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체제 4년…'다이내믹' 장착한 LG, 미래가 더 기대된다
입력 2022.06.28 12:01
수정 2022.06.28 13:44
안 되는 사업은 과감하게 버리는 '선택과 집중' 실용주의 노선
배터리 분쟁에서 보인 '강단'에 임직원 사기 충천
고객가치 중심 경영…전장·로봇·AI 등 미래 먹거리 집중 육성
2018년 6월 29일. 선대 회장이 별세하고 갑작스럽게 국내 4대그룹 중 한 곳을 이끌게 된, 30대를 갓 넘긴 젊은 총수를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20대부터 한화그룹을 이끌었던 김승연 회장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수십 곳의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기업집단 LG그룹을 이끌기에는 이전까지 CEO 경력이 전무했던, 상무에서 회장으로 신분이 급상승한 구광모 회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4년이 흐른 지금, 그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사라지고 기대만 남았다. 인화(人和)를 바탕으로 안정을 추구하던 LG의 색깔이 다이내믹하게 바뀌었고, 과거엔 찾아보기 힘들었던 재계를 뒤흔들 만한 전략적 결정이 속속 이뤄졌다.
산업 패러다임 전환기에 빠르고 과감한 성향을 가진 총수의 등장은 최적의 타이밍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의 LG의 변화에 더 큰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스마트폰 사업 과감히 버린 구광모…'선택과 집중' 실용주의 노선
지난해 4월 발표된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는 구 회장 취임 이후 LG그룹에서 이뤄진 가장 큰 변화다.
수십 년간 영위해 온 사업을 단번에 접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스마트폰은 가전 및 TV와 함께 LG전자의 3대 핵심 사업 중 하나였고, 기업 브랜드 가치에 미치는 영향도 컸다.
하지만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줘야 했다. 스마트폰을 주력으로 하는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MC)사업본부는 지난 2015년 2분기부터 지난해 1분기까지 24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누적 적자는 5조원에 달했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에 ‘규모의 경제’에도 밀리며 개선 여지도 불투명해졌다.
그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이가 구 회장이다. ‘안 되는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그 여력으로 유망 사업을 육성해 제2의 도약을 꾀하겠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바탕으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구 회장이 성장성이 떨어지거나 과도한 적자를 내는 사업에 칼을 댄 것은 스마트폰 사업이 처음은 아니었다. LG전자는 연료전지회사 LG퓨얼셀시스템즈를 청산했고 수처리 자회사 하이엔텍과 LG히타치워터솔루션도 매각했다.
LG화학은 LCD(액정 디스플레이)소재사업을 정리하고 올레드(OLED)소재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소재(EP)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LG디스플레이는 올레드 조명사업을, LG이노텍은 고밀도다층기판(HDI)사업, 조명용 LED(발광다이오드)사업을 접었다.
'업계 최고 기술력' 태양광도 과감히 포기
오는 30일에는 LG전자의 태양광 사업도 종료된다. 지난 2월 이사회에서 결정난 사업으로, 역시 ‘구광모표’ 실용주의 노선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LG전자의 태양광 사업은 사업 철수 결정 시점까지만 해도 기술력 측면에서 업계 최고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대로 사업을 진행한다면 차세대 셀 발전효율 측면에서 업계를 선도할 여력이 충분했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서 저가 제품 판매가 확대되며 가격경쟁이 치열해지고 폴리실리콘을 비롯한 원자재 비용이 상승하는 등 사업환경이 악화되고 미래가 불투명해지며 결국 사업을 접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 수년간 LG전자 태양광 패널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1%대에 머물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해 왔다. 지난 2019년 1조1000억원대에 달했던 매출은 2020년 8000억원 대로 하락했고 향후 사업의 불확실성도 지속되는 추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사실상의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한 것도 대단하지만, 업계를 선도하는 기술력을 갖춘 태양광 사업을 접은 건 더 대단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SK와의 배터리 분쟁 "LG가 이럴 줄이야..."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LG가 재계에서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된 사건은 SK와의 배터리 기술 분쟁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 분사 이전의 LG화학이 2019년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이후 양사는 한국과 미국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여왔고, 이는 LG그룹과 SK그룹간 갈등으로까지 확전되는 양상을 보였다.
