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 시대…'전기 먹는 하마' 가상화폐 채굴 이대로 괜찮나
입력 2021.07.20 07:01
수정 2021.07.19 19:11
채굴기 1대당 月 전기료 20만원
각국은 지금 가상화폐 채굴 규제
비트코인은 탄소 중립 정면 위배
세계 각국이 반(反) 가상화폐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한국도 흐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가상화폐 채굴은 고성능 컴퓨터 수십, 수백대를 24시간 쉬지 않고 작업을 돌려야 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막심하고 열을 방출한다. 중국 최대 비트코인 채굴공장의 경우 연 전기요금이 무려 170억원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가 '탄소 중립' 목표를 두고 에너지 전환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만 석탄화력과 LNG 등 화석연료 발전원 비중이 아직까지 높다. 진정한 의미의 무탄소 전원이 개발·보급될 때까지는 각국에 전력 수요 감축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암호화폐 채굴은 이같은 과도기, 전력 소모가 막대하다는 점에서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핵심이다.
채굴기 1대당 전기료, 4인 가구의 네 배 육박
1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가상화폐업계 설명을 종합해보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채굴기 한 대당 전기세가 일반 가정 전기세의 4배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채굴기(고성능 컴퓨터)가 사업장에 실제로 수십, 수백대, 많게는 수만대가 들어간다.
시간당 200W짜리 그래픽카드 5개를 장착한 채굴기(이더리움 기준)를 기준으로 잡아보면 월 전기요금이 약 17만원이다. 여기에 채굴 성능을 저해하는 발열 문제 대응을 위한 냉각·냉방에 들어가는 전기료를 감안하면 20만원 내외로 오른다. 지난해 4인 가구가 한 달간 쓴 전기요금(350㎾h 기준)이 5만5080원인 점을 감안하면 약 4배다.
이는 고성능 컴퓨터를 24시간 쉬지 않고 100% 성능을 발휘해 연산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가상화폐 채굴기 특성 때문이다. 6~8개의 그래픽카드를 꽂을 수 있는 전용 메인보드와 고용량 파워서플라이(전력공급기) 등으로 구성된 전문 채굴기는 끊임없이 60~80도의 열을 방출한다.
이는 지구 온난화 등 기후 위기에 맞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세계적 흐름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만 보더라도 신재생에너지 확대, 탈원전 정책, 여기에 폭염 등이 겹치며 전력 수급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예비율이 일시적으로 9%대로 내려가기도 했다. 가뜩이나 수요 감축이 절실한 시기 '전기 먹는 하마' 가상화폐 채굴기에 대한 제재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가상화폐 채굴 규제 나서는 세계…"韓 강력한 대책 내놔야"
온라인 자산 거래 플랫폼 이용자가 전세계 2000만명에 달하는 가운데, 세계 각국에서는 이미 반(反) 가상화폐 채굴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는 지난 3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거래에 인류에게 알려진 어느 방법보다 전기를 많이 소모하고 기후 변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비트코인 한 번 거래에 약 300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했다.
세계 가상화폐 채굴의 70%가 집중된 중국은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중국 류허 부총리는 지난 5월 21일 주재 회의에서 비트코인 채굴 금지 명령을 내렸다. 사상 처음 중국 최고위 관계자가 비트코인 채굴 금지령을 공식적으로 내린 것이다. 이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미은행은 주요 은행과 알리페이를 소집해 가상화폐 거래 단속을 요구했고, 소집된 금융기관들은 가상화폐 거래 계좌를 말소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국의 가장 큰 비트코인 채굴공장에는 2만5000대의 채굴기가 돌아가고 있으며 한 해 전기요금만 1억위안(약 173억원) 이상 지불하는 것으로 전해졌다"며 "중국은 전체 전력의 60%를 화력 발전으로 생산하는데 채굴 공장 성행으로 기존 화력발전 석탄 증가 예상량보다 6~7배 이상 더 쓰게 될 상황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국민을 중심으로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 NBC방송 보도에 따르면, 사모펀드인 아틀라스 홀딩스는 2014년 문을 닫은 그리니치 석탄 화력발전소를 사들여 2017년 천연가스를 연료로 삼는 발전소로 바꿨다. 이들은 최근 1년 6개월간 이 발전소의 전기를 이용해 비트코인 채굴을 위한 컴퓨터를 최소 8000대 이상 가동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 "공기 오염은 물론 호수의 수온까지 크게 높아졌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과도한 비트코인 채굴로 이미 블랙아웃을 경험한 국가도 있다.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 순위 6위인 이란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채굴 공장 때문에 대규모 정전 피해를 입었다. 이란 정부는 지난 1월 1620개의 가상 화폐 채굴장을 전력 소비 과다의 이유로 강제 폐업시켰다.
한국도 가상화폐 채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2022년부터 250만원이 넘는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에 20%의 세율(지방세 제외)로 세금을 메긴다고 했지만 필요 경비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기요금의 경우 제외하고 산정하는 것이라 중국에 상응하는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대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