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유세'면 인원 상관없다…판치는 '꼼수집회'
입력 2022.03.06 05:40
수정 2022.03.06 08:56
방역지침상 '선거 운동'은 인원 제한 없어…곳곳에서 선거유세 형식 빌린 '꼼수집회' 난무
진보당 김재연 후보 선거유세 빌린 택배집회…국민혁명당 결합 전광훈 목사 3·1절 기도회
서울시 "선거 유세는 시·구청 소관 아니지만 오후 기도회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검토할 것"
전문가 "모임 성격·목적에 따라 인원수 차별? 이중잣대…정부 방역지침, 형평성 맞게 개선돼야"
방역지침상 인원 제한이 없는 '선거 유세'로 둔갑해 수천명씩 운집하는 집회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임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인원 수를 차별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며 정부의 방역지침이 형평성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행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한 방역 지침상 집회로 모일 수 있는 최대 인원은 백신접종을 완료한 299명이지만, 선거운동은 인원 제한이 없어 수천 명이 합법적으로 모일 수 있다. 집회 현장에 선거 유세 차량 등을 동원하면 사실상 대규모 집회를 열어도 현행법상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때문에 선거유세 형식을 빌린 집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21일 택배노조는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2022 전국 택배노동자대회'를 열면서, 진보당 김재연 대선 후보의 선거유세로 신고했다. 이날 집회 측 추산으로 2000여명이 현장에 운집했지만, 선거유세로 신고된 탓에 경찰과 행정기관의 제재는 따로 받지 않았다.
지난 1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국민혁명당의 선거유세와 종교행사를 결합한 '3·1절 1000만 기도회'를 열었다. 이날 오전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구본철 후보의 선거 유세가 잠시 있었으나, 이후로는 전 목사의 발언과 기도회가 오후까지 이어졌다. 인파가 점점 몰려 오후 3시께는 8000여명 넘는 인원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1500명 가량의 인력을 배치했지만, 이날 행사를 선거유세로 보고 직접 제재에 나서지는 않았다.
선관위 관계자도 "선거 운동의 경우 코로나19 관련 방역 수칙을 적용해 규제하거나 제한할 수는 없다"며 "정당, 후보자 등이 자체적으로 방역수칙을 준수해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다만 서울시 관계자는 "선거 유세는 시·구청 소관이 아니지만, 이후에 진행된 기도회에 대해서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구청 측과 함께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역지침이 형평성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감염병예방법은 인원 제한을 받는 모임을 명시적으로 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집회 등을 제한할 수 있다고만 규정돼 있으며 보건복지부 자체 고시로 모임을 제한한다"며 "모임 목적에 따라 코로나 감염 위험이 달라지는 게 아닌데, 모임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인원 수를 차별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꼼수 집회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보건복지부 기준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와 법원에서도 집회 관련 사안이 다퉈지고 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가 폐지될 단계는 아니지만 방역지침도 형평성을 고려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하나 강신업 변호사는 "선거운동으로 둔갑한 '꼼수집회'는 그냥 놔두고, 일반 집회에만 299명으로 인원 제한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이중잣대"라며 "코로나19가 일상화되면서 오히려 꼼수를 쓰면서까지 집회가 열리고 있는데, 방역지침이 완화되는 추세를 감안해 집회의 자유도 폭넓게 인정하는 지침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난 2년간 봐왔듯이 야외 집회의 경우 마스크를 쓰고 2m 이상 간격을 유지하는 등 기본 원칙만 지키면 감염 위험도는 높지 않다"며 "야외에서 100명, 200명으로 인원 제한을 둬도 현실적인 효과가 크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그러면서 "문제는 집회 전후로 참석자들이 음식점, 카페 등에서 개별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이런 개별 모임을 자제하는데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