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메모리즈㉔] 자산어보, 현산어보, 흑산어보…정약전이 꿈꾼 세상은 왔는가
입력 2021.04.09 15:35
수정 2021.04.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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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산으로 유배되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이 컴컴하여 두려우니 가족들이 편지에서 번번이 ‘玆山’이라 하였다. ‘玆’ 역시 검다는 말이다.”
손암 정약전이 1814년(순조 14)에 펴낸 ‘玆山魚譜’의 서문에서 책의 이름을 ‘흑산어보’라 짓지 않은 이유를 적은 내용이다.
한자만 쓰고 한글 독음을 적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를 ‘자산’ ‘자산어보’로 읽어 왔고, 우리에게 익숙한 것도 사실이지만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1998년 ‘한국 한문학 연구’ 제21집에 실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의 교육 활동과 그 성과’에서 임형택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한문학자 이우성의 견해임을 전제로 “玆山은 ‘현산’으로 읽히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玆’이 ‘지금’ ‘여기’의 뜻일 때는 ‘자’로 읽지만, ‘검다’의 뜻일 때는 玄(검을 현)이 두 개 겹친 ‘현’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3년 생물교사 이태원이 쓴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5권 분량의 방대한 책이 대대적으로 미디어의 조명을 받으면서 ‘현산어보’라는 명칭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이에 대한 논박도 있다. ‘역사비평’ 2007년 겨울호(통권 81호)에서 한국과학사 전공 신동원 KAIST 교수 “다산(정약용)은 ‘현산어보’가 아니라 ‘자산어보’라고 불렀다”면서 동생 정약용의 글들 어디에서도 ‘현산’으로 읽은 바가 없다는 것을 근거로 ‘자산어보’를 고수한다. 김언종 고려대 교수는 2001년 출간한 ‘한자의 뿌리’에서 ‘현산어보’라는 새로운 독음에 동조했으나, 후일 종전 주장을 철회하고 ‘자산어보’로 입장을 굳혔다.
당시 정약전이나 정약용이 말은 분명 우리말로 했을 것이고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되고도 350년 이상 지난 시점의 일이건만, 글은 한자로 남아 있으니 ‘자산’으로 불렀는지 ‘현산’이라 이름 붙였는지 확정할 수 없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 주연의 영화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 제작 ㈜씨네월드, 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라는 명칭을 택했다. 영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시나리오를 ‘자산어보’를 번역한 정명현 박사에게도 보내고, ‘현산어보를 찾아서’의 이태원 작가에게도 보내 고증을 받았다고 하니, 감독은 ‘독음’에 대한 논쟁을 익히 알고 그 가운데 ‘자산어보’를 택했음이 자명하다. 영화의 핵심이 형 정약전에게 편지를 보낸 동생 정약용이 흑산을 무엇이라 적었고, 형은 평소 흑산도를 무엇이라 부르다 책의 이름으로는 무엇이라 지었는지가 아니므로 우리에게 익숙한 ‘자산어보’라 하는 게 대중예술의 총아인 영화에 어울린다.
사실, 자산과 현산, 무엇이 올바른 독음인가를 허망하게 하는 또 다른 견해도 있는 걸 감안하면 ‘자산어보’라는 통용된 제명을 사용한 영화 제목이 무난하다는 생각이 재차 든다. 제3의 견해란, ‘흑산’이라는 말은 검다(黑, 검을 흑)라는 말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다. ‘흑’은 ‘크다’를 뜻하는 순우리말이고, 따라서 흑산은 큰 산, ‘커다란 뫼’를 말하는 ‘검뫼’라는 순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黑山’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즉, 새카맣다, 검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흑’(黑)이라는 한자의 뜻을 빌린 훈차 표기도 아니고, 뜻이 무엇이건 ‘흑’이라는 발음 그대로를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黑’을 차용한 음차 표기도 아니고, ‘검뫼’의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黑山이라는 한자의 뜻(검은 뫼)을 빌려 쓴 사음훈차 표기라는 주장이다. 흑산이 주변 섬들에 비해 커다란 섬, 대모산을 비롯해 여러 산봉우리가 이어진 큰 산을 가리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이름을 컴컴하고 두렵게 느꼈을까, 굳이 이름을 바꿔 부르려 했을까, 어쩌면 책의 이름도 ‘흑산어보’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책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신유박해로 귀양 가서 살다 생을 마친 흑산도 연해의 수족 226종을 소개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사전으로, 3권이 1책으로 돼 있다. 제1권에는 인류(鱗類), 비늘이 있는 물고기들에 대하여, 제2권에는 무인류(無鱗類) 및 개류(介類), 비늘 없는 물고기와 딱딱한 껍데기가 있는 어류, 제3권은 잡류(雜類)라 하여 해초 등 기타 해양생물을 다루고 있다.