“예전의 LG였다면 적당한 선에서 합의 보고 끝냈을 텐데...”
당시 LG의 강경한 대응을 보고 재계에서 나온 말이다. 그만큼 배터리 분쟁에서 LG의 태도는 과거와는 온도가 달랐다.
무려 2년 간의 공방 끝에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까지 중재에 나서고 나서야 LG는 2조원에 이르는 보상금을 받는 것을 전제로 합의문에 서명했다.
금액보다 더 큰 소득은 내부 직원들의 사기였다. 이해하고 양보하는 ‘인화’도 좋지만, 그 때문에 속 끓이는 일이 많았던 LG 임직원들은 ‘다소 잡음이 있더라도 받을 건 받아내겠다’는 강단을 보인 총수에게 열렬한 환영을 보냈다.
"잘 만들면 뭐하나 고객이 가치를 느껴야지"
LG전자는 오랜 기간 생활가전 분야에서 높은 품질로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제품을 부각시키는 능력에서 경쟁사에 비해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LG그룹의 다른 계열사 제품들 역시 비슷한 평을 듣는다.
구광모 회장은 LG의 ‘잘만 만들면 되지’ 문화도 뜯어고치고 있다. 구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금까지 LG는 양질의 제품을 잘 만드는 일에 노력해 왔지만 요즘 고객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한다.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사용하기 전과 후의 경험이 달라졌을 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느꼈을 때 만들어진다. 우리가 고객에게 전달해야 할 것도 바로 이런 ‘가치 있는 고객 경험’이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일하는 방식도 여기에 맞게 혁신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잘 만든 제품을 ‘고객가치’로 승화시킬 것을 강조한 것이다. LG의 부족한 부분을 잘 간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 회장은 취임 이후 줄곧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고객가치’를 강조해 왔다. 고객가치경영은 그를 상징하는 경영 키워드다.
최근 진행한 LG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도 위기 대응보다는 고객가치경영을 재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고객가치 중심 경영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전장·로봇·AI 등 LG 미래 먹거리에 집중
LG의 지속성장가능성을 보장할 미래 사업 육성에 있어서도 구 회장의 빠르고 과감한 경영전략이 돋보인다. 스마트폰과 태양광 등 부진한 사업을 접은 대신 그 여력을 전장·로봇·인공지능(AI) 등 미래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전장사업과 관련해서는 전기차에 필요한 모든 부품과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나가고 있다.
이미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부품(LG전자·LG이노텍)·차량용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전장솔루션들을 갖춘 상태에서 LG전자 자동차부품솔루션(VS)사업본부(인포테인먼트),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전기차 파워트레인), ZKW(자동차 조명)의 삼각편대로 전장사업을 체계화해 전기차 시장의 ‘슈퍼을(乙)’로 군림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로봇사업도 지난 2018년 말 여러 조직에 흩어져 있던 로봇 관련 부서를 통합해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로봇사업센터’를 신설하는 등 지속적인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어 2020년 말에는 조직개편을 통해 로봇사업을 비즈니스솔루션(BS)사업부로 이관해 LG전자 5대 주력 사업(H&A·HE·MC·VS·BS) 군에 편입시키며 미래 성장동력임을 분명히 했다.
인공지능(AI)도 지난해 초 LG전자·LG디스플레이·LG화학·LG유플러스·LG CNS 등 16개 계열사가 참여하는 전담 조직인 ‘LG AI 연구원(LG AI Research)’을 출범시키는 등 AI를 그룹 차원의 신사업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LG그룹은 지난 5월 향후 5년간 106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중 40%인 43조원을 미래성장 분야에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미래성장 분야에서도 절반가량인 21조원을 배터리, 전장, 차세대디스플레이, 인공지능(AI)·데이터(Data), 바이오, 친환경 클린테크 분야의 R&D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구광모호’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명확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