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통신조회 '사찰'이라던 민주당, 공수처엔 침묵
입력 2021.12.23 02:37
수정 2021.12.23 00:38
공수처, 광범위 통신조회 논란 일파만파
민간인·기자 이어 야당의원까지 대상
野 "조회 이력 전부 밝히고 사과하라"
민주당은 침묵…사찰 의혹도 내로남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언론인과 민간인을 넘어 야당 정치인의 통신자료까지 광범위하게 조회한 것이 확인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공수처의 공식 사과와 함께 김진욱 공수처장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22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조회한 소속의원은 박성민·박수영·서일준·윤한홍·이양수·조수진·추경호 의원 등 7명에 달했다. 장능인 선대위원장 청년보좌역에 대한 조회도 있었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공수처가 왜 야당 정치인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면 야당 사찰이요 탄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의 광범위 통신자료 조회 사실이 드러난 것은 민변 출신 김준우 변호사가 자신의 SNS에 올린 게 계기가 됐다. 이후 ‘조국 흑서’ 저자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 본지 포함 최소 15개 매체 40여 명 이상 기자들의 통신자료를 공수처가 조회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공수처의 통신조회 이력은 앞으로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공수처는 “주요 피의자 통화 내역에서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주요 피의자와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이 없는 인사들까지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점에서다. 그렇지 않아도 수사 기관의 저인망식 통신자료 조회는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2일 오후 기준 공수처의 통신자료조회와 관련해 대변인 명의 논평이나 브리핑은 전혀 없었으며, 주요 인사들의 입장도 나오지 않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의 한 의원은 “아직 사건의 실체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찰’이라는 용어에 동의할 수 없다”며 “조금 더 사안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또 다른 의원은 “설마 사찰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는 과거와 다른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 시절인 2016년 당시 민주당은 국정원이 당직자 2명에 대해 통신자료조회를 했다고 밝히며 ‘민간인 사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모든 당직자가 통신사에 자료제공 사실확인에 나서기도 했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인권 감수성을 바탕으로 그간 국가기관의 정보수집에 민감하게 대응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경율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수사 중인 사건의 피의자와 통화한 사람을 특정 짓기 위한 거라는 (공수처 해명은) 거짓말임이 백일 하에 드러났다”며 “같은 일이 민주당에 벌어지면 침묵 모드, 국민의힘에 일어나면 소요에 준하는 사태”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정부 때 정보조회 건으로 (민주당) 논평 개수 어마어마 하더라’라는 해시태그도 달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의원과 민간인, 기자와 그 가족까지 공수처가 광범위하게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 드러났다. 외관상 ‘왜 했지’라는 의문이 드는 사람까지 포함됐다는 점에서 공수처가 명백히 해명할 필요가 있다”며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수사기밀이라는 것을 떠나 정권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밝혀줘야할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