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정년연장 '빨간불'
입력 2022.05.26 13:06
수정 2022.05.26 23:34
경총 "실직 예방, 청년 일자리 창출 위한 제도" 항변
기업이 근로자들의 정년을 연장해주는 대신 임금을 단계별로 하향 조정하는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금지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앞으로 고령 근로자들의 정년연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재계에서는 고령화에 따라 근로 희망 연령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뤄진 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결과적으로 근로자들이 원하는 ‘정년 연장’을 어렵게 만들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조항은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이 사건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금지에 위반돼 무효라는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모든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본 것이 아니라 개별 사건별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효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임금피크제는 우리나라의 경직된 임금체계 실태 및 고용환경을 감안해 고령자의 갑작스러운 실직을 예방하고 새로운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기 위해 노사간 합의를 통해 도입된 제도”라며 “연령 차별이 아닌 연령 상생을 위한 제도”라고 항변했다.
이어 “더욱이 연령차별을 금지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은 ‘특정 연령집단의 고용유지와 촉진을 위한 조치’는 연령차별로 보지 않고 있다”면서 “특히, 법은 2016년 1월부터 60세 정년을 의무화하면서 그 대안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하도록 사용자에게 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임금피크제는 임금체계 개편의 일환으로 널리 활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임금피크제는 고령자의 고용불안, 청년구직자의 일자리 기회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만큼 향후 관련 판결들이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과 법의 취지, 산업계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신중하게 내려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 판결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고 고용 불안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임금피크제는 연공급제 하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이를 무효화하면 청년일자리, 중장년 고용불안 등 정년연장의 부작용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 본부장은 “더욱이 줄소송사태와 인력경직성 심화로 기업 경영부담이 가중되고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우려된다”면서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하는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도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도모하면서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많은 기업에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됐다”면서 “하지만 이번 판결은 관련 법 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하면서 산업현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어 “향후 관련 재판에서는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자의 고용 안정과 청년들의 일자리 기회 확대 등 임금피크제가 갖는 순기능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신중한 해석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