정약전은 서문에서 “이 책은 병을 치료하고, 쓰임을 이롭게 하며, 재물을 잘 관리하는 여러 전문가에게 진실로 바탕으로 삼을 만한 내용이 있을 것이며, 시인들이 좋은 표현을 위해 널리 의지할 때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정보를 줄 정도일 뿐이다”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학문은 백성의 삶에 실로 도움이 되어야 참 의미가 있다는 ‘실사구시’의 철학이 제대로 실천된 저서라 하겠다.
영화 ‘자산어보’는 역사적 맥락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이준익 감독의 풍부한 창작력이 보태져 책 ‘자산어보’의 창작 과정이 생생하게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 흑백화면임에도 자산 근해 어종들의 생김새와 움직임, 이를 잡는 장창대(변요한 분)의 몸 움직임과 해부하고 연구하는 정약전(설경구 분)의 손놀림에 생동감이 넘친다. 생물의 질감과 내음이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것만 같다.
여기서 멈췄다면 이준익 감독이 아닐 것이다. 흑산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별장 나리 조우진과 가거댁 이정은 등의 배우를 통해 민초의 고통스러운 삶을 웃음과 함께 버무리고, 정약전과 창대를 통해 배움이란 무엇이고 세상에서 학문이란 어때야 하는가를 얘기한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슬며시, 감독 이준익은 배우 설경구의 연기 내공을 빌어 정약전이 꿈꿨던 세상의 타당함을 설파하고, 창대의 인생사를 통해 조선 사회를 관통하는 시각을 피력한다.
동양의 성리학을 통달했기에 되레 서양의 기하학과 수리학을 수용할 수 있었던 정약전이 꿈꿨던 세상, 양반도 임금도 필요 없고 만민 모두가 평등한 ‘수평의 사회’. 이준익 감독은 정약용이 유배 중 수백 권의 저서를 낼 때, 정약전은 십수 년에 걸쳐 ‘자산어보’에 매달리고 홍어장수 문순득의 동남아 표류기를 적은 ‘표해시말’, 소나무 묘목에도 세금을 매기는 세상에서 스스로 나무를 뽑는 백성의 이야기를 통해 세금 문제를 제기한 ‘송정의사’ 정도만 쓸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명확히 밝힌다.
서양의 학문, 서학을 공부하다 서학쟁이· 천주교도 박해 사건에 주요 인물로 지목돼 유배를 간 그가 과연 ‘수평 사회’의 세계관을 담은 책을 쓸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사약을 부르는 일이었을 것이다. 영화 ‘자산어보’는 ‘건강한 수직 사회’를 희망한 정약용보다 시대를 더욱 앞서간 천재 정약전에 대한 재발견의 작품이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연기력을 갖춘 설경구가 필요했던 이유다.
동시에 현시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약전이 꿈꾸던 세상이 왔는가, 진정한 수평 사회인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또 다른 차원의 수직 사회라면, 그 건강함을 담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수평 사회는 꿈일 뿐인가, 실현 가능한 이상인가.
이준익 감독은 언제나 그렇듯, 한 인물을 통해 역사 속으로 들어가 시대를 헤엄친 후 오늘로 돌아와 송곳 같은 숙제를 남긴다. 과거와 오늘의 대화인 역사, 이준익 감독의 눈으로 역사 된 ‘자산어보’를 경험한 뒤 나의 관점으로 다시 한번 유영하는 즐거움을 추천한다.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에도 영화 ‘자산어보’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