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적자 해소냐, 물가 안정이냐"…정부의 '전기료 인상' 딜레마
입력 2022.09.21 18:02
수정 2022.09.21 22:46
4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발표 잠정 연기
한전, 손익분기점 고려 ㎾h당 50원 인상 요구
물가 5.2% 전망에 요금 조정 결재 미루는 정부
한국전력이 21일 4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여부를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공개적으로 잠정 연기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4분기 전기요금에 대한 관계부처 협의가 끝나지 않았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적자 폭이 커진 한전의 재정 상태에 따른 인상 요인과 물가 안정이라는 동결 요인 사이에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입장에선 인상과 동결 어느 쪽을 택해도 충격이 예상되는 딜레마 속 절충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녹록지 않다.
다만 기준연료비 4.9원 인상 이외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폭 개선을 통한 추가 인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고,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한시적 차등 조정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4분기 연료비 조정요금은 10월 전에는 결정돼야 하므로 산업부는 늦어도 다음 주 안에는 전기요금 협의 결과를 한전에 전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료 1년치 다 올렸지만…한전 적자 반영한 추가 인상 요인 다분
앞서 한전은 지난 15일 산업부에 4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킬로와트시(㎾h)당 50원 올려야 한다는 안을 냈다. 한전이 4분기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서 최소한 ㎾h당 50원을 인상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문제는 한전의 기본공급 약관 상 전기료를 kWh당 연간 최대 5원까지 올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앞서 3분기 전기료를 5원 올려서 올해 인상 최대 한도를 모두 썼다는 점이다. 즉 한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려면 정부가 4분기에 제도를 개편해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폭을 5원보다 더 확대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한전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의 연료비 부담이 커져 부실 가능성이 확대되는 것에 정부도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지난해 말 연료비 상승을 고려해 올해 4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연료비를 kWh당 4.9원씩 인상하기로 했는데, 추가 인상 가능성도 나온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준연료비를 4분기에 4.9원 올리지만 지난번에 연간 5원 한도를 인상했다"며 "현재 제도상은 그렇지만 산업부에서는 다시 한번 상한 규모를 검토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적으로 그렇고 외부 자문도 그렇고 5원 한도가 설정이 너무 적다, 적어도 10원은 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어 협의하고 있다"며 "4.9원 이외 '플러스 알파'를 할 건지 말 건 지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너지 수급난 대응을 위해 산업용 전기 요금에 대한 한시적 차등 조정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전기 등 전체 에너지 소비의 62%를 산업 부문이 차지하고 있는 만큼 에너지 효율화나 한전 적자 해소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이지만 기업 활동과 물가 등에 미치는 파급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차관은 "다(多)소비 구조를 바꾸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 시그널(신호)"이라면서 "대용량 사용자에 대한 전기요금 차등 조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한전이 안고 있는 대규모 적자를 올해 안으로 해소하려면 내달 kWh당 261원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kWh당 261원이 오르면 월 평균 307㎾h 전력을 사용하는 4인 가구 기준 8만원 이상 부담이 증가하는 꼴이다.
이는 4분기 전력판매량은 13만5876GWh, 35조4000억원의 적자를 낸다는 가정 하에 산출된 것이다. 한전은 이러한 분석 자료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에게 제출했다.
물가 고공행진에 깊어지는 정부의 고민
한편으론 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정부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2%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은 전망대로 5%대를 기록하면 1998년(7.5%) 이후 최고치다.
이런 상황 가운데 정부 입장에서 서민 경제와 직결된 전기요금을 큰 폭으로 끌어올리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기획재정부 등 물가당국은 연료비 조정단가 추가 인상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이 연료비 조정요금을 산정해 산업부에 제출하면 산업부는 물가당국인 기재부와 협의해 인상 여부·폭을 결정한다.
현재 정부 부처 간에 인상 폭을 놓고 협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한전이 요구한 안건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받아들여질 지가 관건이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연료비 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되고 분기마다 연료비 조정요금이 조정되는데 현재 조정요금 인상 폭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일준 차관은 "(요금 조정 관련) 기재부와 이견이 있는 게 사실이다. 최종적으로 조율되지 않았다"며 "산업부는 알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기재부는 다른 부분도 알아보고 있다. 결론을 예단해서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