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디그라운드(107)] “순식간에 지나간 10년, ‘한정인’으로 다시 시작”
입력 2022.07.13 13:51
수정 2022.07.13 13:52
새 앨범 'Seplles' 7월 9일 발매
"제 자신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
"어떤 시대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가수 되고 싶어"
한정인은 ‘코스모스 슈퍼스타’라는 이름으로 2013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다. 10년차를 맞은 올해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본명인 ‘한정인’으로 활동명을 바꾸면서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와도 같은 활동명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변화를 감행한 건, ‘분기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뒤 꽤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였다.
이름만 바뀐 건 아니다. 그의 음악에도 분명 묘한 변화가 생겼다. 예컨대 이전의 앨범에선 본인만의 왕국을 만들어 스스로를 고립시킨 느낌이었다면, 이번 앨범에선 지구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사운드적으로도 의도적으로 명확하게 들리지 않도록 처리하는 사운드를 사용했던 전과 달리, 상대적으로 모든 소리들을 명확히 들리도록 배치했다는 점도 변화의 포인트다.
이 모든 것이 단순히 ‘활동명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한정인이라는 본인의 이름을 사용하는 만큼 스스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적당히 솔직한 이야기들이 대중의 가슴을 더 깊게 건드리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데뷔한지 벌써 10년차가 됐어요.
뻔한 얘기지만 그 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요. 뭉뚱그려 생각하면 하나의 커다란 사건처럼 보이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게 실감이 나요. 또 하나는, 저의 음악이 참 천천히 성장해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10년차 가수라면 벌써 앨범을 몇 개씩이나 발매했을 것 같은데 전 그렇지는 않으니까요.
-음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원래 가수가 꿈이었나요?
네. 가수의 꿈은 중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결정적인 순간은 친구가 가져온 서태지 라이브 투어 콘서트 DVD를 보고 나서였어요. 정말 즐거워보여서, 나도 저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긴 시간인 만큼 슬럼프도 많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슬럼프는 정말 자주 왔어요! 가장 큰 슬럼프는 2015년 첫 앨범을 준비하면서였는데요. 준비하던 앨범이 마스터링 단계에서 중지가 되었는데, 그 후로 3년 동안 거의 작업을 하지 못했어요. 심한 불면증도 생겼고요.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냈나요?
조금씩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했어요. 잘 자고, 잘 먹고, 친구들과 놀고, 좋아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슬럼프는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가시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오늘은 곡을 쓸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어 가볍게 시작했는데, 그게 2019년 ‘Eternity Without Promises’를 발매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어요. 삶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 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코스모스 슈퍼스타로 활동하다가 최근에 활동명을 ‘한정인’으로 변경한 것은 어떤 이유에선가요?
코스모스 슈퍼스타는 스무 살 즈음에 지은 이름입니다. 무언가 거창하고 아름다운 이름이 필요했어요. 긴 이름이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츄어 증폭기, 네눈박이 나무밑쑤시기 등의 밴드 이름들이 큰 영향을 미쳤어요. 코스모스 슈퍼스타에는 ‘전우주적 슈퍼스타’라는 의미가 있는데, 어느 순간 뭔가 분기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큰 변화를 원했고요.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주어진 이름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했습니다. 저 자신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음악적인 스타일, 방향성에도 이름이 달라짐에 따른 변화가 있을까요?
약간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름이 달라짐에 따른 변화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에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코스모스 슈퍼스타와 한정인의 음악이 아주 다르다고도, 닮았다고도 여길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요. 이름을 바꾸면서 특별히 ‘이렇게 해야겠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내 마음대로 해야지’라는 생각은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 ‘Spells’는 어떻게 시작된 앨범인가요?
2021년부터 곡 작업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몇 곡을 제외하고 ‘Spells’에 수록된 곡들은 거의 2021년에 쓴 곡들이에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들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같은 사건들을 겪고 같은 시간들 속에서 자라나는 친구들 생각을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이 시대를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언가를 ‘끝내는 일’에 대한 노래를 쓰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앨범 전체에 담아내고자 했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요?
이전 앨범 ‘Eternity Without Promises’에서는 상대적으로 꿈속에 있는 듯한 사운드 연출을 많이 했어요. 보컬을 멀리 배치한다거나 의도적으로 명확하게 들리지 않도록 처리한 사운드들도 많이 썼고요. 이번 앨범에서는 상대적으로 모든 소리들이 ‘앞으로 나오도록’ 배치한 트랙들이 많아요. 모든 소리가 자기주장이 강한 느낌으로요. 특히 보컬은 사람들이 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수록곡들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되어 있단 느낌이 들어요.
맞아요. 앨범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저한테는 자전적 소설 같은 느낌이에요. 정확히 이 노래는 이런 시기의 내 이야기라고 모두 공개할 생각은 없지만(듣는 사람의 상상력에 맡기기 위해!) 저에게는 나름대로 서사에 따라 배치된 트랙들이에요. 6번 트랙 ‘차라리’는 7번 트랙 ‘Festival’을 여는 오프닝 곡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서사라고 해서 정확히 정방향의 시간 축을 따르지는 않고, 마치 영화에서 갑자기 과거 회상씬이 나오는 것처럼 뜬금없이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사운드에도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나요.
사운드 질감이나 믹싱이 이번 앨범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이에요. 늘 믹싱을 스스로 하고 있는데,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올바른 믹싱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믹스였다고 생각해요. 분명한 건, 다음 앨범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작업 중 가장 힘들었던 일도 말씀해주세요.
