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 역전패, 윤석열에겐 약이다
입력 2022.06.04 02:02
수정 2022.06.05 05:39
호남 제주 외 전승했더라면 새 정부 초부터 기고만장할 뻔
겸손한 국정 수행으로 2년 후 국회 과반 확보하는 게 더 중요
민주당엔 독, 완패 불구 거짓 승리감 안고 당권 싸움만…….
민주, 0.15% 승리로 尹의 0.73% 승 타령 부를 수 없게 돼
큰일 날 뻔했다.
여당이 ‘완승 마이너스 1승’을 해서 말이다.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진 경기도지사 선거 개표에서, 수도권 위성도시들의 사전투표함 개봉이 김은혜를 울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대통령 윤석열과 집권 보수 정당 국민의힘은 이제 세상은 내 것이라는 정복감에 젖었을지 모른다.
물론, 말이야 ‘국민의 뜻을 받들어 더욱 겸손하게 섬기겠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속마음은, ‘오만한 거대 야당은 심판 당하고 일 열심히 하려는 소수 여당과 새 정부에게는 기대와 응원을 보낸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기고만장하지 않았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대단히 의미가 큰 선택을 했다. 그들은 과연 하늘이다. 김은혜를 0.15% 포인트 차로 석패(惜敗)시키면서 민주당 후보 김동연에게 월계관(月桂冠)을 씌워줬다. 그는 다 죽은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큰 위안을 안겨주었고, 자신은 ‘씨가 마를 뻔했던’ 이 진영의 차기 대권 후보군 선두에 이름을 굵게 새기는 1석3조를 거뒀다.
윤석열은 의회주의와 협치를 강조해온 사람이긴 하지만, 그의 밀어붙이기 스타일과 0선의 정치 신인 경력으로 볼 때 사실상 전승(全勝)했을 경우 독주(獨走) 드라이브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력은 없고 발목 잡기에나 능한 야당을 무시하고, 나라를 위해 독주하는 게 뭐가 나쁘냐고 생각하는 보수우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주는 적(敵)을 만들게 돼 있고, 적이 많아지면 세력화가 되고 여론을 등에 업게 된다. 그 적은 조작과 선동에 관한 한 세계 최강급인 대한민국 진보좌파 여론 주도자들이다. 그들은 사소한 문제 하나 가지고도 대통령 탄핵을 운운하는, 호시탐탐(虎視貪貪) 반역의 달인들이다. 자나 깨나 경계해야 할 일 아닌가?
그녀의 막판 통한의 뒤집기 퇴패에도 속이 상하고 그 중요한 경기도를 잃어 ‘이겼어도 진 것 같은’ 상실감에 빠져 있던 지지자들을 위로해주는 패배 인정 연설을 김은혜는 했다. 선거 승복(承服)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모범을 보여준 명문이다.
“......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신 김동연 후보님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기도의 발전에 여야가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협치하여 좋은 도정으로 도민 여러분께 보답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저의 부족함으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졌지만, 여러분은 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원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묵묵히 응원하고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윤석열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자기는 상대 후보 이재명에게 5% 포인트 이상을 진, 호남 출신과 민주당 지지 젊은 층이 밀집한 지역에서, 취임 20여일 만에 대등한 경쟁을 펼치며(물론 윤석열 효과 덕이 크긴 하다) 천금과도 같은 경종을 울려줌과 동시에, 그의 새 정부 성공과 협치를 당부하는 아름다운 패자의 변을 읽는 ‘측근’을 두어서다. 그는 이 선거의 교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오세훈의 서울시 전승 아닌 대승도 윤석열에게는 다행이다. 애초에 구청장 스코어가 25-0까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었으나 결과는 17-8, 황금분할(黃金分割)이었다. ‘하늘’인 시민들이 줄투표 대신 ‘시장은 오세훈, 구청장은 민주당’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많이 한 탓이다.
서울시의회도 종전 11-101이 76-36으로 바뀌었다. 싹쓸이 수준이 아닌 딱 좋은 구도다. 김어준 같은, 공영방송에서 가짜뉴스 등으로 진영 선동질이나 하는 이를 퇴출시키고 시장의 어젠다를 무턱대고 방해하는 걸 막을 다수 의석이라 이상적이다.
경기도 또한 도지사는 야당에게 내주었지만,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 기초 의회는 여당이 동률 또는 압도적 우위를 점했으므로 이재명식 의혹투성이 도정(道政)은 이제 불가능하게 됐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이 점에서도 이번 지방선거로부터 받은 선물 보따리가 아주 두둑하다.
열성 보수우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인천 계양 을은 윤희숙을 내세우고, 경기도는 강용석과 단일화를 했어야 했다면서 이를 반대하거나 소극적이었던 당 대표 이준석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이준석이 잘한 건 없지만, 계양과 경기도를 다 먹었으면 체 할 확률이 매우 컸을 것이다.
지방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이 2년 후 총선이다. 국회 입법 권력을 가져와야 비로소 정권교체가 완성된다. 그래야 검수완박 같은, 나라를 흔드는 만행이 일어나지 않고, 세비(歲費) 주는 게 아까운 ‘처럼회 코미디’ 꼴불견을 더 볼 일이 없다.
이런 중차대한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앞으로 2년간 낮은 자세로 조심조심, 저쪽 진영의 대선 불복 준동(蠢動)을 단호하게 쳐내가면서 점수를 쌓아 올려야만 한다. 계양, 경기 포함 완승은 이 과업을 위한 정신 무장을 위해 해(害)가 되는, 불필요하게 너무 좋은 선거 결과가 될 수 있었다.
김동연의 극적 역전승은 윤석열에게 약(藥)이지만, 민주당 쪽에는 위안인 한편 독(毒)이 될 것이다. 사실상의 전패 모면으로 당을 완전 혁신하는 계기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크게 졌어도 이긴 것 같은’ 거짓 승리감에 의해 다시 가버린다면 독이다. 그들은 내로남불 위선과 무능, 오만, 거짓말, 협잡(挾雜)의 당을 이끈 인물들 청소 없이는 윤석열과 상대할 수 없다.
격차는 3개월도 안 돼 차이 나게 벌어졌다. 0.73% 포인트에서 약 10% 포인트로다. 민주당은 이 무서운 의미를 겸허히 새기지 않고 친문(親文)과 친명(親明)으로 나뉘어 당권 싸움에만 몰두한다면 이번에 광주가 보인 37.7% 투표율(지지율은 약 30%)을 앞으로 전국에서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경기도에서의 0.15% 포인트 차 승리로 더 이상 ‘윤석열의 0.73% 승’ 타령도 부를 수 없게 됐다. 이젠 10% 승(勝)이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