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 물어보니 ⑬] '50억 클럽' 소송 걸린 박수영…면책특권 인정될까
입력 2021.10.09 05:24
수정 2021.10.09 08:27
50억 클럽 6명 실명 공개…김수남 "사실 아니다" 5억 손배소
면책특권, 국회가 정부 제대로 비판·감시하기 위한 권리…헌법이 보장, 민·형사상 책임 면제
법조계 "진실이라고 충분히 입증된 얘기만 할 수 있다면 특권이라고 할 수 없어"
"단순 허위나 비방 목적 없고 직무 관련 되면 인정…자유로운 의혹 제기가 특권"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관련 화천대유로부터 금품을 받기로 한 이른바 '50억 클럽' 6명 명단을 공개한 가운데, 당사자로 지목된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박 의원의 면책특권 적용 가능성이 주목된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박수영 의원의 명단 공개가 공익성을 인정받고 헌법상 '면책특권'이 적용돼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앞서 박 의원은 지난 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영학 회계사 녹취록과 복수 제보에 의하면 김만배, 유동규, 정영학과의 대화에서 50억원씩 주기로 한 6명의 이름이 나온다"며 이 '50억 클럽'에 김 전 총장,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검, 곽상도 무소속 의원, 최재경 전 민정수석, 홍 모씨 등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전 총장 측 소송대리인은 다음날 입장문을 내고 "박 의원의 국정감사 도중 발언과 관련해 금일 서울중앙법원에 박 의원을 상대로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손해배상금 5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대리인은 "'50억 클럽'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도 무제한일 수는 없으며,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고 발언한 데 면책특권이 인정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다. 헌법 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회 내에서 자유롭게 발언하고 표결할 수 있도록 보장해 제대로 입법활동을 하고 정부를 비판·감시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다.
물론 국회의원의 모든 발언이 면책특권을 적용받는 것은 아니다. 직무와 관련성이 없는 문제의 발언을 했을 때 면책특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대법원은 지난 2013년 故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면서 "불법 도청 녹취록을 인용한 보도자료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배포한 행위는 면책특권이 적용되지만, 해당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행위는 면책특권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국회 발언, 기자회견 등은 직무와 관련 행위로 판단하고 면책특권이 인정되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홈페이지에 게시한 것은 직무와 관련이 없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아울러 대법원은 2019년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한 언론사 사장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면책특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조 의원이 자신의 SNS에 허위사실을 게시한 것은 국회의원의 직무 관련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5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국회 내에서 한 발언이라도 허위사실을 인지한 발언이라면 면책특권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2003년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이 이호철 당시 민정비서관을 상대로 '썬앤문 95억 원 노무현 전 대통령 제공' 의혹을 제기한 데 대법원은 "발언 내용이 직무와 아무 관련이 없음이 분명하거나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도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등까지 면책특권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면책특권 인정 요건과 기존 판례를 종합해 봤을 때 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질의로 주장한 내용은 면책특권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박 의원이 국회 국정감사라는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자리에서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형식상 요건을 충족한다"며 "대장동 의혹이라는 국민적 관심사를 다루고, 정영학 등 핵심 관계자 녹취록을 근거로 의혹을 제기한 건 발언 내용상으로도 면책특권이 인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김남근 참여연대 변호사도 "박 의원이 법적 다툼 가능성까지 고려해 자신의 홈페이지나 보도자료를 통해 질의내용을 유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순수하게 의정 활동을 위해 발언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해 유포됐다면 박 의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면책특권은 국회가 정부를 제대로 통제, 감시하기 위한 권리"라며 "진실이라고 충분히 입증된 얘기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굳이 특권이라고 말 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이어 "김 전 총장 측이 최소한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을 문제로 삼았는데 국회의원이 질의를 준비할 때 본인에게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건 아니다"며 "단순 허위나 비방 목적을 가지지 않은 이상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사안에 대해 자유롭게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