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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없어 책임도 없다"…軍, '성추행 여중사' 사건 무더기 불기소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1.10.08 04:20
수정 2021.10.07 23:16

구체적 지침 없다는 이유로

포괄적 지휘 책임까지 눈감아

'정식 보고' 안돼 책임없다는 설명도

지난 6월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국방부가 성추행 피해를 입은 뒤 상관의 회유·협박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중사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를 종료했다. 성추행 발생 219일, 여중사 사망 140일 만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사건 관련자 38명이 문책 대상으로 분류됐지만, 논란이 됐던 '부실 초동수사'와 관련해선 단 한 명도 사법처리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군 당국이 갖가지 명분을 쥐어짜 사실상 면죄부를 준 만큼 '솜방망이 셀프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가 7일 발표한 '공군 성폭력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 관련 최종 수사결과'에 따르면, 형사입건된 인원은 25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15명은 기소됐지만, 나머지 10명은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됐다.


국방부는 △형사 입건자 25명 △형사 미입건됐으나 비위 사실이 확인된 14명 등 총 39명 가운데 38명이 문책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문책 대상에서 빠진 1명은 2차 가해 혐의로 구속기소 됐던 피해자 직속상관으로, 지난 7월 국방부 수감시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바 있다.


국방부는 "기소된 사건에 대해선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징계 대상자에 대해서도 엄격하고 공정한 처분이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성추행 피해 신고 뒤 2차 가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외형상 대규모 문책이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정작 이번 사건의 '본질'로 평가돼온 부실 초동수사에 대한 법적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게 됐다.


실제로 초동수사를 담당한 △공군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 및 군 검찰 관계자 △지휘·감독 최종책임자인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 등은 모두 기소되지 않았다. 직무유기 등의 혐의 적용을 검토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는 게 군 당국 설명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수사팀 내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면서도 "법령상 (전익수) 법무실장이 어떠한 조치·지시를 했어야 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지휘부가 당연히 져야 할 포괄적 지휘책임을 '구체적 행동 지침', 즉 매뉴얼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한 것이다.


군 당국은 전 실장이 '공식 보고'를 받지 못한 시점에 초동수사가 이뤄졌다며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입장도 밝혔다.


국방부 당국자는 "원칙적으로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곳에서 지침을 수행해야 한다"며 "본부로 어떤 사실을 보고했을 때 (본부 차원의 지침이) 가능한 것이다. 본부에 대한 보고가 없었기 때문에 본부 차원에서 어떤 걸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20비행단 군 검찰는 지난 4월 7일 같은 비행단 군사경찰로부터 성추행 사건을 송치받았지만, 5월초가 돼서야 전산을 통해 공군 본부에 정식 보고했다.


허술한 초동수사가 이뤄질 당시, 전 실장 등 지휘부가 정식 보고를 받지 못했던 만큼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게 군 당국의 최종판단인 셈이다.


이는 사건 발생 부대인 20비행단에 책임이 있다는 뜻이지만, 군 당국은 20비행단 군사경찰 및 군 검찰 관계자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초동수사가) 미진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만한 '근거'가 충분치 않았다고 밝혔다. 전익수 실장과 마찬가지로 구체적 행동 지침(매뉴얼)이 없어 '해야 할 일을 안 했다'는 직무유기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지난 6월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비행단 소속이었던 피해자는 지난 3월2일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상부에 신고했지만, 가해자를 포함한 상관들의 지속적인 회유·협박에 시달렸다.


피해자는 수사 진행 과정에서 전출을 요구해 근무지를 옮겼지만, 출근 사흘 만인 지난 5월21일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는 새로운 근무지에서도 2차 가해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날은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한 날이었다.


유족들은 사건 규명을 요구하며 사망 5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고인의 시신을 국군수도병원에 안치한 채 장례를 미루고 있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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