 풍광도 빼어나다. 덕분에 관광객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 또는 ‘대숲 끄트머리 마을’이란 뜻의 죽변은 인근에 넓은 백사장, 동해의 파란 물과 깨끗한 모래를 자랑하는 봉평해수욕장, 국립해양과학관, 죽변등대, 대가실 하트해변, 드라마세트장 등과 함께 지난해 죽변해안스카이레일까지 운영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해양관광명소로 뜨고 있다.
특히 죽변곶은 육지가 바다로 돌출한 지역으로 용의 꼬리를 닮아 ‘용추곶’이라고도 불린다. 죽변항을 거슬러 조금 오르다 보면 높이 16m의 흰색 팔각형의 죽변등대가 눈에 들어오는데 등대에 오르면 마치 푸른 해양정원인 듯 바다 풍경이 내려다보이며 죽변항과 마을 일대도 조망할 수 있다.
등대를 돌아 내려오다 보면 대숲 길과 함께 바다 쪽 작은 언덕 위 주황색 지붕의 집이 해안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데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인 ‘어부의 집’으로, 관광객이 거쳐 가는 필수코스다. 그래서인지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또 이 드라마 세트장에서 내려다보이는 백사장이 하트처럼 생겼다고 ‘하트 해변’으로 알려지면서 커플들이 일부러 많이 찾는 곳이다. 해안에 암초가 많아 암초 지대에 모래가 쌓여 해변이 하트 모양이 된 것이라 한다.
죽변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죽변 해안스카이레일은 지난해 여름 첫 운행을 시작했다. 울진군이 250억원 가량을 투자해 시설을 하고 민간에 위탁운영 중이다.
죽변항과 후정해수욕장을 잇는 해안선을 따라 최대 11미터 높이에 레일이 설치돼 해안경관이 뛰어나고 하트해변, 봉수항 등 주상절리와 기암괴석 등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60여개의 전동차량이 편도로 2.4㎞를 40여분 간 운행되는 동안 청정한 동해바다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바닷가에 해무가 짙게 끼거나 기상 상황이 악화되면 안전을 위해 운행이 정지된다.
죽변 해안스카이레일의 관제실장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올여름과 추석 때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주셨다”면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해안 풍경을 볼 수 있어 고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이곳 죽변이 고향이라는 관제실장은 죽변항이 이용고도화사업 이후 많이 달라졌고 교통상황도 접근성이 좋아져 사람들이 많이 찾다 보니 활력이 살아나는 것 같다고도 전했다.
죽변 해안스카이레일은 당초 왕복 4.8㎞ 궤도를 오가는 모노레일로 계획됐지만 현재는 절반만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계획대로 편의 시설을 갖춘 뒤 내년에는 연장 운행할 예정이어서 새로운 동해 관광의 메카로 급부상이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