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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손석구 "캐릭터보다는 그저 '손석구'로 기억되길"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1.12.20 07:53
수정 2021.12.19 18:53

차기작 '나의 해방 일지'


손석구는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 리듬을 가지고 있다. 대사와 대사 사이의 시간을 둬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자연스러운 시선에서는 여유로움이 묻어 나온다. 그는 이를 통해 극 비중과 상관없이 보는 사람을 집중하게 만든다. 즉 손석구의 연기에는 조급함이 묻어나지 않는다. '연애 빠진 로맨스'의 박우리도 손석구의 힘을 뺀 연기들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데 주효했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주인공 함자영(전종서 분)가 주체가 돼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품으로 손석구는 잡지사에서 연애 칼럼을 쓰는 박우리 역을 맡았다. 손석구는 기존과 다르게 성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에 여성이 중심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시나리오가 명쾌하고 재미있었어요. 여성이 주체가 돼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작품에 예전부터 출연하고 싶었어요. 흔치 않은 작품이 될 거라고 확신했죠. 내가 서포트를 하면 같이 빛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D.P'에서 임지섭 대위로 분했던 그의 까칠했던 모습이 아직 잔상에 남아 박우리를 연기한 손석구가 낯설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이라면 모두들 박우리가 실제 손석구와 가깝다고 말한다.


"평소에 저를 아시는 분들이 '연애 빠진 로맨스'를 본다면 '뭐야 쟤 밥 먹다가 연기했네' 하실 걸요. 제가 박우리를 연기하며 중점을 둔 건 기본적으로 사랑스러워 보이길 원했어요.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랑에 서툰 사람으로 비치길 바랐죠. 그래야 관객들이 기대와 우려 속에서 영화를 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연애 빠진 로맨스'는 독립영화계에서 '여자 홍상수'라고 불리는 정가영 감독의 작품으로, 손석구는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현실적인 설정에 감탄했다.


"대본 읽을 때부터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았어요. 보면서도 '진짜' 같았거든요. 화려한 카메라 워크가 아닌, 일상적이고 소소한, 그러면서 '진짜' 같은 이야기가 정말 매력적이었죠. 그리고 그것이 우리란 인물이 추구하는 색깔이 됐으면 했고요."


연기에 물음표가 가득할 땐 현장에서 정가영 감독을 관찰했다. 익살스럽고 성에 관심이 많은 정가영 감독을 살피면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정가영 감독의 에너지를 맞추면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와요. 감독님 자체가 '연애 빠진 로맨스'와 결이 비슷해요. 현실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잘 던지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감독님을 보면서 따라 하고 참고했어요."


손석구는 작품 촬영을 마칠 때마다 함께한 동료들에게 손편지를 선물한다. 그가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는 방법이다. 이번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도 마지막 촬영 날 손편지를 선물해 따스한 온기를 함께 나눴다.


"저를 이끌어주고 함께해 주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썼어요. 마음을 전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편지를 택한 이유는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전적으로도 안정적이고요.(웃음) 이왕 쓸 거 솔직한 이야기만 담고 싶어서 편지를 쓰며 되돌아봐요. 그럼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이 정리되더라고요. 이번에는 평양냉면집 마지막 촬영 날 편지를 돌렸는데, 갑자기 울컥해가지고 연기가 잘 안됐어요. 하하. 그래서 테이크를 많이 갔던 기억이 있네요."


극 중 우리는 잡지사 편집장의 강요로 연애 칼럼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함자영과의 만남을 동의 없이 각색해 올리면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사랑 앞에 머뭇거리다 함자영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을 시점, 만남을 공유한 칼럼으로 둘은 갈등을 맞는다. 이 설정을 두고 손석구는 많은 고민을 했다. 지탄받아야 마땅 받아야 할 박우리의 행동이 미화되지 않길 바랐다.


"실제로 우리의 행동은 당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넷의 흥미 위주의 글로 자신의 이야기가 소비됐다고 생각하면 여지가 없죠. 우리가 자신의 행동을 설득하는 모습만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길 바랐어요. 회식 자리에서 편집장님에게 '이제 이런 거 그만해야 되지 않겠냐'라고 말을 하는 장면을 제안했었어요. 최종본에서는 편집됐어요. 우리가 휘둘리는 캐릭터임을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죠. 우리끼리도 '이게 납득이 될까, '염치없는 게 아닐까', '엔딩을 위한 엔딩이진 않을까' 등 우리끼리도 고민이 많았던 지점이었습니다."


전종서와의 호흡은 만나기 전부터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단다. 전종서 역시 디테일한 연기 방식은 다르지만 손석구와 추구하는 연기 방향이 같아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전) 종서는 명쾌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을 딱 보면 '얘랑은 금방 친해지겠다'라고 느낄 때가 있잖아요. 종서가 그랬어요. 친해져보니 사람 관계에서 장군 스타일이더라고요.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잘못을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은 우직함이 있는 친구였어요."


손석구는 최근 왓챠 '언프레임드' 프로젝트를 통해 단편 연출작 '재방송'을 공개했다. 손석구는 연출에 도전한 것을 두고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이제훈에게 제의를 받았고 엄청난 자유를 보장해 줬기 때문에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20대 때는 '연기 안 했으면 큰일 났다'고 생각했으면 이번 도전은 30대 때 하길 잘했던 경험이 됐죠. 이 경험으로 배우 생활에 더 미련이 없어졌어요. 저는 연기가 재미있어서 해요. 만약 재미가 없고 열정이 다했다면 하고 싶지 않거든요. 연출을 해보니 제2의 인생을 연출로 해봐도 될 것 같은 가능성을 봤어요. 그리고 그 마음가짐이 연기할 때의 저를 더 편하게 만들어줘요. 이게 연출이 배우로서도 도움이 된 지점입니다."


재미와 열정이 다하면 연기를 언제든지 그만 둘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손석구였지만, 현재는 배우를 체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허락받은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연기를 펼치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굳이 캐릭터가 되려고 하진 않아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도 연기라고 생각해요. 연기하는 캐릭터보다는 그냥 저라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길 바라요. 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판타지나 희망을 드리고 싶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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