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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캐릭터탐구⑥] ‘택견’ 신하균 VS ‘태권도’ 여진구(드라마 괴물)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1.04.08 08:11
수정 2021.04.19 09:10


배우 신하균 그리고 여진구 ⓒ이하 드라마 '괴물' 홈페이지 포토갤러리

JTBC 드라마 ‘괴물’이 종영까지 단 2회를 남겨놓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과 똑같은 제목을 달고 시작할 때, 그 자신감이 보였다. 콜론(:) 뒤에 부제 격의 문구를 붙일 만도 하건만 그대로 ‘괴물’이었다.


15년 전 영화 ‘괴물’에서 괴물은 인간이 한강에 흘려보낸 페놀 등에 의해 탄생한 유전자 변형 ‘괴수’였다. 2021년 드라마 ‘괴물’에서 괴물은 자신밖에 모르고,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이다.


강진묵 역의 배우 이규회 ⓒ

인간 괴물에도 두 종류가 있다. 강진묵(이규회 분), 한기환(최진호 분), 이창진(허성태 분), 도혜원(길해연 분) 등과 같은 인간의 탈을 쓴 괴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는 말 그대로 ‘괴물을 잡으려고 괴물이 된 사나이’ 이동식(신하균 분)이다. 그리고 한주원(여진구 분)을 비롯해 남상배(천호진 분), 오지화(김신록 분), 유재이(최성은 분), 박정제(최대훈 분), 오지훈(남윤수 분) 등은 잘난 대로, 부족한 대로 열심히 사는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괴물’은 범인 찾기 드라마가 아니다. 이야기가 중반까지 흐를 때는 이동식의 쌍둥이 동생 유연이(문주연 분)를 죽인 범인 또는 동일 수법으로 여성들을 노리는 연쇄살인마를 찾고 있는 나(시청자)를 발견한다. 박정제를 의심했다가 한기환도 수상해 보였다가 강진묵으로 확신했다가, 아니지 하면서도 검사 권혁(박지훈)도 어딘가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다 싶었다가 설마 하며 남상배도 용의 선상에 둬 본다.


이동식 역의 배우 신하균 ⓒ

가장 미치겠는 심사는 이동식에 대한 의심을 놓았다 들었다 하는 것이다. 주인공인 한주원이 이동식을 의심해서는 아니고, ‘이동식이 주인공이고 왠지 믿음 가는 인상의 배우 신하균이 연기하는데 설마 범인이겠나’라는 방심을 노려 김수진 작가가 뒤통수 칠 수 있지도 않은가라는 논리적 가능성 때문만도 아니다. 신하균의 연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인 채 낄낄거리고 웃다가 아무것도 안 한 듯 무표정하게 고개를 들고, 고개를 숙인 채 분명 눈시울이 빨개지게 분노하거나 울먹여 놓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덤덤하게 고개를 드는데.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에 빙의한 사람인 건지 애초 괴물인 건지 도통 확신이 서지 않는다.


계속 진범 찾기, ‘누가 괴물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 있으면서 범인 찾기 드라마 아니라고 단언한 것은 연쇄살인마가 드라마 중반에 덜컥 잡혀 버리기 때문이다. 이 자신감이라니! 범인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도 8부 이상을 더 ‘김빠지지 않게’ 끌어갈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오지화 역의 배우 김신록 ⓒ

그때부터는 작가가 되고 연출자가 되어 앞으로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 어떻게 전개할 요량이기에 벌써 진범을 밝혀 버렸을까, 추리를 거듭하는 나를 발견한다. 단순히 이유연에 관련해서만 범인이 다른 것은 아닐 텐데, 죽인 범인이 다르다 해도 연쇄살인마와도 연관이 있을 텐데, 연쇄살인마가 아니어도 각종 이권과 욕망에 얽혀 유연이를 죽게 하고 방조하고 은닉하고 조작했을 텐데, 이 얘기는 도대체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가 궁금증이 증폭된다.


