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은 있는데”…주류업계, 소주 가격 인상 놓고 고민하는 이유
입력 2022.02.10 07:08
수정 2022.02.09 15:53
'서민 술' 인식...가격 인상에 소비자 민감
식당 판매가 인상과도 직결...물가 인상 주범으로 찍힐까 우려
소주의 원료인 주정 가격이 10년 만에 인상되면서 출고 가격 역시 인상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양사는 당장 인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오랫동안 가격 인상 요인이 누적돼 온 만큼 언제 올려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 이 시장의 공통된 의견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주정판매는 이달 초 주정 가격을 평균 7.8% 올렸다. 2012년 이후 10년 만의 가격 인상이다. 과세 주정은 드럼(200L)당 36만3743원에서 39만1527원으로 7.6% 인상했다. 미납세 및 면세는 35만1203원에서 37만8987원으로 7.9% 올렸다.
대한주정판매는 국내 10개 주정 제조사들이 참여해 만든 판매 전담 회사다. 일반적으로 주류 업체는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섞어 소주를 만든다. 주정 가격이 오르면서 소줏값 인상은 ‘시간 문제’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주 병뚜껑 가격도 올랐다. 삼화왕관과 세왕금속공업 등 병뚜껑 업체들은 지난 1일 소주 병뚜껑 공급가를 평균 16% 인상했다. 주류 업체가 공병을 회수할 때 도·소매상에 주는 취급수수료도 병당 2원씩 올랐다. 코로나19 여파로 물류비와 인건비도 치솟고 있다.
소주 업체 투톱인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은 가격 인상 요인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아직 내부에서 “논의된 바는 없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각 사의 대표 제품인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2019년 각각 6.5%, 7.2% 인상된 이후 현재까지 출고가가 동결된 상태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원재료 및 부품의 가격 상승으로 향후 소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3년 전처럼 업계 1위 업체인 하이트진로가 소주값 인상에 나설 경우, 나머지 업체들 역시 줄줄이 가격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뒤따른다.
이와 관련해 주류업계 관계자는 “현재 가격 인상 요인이 있음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아직 관련 논의는 없는 상황”이라며 “비단 소주뿐 아니라 대부분의 제조품들이 원재료 등의 가격 변동에 의한 인상·인하 요인을 즉각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소주 제조사들은 출고가 인상에 앞서 우려 요인이 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민 술로 알려진 소주 가격이 오를 경우 라면 못지 않게 소비자 저항이 클 것으로 예측되는 데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물가상승 행렬에 동참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현재 주류 가격은 일제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수입 맥주와 수제 맥주는 이미 가격 인상이 예고된 상황이다. 내달부터 편의점 등에서 4캔 1만원에 판매되던 캔 맥주 행사가는 1만1000원으로 상향된다. 4월부터는 주세법 개정으로 국산 맥주 가격도 오를 것으로 점쳐진다.
막걸리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후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은 와인 수입사들 역시 가격 인상을 논의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위스키와 데킬라, 리큐르 등 마니아층의 수요가 높은 수입 주류 역시 가격 인상을 저울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인은 원재료 가격 인상에 있다. 맥아와 홉, 쌀, 알루미늄 캔 가격 등이 오른 데다 인건비 상승까지 맞물렸다는 게 주류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수입주류도 해외 산지에서 공급가를 올리고 있고, 국제물류 대란으로 인한 비용 부담이 늘었다.
이런 가운데 서민 식품의 마지막 보루인 소주 가격마저 오를 경우 소비자가 느낄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소주 제조 업체들은 내다보고 있다. 가격 인상 요인이 충분함에도 소주 가격 인상 시기와 인상폭을 두고 눈치싸움을 벌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식당 판매가 인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고민은 더욱 크다.
제조 업체가 출고가를 인상하면 식당에서 파는 소주 가격 또한 껑충 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술집이나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업주들로서는 소주 가격을 올릴 합당한 명분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가격을 높여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주점 프랜차이즈 관계자 역시 “출고가가 오를 때 500원단위로 인상한 전례는 거의 없다”며 “다른 식자재 가격 인상을 메뉴에 일일이 반영하지 못한 것이 주류쪽으로 쏠린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도 “식당에서 판매되던 삼겹살이 납품가가 100원 올랐다고 1인분에 100원 올리는 경우는 없듯 술도 마찬가지”라며 “식당과 술집에서 판매되는 주류의 경우 인건비 등도 함께 술 값에 녹이는 경우가 많다보니 인상 폭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소주 한잔을 먹으려면 5000원이나 되는 돈을 들여야 하는 만큼, 마트나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 소주를 사서 집에서 혼자 먹는 혼술, 홈술 문화가 더욱 확산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출고가가 오르면 식당, 술집에서 판매하는 주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술집과 식당에서의 음주에 대한 부담감이 높아질 수 있고, 이는 홈술과 혼술 확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