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엄의 i-노트] 공염불 그친 정부의 車반도체 수급 대책

이건엄 기자 (lku@dailian.co.kr)
입력 2021.03.15 07:00
수정 2021.03.15 05:12

산업 특성 이해 못한 탁상공론…中 반도체 굴기 반면교사 삼아야

진입장벽 높고 수익성 낮아…‘후발주자’ 국내 기업 참여명분 부족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 6차 혁신성장 BIG3 추진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차량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미래차 핵심 반도체 기술개발에 2022년까지 2000억원 이상을 집중투입하고 기업이 차량용 반도체 생산 관련 파운드리 증설 추진시 산업구조고도화 프로그램 등 획기적 우대지원도 적극 검토하겠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일 밝힌 차량용 반도체 단기 수급 대응 및 중장기 육성 방안이다. 현재의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 해결은 물론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를 구성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 사례처럼 정부의 이번 대책은 반도체 산업의 성격과 공급난의 근본적 원인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공염불(空念佛)’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은 부가가치가 낮은 차량용 반도체의 특성과 관련이 깊다.


비대면 트렌드 확산 영향으로 단가가 높은 IT향 제품에 수요가 몰리다 보니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업체 입장에선 굳이 손해를 보며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에 우선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반도체 설계(팹리스) 능력을 갖춘다 하더라도 생산량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미세공정 일수록 단가가 높아지는 반도체 특성을 감안한다면 차량용 반도체는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성능을 요구하는 IT용 반도체들이 10나노미터(nm, 1nm는 10억분의 1m) 이하의 공정에서 생산되는 것과 달리 성능이 비교적 낮은 차량용 반도체는 20~40nm대 공정에서도 충분히 생산이 가능하다.


수익성이 낮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다. 반도체 사업 특성상 천문학적인 투자와 장기간의 연구개발(R&D)이 필수적인데 기대 가치가 낮은 차량용 반도체에 선뜻 투자하기에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도체 공급난이 일시적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실제 중국의 반도체 굴기 역시 산업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치킨게임이 한창이던 메모리 시장에 집중 투자를 감행했다가 삼성전자 등 막강한 수주 인프라를 갖춘 글로벌 선두 업체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현지 기업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졌다.


또 차량용 반도체는 ‘소량 다품종’ 생산이 주를 이루고 있는 만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어렵다. 수주가 뒷받침 된다면 궤도에 오를때까지 손해를 감수하며 버틸 수 있겠지만 후발주자인 국내 기업이 이를 갖추기란 쉽지 않다.


차량용 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10분의 1 규모에 지나지 않는데다 네델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일본 르네사스가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레드오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가 지원에 나선다고 해도 기업이 불확실성을 떠안으며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뛰어들 이유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특히 정부가 밝힌 2047억원의 지원금 역시 타이완 TSMC(30조원)와 삼성전자(12조원) 등 글로벌 반도체업체들이 연간 투자액(올해 기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차량용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나설 마음이라면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포퓰리즘에 매몰된 주먹구구식 정책을 펼친다면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같은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다. 사업자와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건엄 기자 (lk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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