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독점 칼 가는 바이든에 주파수 맞춘 SK이노, “배터리도 쇼티지”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1.04.07 17:09 수정 2021.04.07 17:16

SK이노, 美 전기차 산업 육성·독점금지법 토대로 거부권 요청 '총력'

거부권 없을 시 항소로 시간 벌 듯…일각에선 K배터리 위축 우려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분위기로는 양측 모두 '갈 데까지 가보자'며 팽팽한 대립을 지속하는 상황이다.


패소한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판결을 뒤집기 위해 미국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막판 설득에 나서고 있다. SK 배터리가 미국에서 발을 빼면 대규모 일자리 창출이 무산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결과적으로 미국 전기차 산업 경쟁력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현재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 등은 캐서린 타이 대표 등 USTR 관계자들이 지난주 SK이노베이션측 변호사를 만나 현재 진행 중인 배터리 분쟁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USTR은 ITC 상급기관으로,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의견을 모두 들어본 뒤 60일 이내에 승인 또는 거부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시간으로는 오는 12일 오후 1시까지로, 이번 결과에 따라 양측의 명운도 엇갈릴 전망이다.


거부권 행사는 SK이노베이션이 가장 바라는 카드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의 수입금지 처분이 철회돼 미국 사업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 공장도 가동을 재개할 수 있다'


ITC 소송과 별개로 진행중인 델라웨어 연방법원의 민사 재판도 관심사다. 이곳에서 SK이노베이션의 배상 규모가 확정된다.


만일 배상 규모를 놓고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이노베이션 둘 중 하나가 불복할 경우 항소할 수 있다.


ITC 소송 관련 거부권이 행사된 상태에서 민사재판 항소가 이뤄지면 영업비밀 침해 관련 다툼은 3년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을 그만큼 벌게 됐으니 SK이노베이션으로선 미국 사업을 계속 영위하며 배상 규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다툼을 할 수 있다.


반대로 거부권이 나오지 않으면 ITC 결정은 그대로 효력을 갖는다. SK이노베이션이 연방항소법원에 항소를 하더라도 수입 금지 처분은 유지된다.


다만 ITC가 포드에 4년, 폭스바겐에 2년 수입금지 유예기간을 줬기 때문에 당장 큰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유예 기간을 계산하면 SK이노베이션은 포드에 2025년까지, 폭스바겐에 2023년까지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배터리 물량 공급 및 수주가 제한돼 사실상 미국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자사에 불리한 결정이 나올 경우 즉각 항소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항소심 중에는 델라웨어에 제기된 민사 소송도 같이 연기돼 시간을 벌 수 있다. 그 사이 미국 사업 지속이나 철수에 대한 득실을 따지거나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산업 육성이냐 vs 지적재산권 보호냐


거부권 여부를 두고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 배터리 공급물량 부족과 독점금지법을 근거로 거부권 가능성을 주장한다. SK 배터리 생산이 무산될 경우 사실상 LG에너지솔루션의 독점 생산 체제가 불가피해진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미국에 거점을 두고 있는 배터리업체는 파나소닉,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AESC 등 4곳 뿐이다. AESC는 중국 인비전이 인수하면서 미국 내 투자 여력을 상실했다. 파나소닉은 주로 테슬라용 원통형 전지만 생산하고 있으며 파우치형은 LG와 SK에서만 생산한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철수할 경우 파우치형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사실상 독점하게 된다. 여기서 코나 전기차 사례처럼 대규모 공급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밀고 있는 전기차 산업 육성 계획에 제동이 걸린다.


더욱이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바이든 부통령 시절 전기차 붐을 주도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차용 배터리 업체였던 A123는 2012년 파산을 신청하고 이듬해 중국 완샹그룹에 넘어갔다. A123은 오바마 정부에서 총 2억4910만 달러(2750억원)에 달하는 공장 건설비를 지원받기도 했지만 전기차 배터리 품질결함 문제가 발생하면서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SK이노베이션은 이런 뼈 아픈 경험을 한 바이든 대통령이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사실상 독점 생산 체제를 허용하는 결론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략을 펴고 있다.


친환경차 시장 확대를 위해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을 함께 밀어줘야 하는 데 만일 SK 배터리가 무너지면 LG 배터리 독식 체제가 굳혀진다는 주장이다.


이는 미국에서 경계하는 독점금지법과 상충되는 것으로, LG에너지솔루션에서 제안하는 SK 조지아주 공장 인수 및 일자리 창출 제안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3조 vs 1조' 평행선 다툼 속 배터리 경쟁력 후퇴 우려


양측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소송 리스크를 덜어낼만한 '원만한 합의'다. 업계 추정 등을 종합하면 LG측이 원하는 배상액은 3조원 이상인 반면 SK는 이에 훨씬 못미치는 1조원 안팎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금에 대한 이견이 워낙 크기 때문에 현재로선 성사 가능성이 크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합의금 3조원은 미국 사업 철수를 고려할 만큼 터무니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SK가 LG의 기술을 탈취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합의금액을 내놓아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양사의 끊임없는 분쟁과 반목은 결국 배터리 주도권을 중국·일본 등 해외 기업에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폭스바겐그룹이 최근 배터리 내재화 선언하면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주력 제품인 파우치형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최대 경쟁자인 테슬라는 원통형 배터리를 내세우며 시장 점유율 확대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 도요타의 경우 전고체 배터리로 중흥을 꾀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이 배터리 기술 자립을 위해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배터리 '기술 표준' 싸움은 한층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빠르게 변화하는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소송전에만 몰두할 경우 도태는 시간 문제라는 우려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점진적으로 배터리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면밀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소송전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진 배터리 업체에게 투자하자고 손 내밀 기업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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