처음엔 진범 찾기로 시작해서 중반 이후엔 유연이의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과 증거에 관한 추리에 마음을 뺏기다가 문득! 깨닫는다. 그 과정 모두가 결국은 우리에게 ‘괴물의 조건’, ‘인간의 자격’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도록 깔아놓은 징검다리들이었다는 것을. ‘누가 괴물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괴물이 아니라 사람인가’의 숙제를 심나연 연출과 김수진 작가가 우리에게 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재이 역의 배우 최성은 ⓒ

그러한 제작진의 의도를 주도면밀하게 연기, 우리의 숙제를 더욱 어려우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만든 배우들이 ‘괴물’에는 너무 많다. 정말 괴물 같은 연기력의 배우들이 우리의 마음을 헷갈리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설레게 했다. 천호진, 최진호, 허성태 등의 베테랑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젊은 배우’들이 많구나 싶어 새삼 놀랐다.


오지화 역의 김신록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채송화 역의 전미도를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을 주었고, 유재이 역의 최성은은 장겨울 역의 신현빈 같은 씩씩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박정제 역의 최대훈은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박모건 역의 장기용이 보인 패기와 남성미를, 강진묵 역의 이규회는 영화 ‘완벽한 타인’의 윤경호가 지닌 공기를 깨트리는 힘을 과시했다.


박정제 역의 배우 최대훈 ⓒ

그래도 역시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투톱 주연 신하균과 여진구다. 두 배우는 ‘모순’, 칼과 창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직업은 경찰로 똑같으나 성격과 태도는 정반대다. 얼음 같은 원칙론자에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한주원에게 타협은 없다. 붙 같은 성미에 ‘돌아이’로 불릴 만큼 변칙도 쓸 줄 아는 이동식은 좌충우돌이지만 속정이 따뜻하다. 여진구가 연기한 한주원은 신하균이 연기한 이동식을 자꾸 찌른다, 차기 경찰청장 아버지도 꿈쩍 못하게 하는 최고의 검투사다. 하지만 이에 흔들릴 이동식이 아니다, 그 누구도 뚫기 어려운 천하무적 방패다.


한주원 역의 배우 여진구 ⓒ

‘괴물’에서는 드라마 포스터처럼 두 캐릭터의 대결 양상이 자주 등장했다. 해서 시청자 반응을 살펴보면 두 배우의 연기를 비교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전반적으로 신하균이 훨씬 잘한다, 맞대결 장면에서 여진구가 밀린다는 의견과 배우 나이를 감안하면 여진구가 잘한다, 어릴 적부터 좋은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며 탄탄하게 성장해 왔다는 식으로 갈린다.


필자 개인의 의견을 밝히자면, 대선배 신하균이 잘하기도 하고 잘하는 게 당연하다. 둘 다 좋은 에너지와 재능을 가졌다는 전제 아래 경륜은 무시할 수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배우 신하균은 여진구 나이에도 여진구처럼 연기하지 않았고, 배우 여진구는 신하균 나이가 돼도 신하균처럼 연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두 번의 만남을 남겨놓은 '괴물' ⓒ

무슨 얘기인고 하니, 두 배우는 맡은 인물의 캐릭터만큼이나 연기 방식이 다르다. 여진구가 품새를 갖추고 절도 있는 ‘태권도’를 한다면, 신하균은 춤을 추듯 유연하게 공수를 전환하는 ‘택견’을 한다. 어느 게 낫다, 어느 쪽이 잘한다 말하기 어렵다. 다만 시청자 취향에 따라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연기 방식이 있는 건 사실이고, 두 배우의 무술 숙련도가 아직은 다른 게 사실이다.


다만 두 배우가 이렇게 다르고,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대련에 나서도 될 만큼 단련돼 있기에 함께 주연으로 캐스팅될 수 있었고, 이동식과 한주원이라는 불과 얼음 같은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시청자인 우리는 행복한 7주를 보냈다. 이번 주면, 사흘 뒤이면 ‘괴물’을 방생해야 할 때다. 너무 붙잡아 두면 ‘가축’이 될 판이니 괴물은 괴물로 놓아주어야 할 것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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