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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경제 그림자①] 구독경제…익숙·편리에 볼모 된 소비자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1.08.18 07:01
수정 2021.08.17 16:57

머지포인트·카카오택시 사태 통해

구독경제 문제점 고스란히 드러나

정부, 문제 예상하고 대책 마련해야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 본사에서 포인트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뉴시스

# 직장인 A 씨는 지난달 스마트폰 게임을 정기구독했다.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면 앱스토어에서 유료 게임을 자유롭게 내려받아 즐길 수 있는 상품이다. 무료 게임도 많지만 대부분 ‘현질(현금결제)’을 유도해 A씨는 차라리 소액 정기결제를 통해 다양한 게임을 즐겨보자는 생각에 6개월 치를 정기 구독했다.


A 씨는 결제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게임이 없었다.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새로운 게임을 할 때마다 회원가입 하는 것도 귀찮았다. 결국 두 달째부터는 기존에 하던 무료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A 씨는 6개월 요금을 내고 한 달 남짓 서비스를 즐기다 끝냈다.


구독경제는 소비자가 일정 금액을 내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원하는 시점에 받는 방식이다. 무제한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플랫폼뿐만 아니라 음악, 도서, 자동차, 온라인 쇼핑몰 정기배송 등 다양한 업종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이 확산하면서 세계 시장 규모는 올해 6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구독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소비자 피해도 지속 증가한다는 점이다. 유료전환과 해지·환불은 물론 기존 업계와 마찰 등 산업적 측면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관계 당국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머지포인트’ 사태와 카카오택시 호출요금 인상 논란이 대표 사례다. 머지포인트는 소비자가 구매권을 사면 대형 마트와 편의점, 음식점 등 주요 프랜차이즈에서 20% 할인된 금액으로 결제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런 머지포인트를 판매해온 머지플러스가 사전 공지 없이 서비스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이미 머지포인트를 구매한 소비자가 100만 명이 넘고 머지포인트를 받고 물건을 판매한 자영업자(가맹점) 또한 6만 명이 넘어 적지 않은 피해가 예상된다.


카카오택시도 호출요금 인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시장 점유율 80%에 달하는 카카오택시가 이달부터 호출 서비스 이용료를 기존 1000원에서 최대 5000원까지 인상하기로 하면서 고객과 택시기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카카오택시가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횡보를 부린다고 비판했다. 카카오측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호출비를 재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났다.


‘자물쇠 효과·다크 넛지’의 함정

머지포인트와 카카오택시 논란은 최근 구독경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제다. 일부 구독경제 서비스 업체들은 고객이 해당 서비스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슬그머니 요금을 올리거나 서비스를 축소해 버린다. 이미 고객들은 해당 제품 또는 서비스에 익숙해진 상태라 다른 상품으로 전환이 쉽지 않다.


카카오택시처럼 사실상 서비스 독과점 상태라면 더욱더 그렇다. 전문가들은 이를 ‘자물쇠 효과(Lock-in Effect)’라 부른다. 한 번 들어온 고객이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면 다른 서비스로 이동하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을 뜻한다.


‘다크 넛지(Dark Nugde)’ 효과도 있다. 넛지란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는 행위를 말하는 데 경제학에서는 소비자를 강요하지 않고 부드럽게 설득해 선택을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다크라는 부정적 의미를 더해 기업이 이익을 취하기 위해 소비자가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구독경제는 편리함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때문에 재화나 서비스 이용료를 대부분 자동결제한다. 최초 계약 때 입력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정기적인 결제가 이뤄지는데 여기서 자물쇠 효과와 다크 넛지의 함정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게 서비스를 최초로 이용할 때는 무료로 하고 무료 기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유료결제하는 형태다. 유료전환 시점을 제대로 몰랐던 소비자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유료 결제하는 피해를 본다. 기업들이 서비스 해지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데는 이런 노림수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초기 비용은 저렴하지만 향후 불필요한 서비스를 추가 구독하게끔 유도하거나 중도해지 때 위약금이 발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식자재 납품을 하는 박상기(40) 씨는 지난 3월 휴대전화를 새로 구매하면서 음악과 영화, 전자도서를 3개월 동안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받았다.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서비스지만 3개월 무료라고 하니 일단 가입했다.


