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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주의자들의 파괴 본능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2.04.25 08:08
수정 2022.05.02 06:55

‘검수완박’은 검찰 완전박살 동의어

‘합의’로 민주당에 명분 준 국민의힘

숨을 멎게 하는 입법전횡의 작태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를 마친 뒤 메모장을 살펴보며 걸어 나오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혁명주의자들에게는 파괴가 선이다. 그들의 목표는 새로운 세상의 건설이 아니라 파괴 그 자체다. 지금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진보·좌파 세력 대다수는 노무현 정권이 성립되면서 급진화 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시민혁명 정부’를 선언한 이후 진보·좌파는 혁명주의로 무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의식을 승계했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노 전 대통령이 간혹 ‘시민혁명’을 언급한데 비해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을 입에 달고 살았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그는 ‘촛불혁명’의 전도사 연했다. 자신이 바로 그 혁명의 아들을 자처했음은 물론이다.

‘검수완박’은 검찰 완전박살 동의어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입법에 강박증을 드러내 온 배경에도 혁명주의자들의 파괴 본능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검찰개혁’이라고 하지만 그 목표는 고치기가 아니라 무너뜨리기다. 검찰이라는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겠다는 결기가 극렬 세력의 말과 행동에서 분출한다.


지지자들을 선동하기엔 ‘노 전 대통령의 강요된 자살’에 비길만한 호재가 달리 없다. 이명박 정권의 검찰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스토리 얼개다. 검찰 악마화는, 적어도 이들 사이에서는 성공적 담론 구조가 됐다. 혁명을 통한 정권 교체를 추구하던 집단은 ‘정치적 유다’들을 회개시키고 돌려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다시 뭉쳤다. 그리고 집권에 성공했다.


‘검찰청 폐지’는 문재인 정권의 최우선적 과제였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에 대한 이념적 동지로서의 ‘정당한’ 갚음일 것이었다(이명박 전 대통령을 중죄인으로 만들어 감옥에 넣고 사면까지 외면했지만, 이들에겐 그 정도로 풀릴 한이 아니었다). 인사권을 행사하거나 권한 일부를 축소하는 정도로 만족할 사람들이었다면 애초에 보복은 생각도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검찰완박(완전박살)에까지 이르러야 복수의 완성과 이념 진영의 기대에 대한 부응이 된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검찰개혁의 기수 역할을 맡았던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검찰의 저항이 시작됐다(저항이라고 해서 검찰 측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라고 말하기는 무리다. 문 대통령, 조 수석이 반(反) 검찰주의자라는 점이 감안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검찰을 잘 설득하고 이끌어 개혁 저항계수를 최소화해 주기를 기대해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앉혔겠지만 그는 오히려 검찰의 수문장으로 나섰다.


조국·윤석열 콜라보가 실패하자 문 대통령은 추미애를 내세웠다. 그의 임무에는 ‘조국 구하기’가 덧보태졌다. 아예 호랑이의 이빨을 다 뽑아버리겠다는 기세로 인사권을 휘둘렀다. 그러나 추 장관의 인사 전횡도 윤 총장에겐 먹히지 않았다. 이때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태 해결을 시도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추 장관의 뒤에 숨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과 조국·추미애·박범계 라인이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물론 ‘고르다 고르다 하필이면 그 사람을…’이라는 국민의 반응을 초래한 민주당의 공천 실패도 한몫했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 일단은 복기(復碁)부터 하는 게 순서다. 대통령 선거든 국회의원 총선이든 패배한 정당은 다 그랬다. 그런데 민주당은 아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힘자랑에 여념이 없다.

‘합의’로 민주당에 명분 준 국민의힘

이런 정당이 무슨 일인들 안 벌리겠는가. 한동안 떠들다 만 것 같던 ‘검수완박’의 검(劍)을 다시 꺼냈다. 대선에 패배하자 검찰에 대한 증오가 다시 들끓기 시작했고, 검찰의 위협이 현실화했다. 윤 대통령 당선인을 상대로 정권이 저질러 놓은 비열한 횡포가 너무 많았다. 사람의 판단은 자신의 경험에 좌우된다. “지금 방벽을 쳐두지 않으면 우리도 당할 수 있다”는 강박감에 쫓겼을 개연성이 차고도 넘친다. “다 죽는다.” “청와대 20명 감옥 간다.” 양향자 의원이 들었다는 이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자신들의 그림자에 놀라서 문 대통령 임기 만료 이전에 검수완박 법제화를 완수하려고 한 것일 터이다.


