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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방송 뷰] ‘술 미화’ 피하다 정체성 애매해진 음주 예능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1.08.12 14:12
수정 2021.08.12 14:32

‘마시는 녀석들’→‘언니가 쏜다’ 음주 예능 봇물

애매한 정체성은 숙제

각종 음주 예능들이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안주에 초점을 맞추고, 진솔한 대화에 포커스를 두면서 음주 미화의 덫을 피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이 오히려 프로그램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현재 IHQ에서 방송 중인 ‘마시는 녀석들’, ‘언니가 쏜다’를 비롯해 채널S ‘신과 함께2’, KBS 엔터테인먼트 채널 웹예능 ‘조세호의 와인바’, tvN ‘우도주막’ 등 술을 소재로 한 예능들이 쏟아지고 있다. 안주 탐방부터 취중진담, 신혼부부들을 위한 주안상 등 술을 중심으로 각자 다양한 콘셉트를 선보이고 있다.


ⓒIHQ

술은 예능 소재로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진정성이 중요한 토크쇼에서는 술 한 잔 곁들이는 것만으로 진솔함이 강조된다. ‘리얼’을 추구하는 최근 예능프로그램의 흐름에도 꼭 맞는 콘셉트가 된다. 각종 먹방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술 하나로 차별화가 가능해지기도 한다.


이 장점을 활용한 술 예능은 이전부터 꾸준히 만들어졌다.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방송된 tvN ‘인생술집’이 대표적인 예다. 19세 이상 관람 불가를 내걸고 본격적인 음주 토크를 나눴었다. 신동엽과 김준현, 한혜진 등 MC들이 그날의 게스트와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토크쇼였지만,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다른 토크쇼와 차별화가 됐었다.


그러나 음주 미화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늘 따라다녔다. 음주를 전면적으로 다룬 ‘인생술집’ 외에도 술 한 잔 하며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 ‘미운 우리 새끼’, ‘노는 언니’ 등도 시청자들의 지적 대상이 됐다.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지난 2018년 ‘인생술집’에 대해 법정 제재인 주의를 줬으며 지난 1월 ‘노는 언니’도 방심위의 주의를 받았다. 지난 2017년에는 ‘미운 우리 새끼’가 김건모의 음주 장면으로 방심위 경고를 받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부터는 조심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술자리를 즐기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과도할 경우 그들만 특혜를 누리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술자리 자제를 권고하는 상황에서 미디어가 술자리를 조장한다는 오해도 피해야 했다.


이에 현재 대부분의 음주 예능들은 술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먹방과 토크를 강조하는 모양새다.


‘마시는 녀석들’은 안주에 포커스를 맞췄고, ‘언니가 쏜다’는 토크가 중심이다. ‘신과 함께2’는 출연자의 사연에 방점을, ‘조세호의 와인바’는 와인 상식을 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tvN ‘우도주막’은 신혼부부를 위한 주안상 외에도 우도에서 경험하는 힐링 과정 전체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를 통해 음주 미화 지적은 피했을지 모르나,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애매해졌다는 것이다. 리얼함, 진솔함이 돋보이는 음주 예능의 장점은 사라지고, 먹방과 토크라는 진부한 소재만 남게 된 것이다.


배우 이종혁과 그룹 슈퍼주니어 규현, 골든차일드 이장준, 코미디언 장동민이 안주 맛집을 찾아다니는 ‘마시는 녀석들’은 술 마시는 장면이 잠깐 등장할 때를 제외하면 사실상 ‘맛있는 녀석들’이 보여주는 먹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IHQ

현재 3회까지 방송된 ‘언니가 쏜다’는 아직까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솔직하고 과감한 토크를 내세운 것에 비해 깊이 있는 이야기로 공감을 끌어내진 못하고 있다. 코미디언 안영미와 배우 소이현, 손담비, 작가 겸 방송인 곽정은이 술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고는 있지만, 가벼운 에피소드들만 주고받으며 음주 토크의 매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우도주막’ 또한 사정은 비슷하다. 고즈넉한 여행지에서 일반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과정을 담은 ‘윤스테이’ 등과의 유사성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김희선, 유태오 등 예능프로그램 고정으로 보기 힘들었던 배우들까지 나섰으나 주막 콘셉트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진 못한 것이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유현재 교수는 쏟아지는 음주 예능에 대해 "미디어 업계에서 참 안고쳐지는 고질병인 포맷 따라하기가 이번에도 반복된 것"이라며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특정 아이템이 약간 괜찮다 싶으면 가져다 쓰는 방식이다. 마치 연예인이 어딘가에서 실제 업소를 운영하는 콘셉트가 흥하자 그 포맷을 따라하는 프로그램들이 여기저기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애매한 규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유 교수는 "술의 유해 수준은 흡연과 비교해도 될 정도지만, 현실적으로는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져 규제 수준이 허술하고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일상, 문화 등의 영역에서는 술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정부는 술의 유해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하고, 미디어에 노출될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환기시켜야 한다. 일관된 시각/정책과 가이드라인 등을 제공해 주기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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