박 씨는 서비스 가입 후 해당 서비스를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날 때 자동으로 유료 전환한다는 문자가 왔다. 일이 바빠 신경을 쓰지 않다가 실제로 요금이 결제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해지했다. 박 씨 경우 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음에도 유료가입 기간 만큼 요금을 내야 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콘텐츠 관련 소비자 상담 609건 가운데 계약해제와 해지, 위약금 관련 상담이 218건(35.8%)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피해호소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2월 대구 수성구 지산동 교통연수원 앞에서 카카오T 블루 발대식 반대 집회에 참석한 택시노조원들이 카카오 택시 반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이태식 IT전문 변호사는 “초기 구매에 목돈이 들지 않는 구독 서비스의 장점이 도리어 소비자들의 가격저항감을 무디게 만들어 과소비나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구독 서비스는 고정지출이다. 고정지출이 늘면 가계 부담이 그만큼 커지게 되는데 소액이다 보니 처음에는 잘 안 느껴지는 것”이라며 “(구독경제는) 최소 계약 기간을 두는 약정제 형태가 많아서 한번 잘못된 선택을 하면 손해가 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 말처럼 한 번의 선택이 수년 동안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카페를 운영하는 신모(54) 씨는 아이스크림을 구독했다가 지금도 낭패를 보고 있다. 아이스크림 기계와 원료를 받는 조건으로 지난해 월 9만9000원짜리 서비스를 3년 계약했는데 아이스크림이 팔리지 않으면서 매달 손해를 보고 있다. 특히 계약 초기 공짜로 받던 아이스크림도 지난달 프로모션 기간이 끝나면서 이달부터는 돈을 지급하고 있다. 아직 계약 기간이 2년 가까이 남아 있어 신 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시장 성장 못 따라가는 정부…‘사후약방문’만

정부는 구독경제 피해가 늘어나자 지난 3월 구독경제 정의를 새로 규정하면서 유료전환과 해지, 환불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약 사항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입법예고했다.


정부에 따르면 앞으로 구독경제 업체는 상품 또는 재화 서비스가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되는 경우 전환 시점 기준으로 최소 7일 전에 서면이나 전화, 문자 등으로 관련 사항을 소비자에 통지해야 한다. 할인이벤트가 종료돼 정상 요금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지 절차도 모바일 앱이나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정기결제 해지 때 사용한 만큼만 부담하고 해지 전에 대금을 냈으면 카드 결제 취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즉시 돌려받을 수 있도록 환불 선택권도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


이런 조처에도 전문가들은 정부가 소비 변화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머지포인트 사태만 해도 2018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그동안 정부 통제 밖에서 몸집을 불려왔다. 피해자들이 “정부가 이번 사태를 사실상 방치했다”고 토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전문가인 권혁중 경제평론가는 “머지포인트는 수많은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게 최종 목표였던 것 같은데 그 전에 판매 중단 이슈가 터져버린 것”이라며 “지금까지 알려진 수익 구조로는 환불 등 뒷감당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일부 테크핀(Techfin·IT기술과 금융을 접목) 업체들은 기술 개발은 굉장히 빠른 반면 금융법 제도에 대해선 무지하거나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다”며 “머지플러스가 이번 사건을 의도하진 않았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론 소비자와 자영업자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 피해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와 저작권 보호 등도 정부가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구독경제는 대부분 적은 양을 여러 차례 나눠 받는 형태라 불필요한 포장이 늘고 일회용품 사용이 많다. 이는 결국 환경오염 악화로 이어진다.


만화와 소설 등 유·무형의 콘텐츠들은 구독 이후 불법 사이트에서 재유통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이러한 문제까지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구독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제42차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지난해 구독경제 글로벌 시장 규모는 약 5300억달러, 국내 시장 규모는 약 40조원 수준까지 성장했다”며 “2022년까지 구독경제에 참여하는 소상공인 3000개사를 육성하고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 발언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정부가 구독경제 산업 전반에 대해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머지포인트나 카카오택시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구독경제가 급성장하는 만큼 여러 가지 긍정 또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태식 변호사는 “정부가 구독경제를 통해 소상공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구독경제가 발전하는 속도만큼 다양한 부문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이 있다. 정부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대책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新경제 그림자②] 이용자 안전·기존 산업 갈등…논란의 ‘공유경제’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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