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변카드 또 꺼내나 협상의지 접었나
입력 2021.08.30 10:42
수정 2021.08.30 10:42
IAEA, 연레보고서 통해
영변 플루토늄 원자로 재가동 시사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북한이 지난 7월 초부터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정황이 포착됐다.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거부한 북한이 핵시설 재가동으로 미국을 우회 압박하는 모양새다.
29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음달 발표될 국제원자력기구(IAEA) 연례보고서를 인용해 "7월 초부터 냉각수 방출을 포함해 영변 원자로 가동과 일치하는 징후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해당 원자로는 2018년 12월부터 지난 7월 초까지 가동 중단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IAEA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로 세계 각국의 핵활동에 대한 감시·시찰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시찰도 진행해왔지만, 지난 2009년 철수한 상태다.
폐연료봉 재처리 완료 기간과
관련 시설 가동 기간 일치
IAEA는 냉각수 방출 외에도 방사화학실험실 관련 징후를 언급하며 원자로 재가동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은 과거 영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에서 발생한 폐연료봉을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해 핵무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을 생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방사화학실험실에 증기를 공급하는 화력발전소가 올해 2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5개월가량 가동됐다. 5개월이라는 기간이 북한이 밝힌 바 있는 폐연료봉 재처리 완료 기간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올해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다.
IAEA는 영변 핵시설 재가동과 관련한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가능성에 대해 "심각한 문제"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량살상무기(WMD) 전문가인 개리 새모어 미국 브랜다이스대 중동연구센터소장은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위해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한 정황으로 보인다"며 "이미 상당량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이 무기고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라고 WSJ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하노이서 영변카드 꺼냈던 김정은
핵합의 가능성 낮게 보나
북한이 미국과 협상 접점을 좀처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영변 핵시설 재가동에 나선 것은 향후 협상에서 영변 카드를 '재활용'하려는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을 지낸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영변에서의 활동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무시할 수 없으며 (북핵 문제가)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조건 없는 대화를 거듭 제안하는 미국에 '행동'으로 선을 그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별보좌관을 맡았던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영변 핵단지 핵심 시설의 가동 중단은 김정은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영변을 폐쇄하겠다고 제안했던 것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의 재가동은 그가 핵합의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징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쇄 대가로 일부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영변에 더한 5개 핵의혹시설 추가 폐기를 역제안해 협상이 결렬된 바 있다.
무엇보다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거부한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북미가 단기간 내 접점을 도출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지난 6월 22일자 담화에서 미국을 겨냥해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했었다. 리선권 외무상은 다음날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역시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란핵합의(JCPOA) 복원 등의 산적한 이슈로 대북협상에 적극성을 띠긴 어려울 전망이다. WSJ은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이 바이든 행정부 외교 정책에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