171석의 의석과 민형배 의원의 위장탈당을 배경으로 한 박홍근의 협박, 그리고 박병석 국회의장의 노회한 중재술에 국민의힘 권성동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다 뺏기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지키자는 생각이었겠지만 상대는 그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을 부패범죄·경제범죄 두 개로 줄이고 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산업범죄·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범죄는 싹 거둬 경찰에 안겨주고 말았다.


두 가지 범죄도 중수청이 설치될 때까지다. 보완수사 요구권을 지켰다고 국민의힘 권 원내대표가 강조했지만 ‘범죄의 동일성과 단일성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라는 단서가 붙었다. 결정적으로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검찰의 수사망에서 아주 벗어나 버렸다. 문 정권의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 모두를 안전지대로 피신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야당과의 합의 하에!


국민의힘 최고위원회가 타협안을 재검토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다. 이제 와서 최고위원회가 원점으로 돌린다고 해봐야 민주당과 박 의장에게 본회의 상정 및 처리 강행의 명분만 줄 뿐이다.


대선에 진 집권당 측이 사전 집단 사면법 비슷한 것을 법이랍시고 만들어내는 이런 장면은 민주정치의 역사에는 없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떠들고 자신들이 마치 그 화신인 양하던 사람들의 작태가 이렇다. 문 대통령도 별 주저함 없이 법안에 서명, 공포할 것이다. 민주당 사람들이 지켜 주리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다 해도 제도의 보호야 왜 마다하겠는가.

숨을 멎게 하는 입법전횡의 작태들

“지난 22일 공개된 [대담, 문재인의 5년- ‘문 대통령 지키기’ 논쟁에 관하여] 영상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여권에서 ‘문 대통령을 지켜야 된다.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 ‘선거용이죠, 뭐’라고 말했다. 손 특파원(손석희 JTBC 순회특파원)이 ‘별로 신경 안 쓰신다는 말씀이시죠’라고 묻자 문 대통령은 ‘네, 뭐 누가 와서 지켜줍니까’라고 답했다”(중앙일보, 4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경우를 바로 옆에서 지켜 본 문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이 곤고한 처지에 놓이자 지켜주기는커녕 등 돌리고 부인하기에 바빠하던 사람들, 그 염량세태를 회상하면 사람에게 기대할 생각이 날 리 없다. 그렇지만 법이 지켜준다면야 왜 마다하겠는가.


어쨌든 민주당과 거기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의 파괴본능은 ‘검찰 박살’에서 또 입증됐다. “누가 우리 앞을 가로막을 거냐!” 정말 이들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장사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들에겐 문 대통령도 이미 뒷전이다.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일단 검찰의 권한을 완전히 빼앗아버리고 보자는 발상에서 비롯된 입법전횡의 그 무모함이 지켜보는 사람의 숨을 멎게 할 정도다.


“어떻게 하려고 이러시나요?”


“알게 뭐야, 그 때는 또 수가 생기겠지.”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채워진 초거대 정당이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한 대의민주정치는 발붙일 곳이 없다. 우리의 대의민주정치는 이들로 인해 종언을 고하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의정의 장례식을 보는 기분이다. 1900년대 중후반의 상황도 아니고, 21세기에도 한 참 깊이 들어서서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가.


지난 1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리 국회에서 “우리가 러시아에 맞설 수 있게 대한민국이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장소가 국회 본회의장이 아니라 국회도서관 대강당이었다. 참석 국회의원의 수는 재적 의원 300명 중 60명에 불과했다. 의장단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화신, 인권의 수호자를 자처해 온 문 정권의 집권당 모습이 이렇다. 이런 사람들이 검찰 죽이기 입법에는 앞 다퉈 서명했다. 관련 법안들은 당 소속 172명 전원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위장 탈당자도 이들 가운데 있었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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