곡 작업 자체보다도 앨범을 준비하는 일이 좀 힘에 부쳤어요. 디자인 조율, 뮤직비디오 제작 관여, 피처링 아티스트 섭외, 텀블벅 준비 등등 모든 일을 저 혼자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어요. 금전적인 문제도 당연히 있었고요. 그래도 하는 내내 다음 앨범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건 어쩌면 중독일지도 모르겠네요(웃음).
-타이틀곡 ‘Wallflower’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려요.
‘Wallflower’는 좋아하는 사람의 세계에 편입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낸 노래에요.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건 멋져 보이잖아요? 그게 나랑 어울리는 세계이든 아니든간에 그 세계에 함께하고 싶고요. 그 마음을 ‘어떤 지하공간에 있는 클럽’ ‘어떤 루프탑의 파티’ 등에서 겉도는 사람의 모습을 빌어 표현해보았어요. ‘Wallflower’가 파티에서 벽에 등을 붙이고 어색하게 있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거든요.
-아무래도 타이틀곡이 이번 앨범을 통해 한정인 씨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겠죠?
‘Wallflower’는 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저는 연애를 시작하면 그 사람이 하는 건 다 따라하고 싶어서 망친 경우가 많았거든요. 결국 나만의 세계가 없는 사람은 매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리하자면, 그 아무리 멋진 사람이 제시하는 ‘멋져 보이는’ 세계라고 할지라도, 나와 맞지 않는 세계라면 저는 거부하고 싶어요. 그런 마음을 담았어요. 이 앨범은 계속해서 ‘끝’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저는 제가 편입되고 싶었던 세계에 대한 환상이 끝난 다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제가 만들어갈 새로운 시대요.
-수록곡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곡도 있나요?
그때그때 바뀌는데요, 요즘은 ‘Badluckballad’와 ‘Listen and Repeat’이 좋아요. ‘Badluckballad’는 제가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을 겪고 난 다음 각종 미신으로 분류되는 일들, 이를테면 타로나 사주 같은 것들에 매달렸는데요. 그런 것에 연연하는 마음의 허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없이 다시 믿고 마는 마음이 슬퍼서요. ‘Listen and repeat’은 주변 친구들이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SNS를 끝없이 새로고침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인데 여전히 매일 밤 진행 중이라서 좋아합니다.
-만약 이번 앨범을 단 한사람에게만 추천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의, 어떤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으실까요?
이 질문을 오래 생각해보았는데, 이 세상에 진절머리가 난 슈퍼스타 지망생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앞선 앨범들과 이번 앨범의 차별점이 있다면요? 음악적인 변화와 새로운 시도, 심경의 변화 모두 좋습니다.
이전 앨범에서 저는 스스로를 고립시킨 느낌이에요. 나만의 왕국을 만들어 마치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기분을 가지고 있었죠. 그건 아마 이름에서 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제 전우주적 슈퍼스타가 아니고, 이 지구에서 살아가야 하는 한 명의 개인으로서, 이 슬픈 세상을 모두와 함께 살아가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번 앨범을 만들 땐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기의 이야기로 느껴줬으면 했어요.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김사월, 이이언, 천미지 등 이번 앨범에 힘을 보태준신 아티스트들도 화려해요.
김사월, 천미지, Piano Shoegazer, 아를은 저의 오래된 친구들이에요. 각자가 참여한 곡들은 그들에게 제가 헌정하는 곡이기도 하고, 동시에 저와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곡들이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친구들의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 부분들이 저의 일부가 되고는 해요. 떼어놓을 수 없지요. 그러니 제 음악에 그들이 함께하는 것도 굉장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노래들에는 우리가 함께 성장해 온 서사가 담겨 있어요. 그렇다고 믿어요(웃음).
이이언 씨는 제가 어릴 적부터 정말 좋아했던 음악가에요. ‘Extra’를 쓸 때, 어릴 때 Mot을 듣지 않았다면 이 노래는 나오지 못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이이언 씨가 함께 불러주셨으면 하는 욕심이 들어서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무척 기뻤습니다.
-함께 한 아티스트 들과 특별한 에피소드도 있다면 들려주세요.
(김)사월이 참여한 ‘The Boy Named Luke and The Girl Named Lily’를 (천)미지에게 들려주었을 때 미지가 굉장히 맘에 들어 했어요. 사월에게 피처링을 부탁하겠다고 하니 조금 실망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미지와 더욱 어울리는 곡을 쓰겠다’ ‘네가 사랑할 수 있는 노래를 하나 더 쓰겠다’라고 말하고 작업했던 게 ‘Borderline’이에요. 다행히 미지가 매우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하하.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은, 한정인 씨의 음악(단순히 이번 음반뿐만 아니라)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우리는 함께 성장해요. 살다보면 혼자서 감당하고 책임져야만 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누군가의 말과 음악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야만 이루어지는 일들도 있어요. 협업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함께 만드는 음악들이 더욱 커지고 넓어지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협업은 꾸준히 하고 싶어요.
-한정인씨의 향후 계획도 궁금합니다.
8월 13일에 벨로주 홍대에서 쇼케이스가 있습니다. 몇 곡은 밴드셋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드럼에 류지(브로콜리 너마저/전자양 밴드), 기타에 전다인(순이 우주로/전다인밴드), 건반에 Piano Shoegazer가 함께 하고요. 많은 곡들에 영상 효과들도 함께 사용해 다채로운 공연을 만들 예정입니다. 늘 그랬듯이 제 마음과 기력을 끝의 끝까지 쏟아 부어 활동하겠습니다. 언제나 저의 최선을 보여드리겠어요. 절대로 한 조각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한정인 씨의 최종 목표는?
어떤 시대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거창한가요?(웃음) 하지만 이게 제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