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이슈] 역사왜곡·동북공정에 지친 방송가, 역사 소설을 대하 사극으로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1.06.09 09:51 수정 2021.06.09 09:52

'고구려' 1000억원 제작비 투입 …"한국판 '왕좌의 게임' 만들겠다"

역사왜곡으로 얼룩진 퓨전사극, 대하 사극으로 승부

"올해 꿈이 있다면 대하드라마가 제발 부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스터션샤인'을 보며 멋진 연기도 부러웠지만, 저는 그 드라마를 보고 의병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시청자 여러분께서 열정과 성원을 해준다면 대하 드라마가 반드시 부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동근이 2019년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밝혔던 소감이다. 그의 바람처럼 2021년 대하 사극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KBS의 '태종 이방원'에 이어 아이오케이는 김진명 작가의 역사소설 '고구려'를 10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시즌제로 제작하고,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박스 미디어와 이상훈 작가의 역사소설 '김의 나라'를 드라마화한다.


드라마 '고구려'는 삼국시대 중에서도 고구려를 배경으로 미천왕부터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까지 다섯 왕의 스토리를 담을 예정이다. 현재 소설 '고구려'는 6권까지 발간됐으며 14일 7권 출간을 앞뒀다. 내년 10권으로 완결된다. 아이오케이는 "'고구려'에 대한 투자를 통해 한국 사극에 대한 수요가 큰 동남아 등에 수출하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나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의 나라'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 김일의 미스터리한 역사적 발자취로 시작해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우리 선조가 북방의 땅에서 발해의 유민들과 조우하고 여진족과 합심해 금나라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담을 예정이다.


'태조왕건', '허준', '여인천하', '선덕여왕', '대장금', '주몽' 등 과거 인기를 끌었던 사극을 이을만한 작품이 현재는 실종 상태다. '태조왕건'은 최고 시청률 60.2%, '선덕여왕'은 43.6%를 기록했다. '여인천하'는 50회로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인기에 힘입어 150회까지 연장됐다. 하지만 배우들의 출연료, 세트 등의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비해 PPL을 받기 어려워 제작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또 기본적으로 50회 이상으로 편성돼 배우들은 일반 미니시리즈에 출연할 때보다 더 많은 기간을 작품에 묶여있어야 해, 캐스팅도 쉽지 않았다.


이에 대하 사극의 빈자리는 시대적 배경만 빌려온 후 허구의 캐릭터나 이야기는 새롭게 창작된 퓨젼 사극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다시 사극으로 불러오는 요인으로 뽑히며 한 동안 대세로 자리잡았지만 최근 들어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팩션이란 점을 강요했지만, 역사왜곡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주인공이 허구의 캐릭터여도, 주변인들은 역사에서 살아 숨쉬었던 인물을 차용했고, 그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잘못 전달됐을 시, 시청자들은 항의하기 시작했다.


올해 종영한 tvN '철인왕후', SBS '조선구마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철인왕후'는 방영 당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인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지라시'라고 일컫는 대사로 논란이 일자 제작진이 사과했고 지금은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됐다.


SBS '조선구마사'는 첫 방송 당시 충녕대군이 서역에서 온 구마사제인 요한 신부 일행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 중 중국식 만두, 월병 등이 전파를 타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궁중의 무녀 무화의 의상이 중국풍이고, 배경 음악이 중국 전통악기로 연주되며 동북공정 의혹까지 지적 받았다. 또 태종이 역사와 달리 무고한 백성을 이유없이 학살하는 모습도 논란이 됐다. 이에 '조선구마사'는 드라마 최초, 방송 2회만에 폐지됐다.


한동안 방송가에서는 사극을 만드는 제작사들이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고증이나 왜곡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시나리오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역사 소설 '고구려'와 '김의 나라'를 원작으로 한 대하 사극의 등장을 시청자들은 반기는 모양새다. 역사적 배경만 빌려온 채 로맨스를 벌이는 내용이 아닌, 정사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들이 전세계로 수출되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과 맞물려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바라보고 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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