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밀어붙인 20조원 추경…'지지지지(知止止止)' 홍남기 패배 쓴잔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입력 2021.03.03 13:31
수정 2021.03.03 18:25

홍 부총리, 정치권과 실리 싸움에서 완패

보편지급 양보한 與, '편성 규모' 허 찔러

결론적으로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 부채질

'곳간지기' 기획재정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입맛대로 슈퍼추경이 편성되면서 고질적인 관료패싱이 또다시 반복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12조원과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20조원 사이 절충안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뚜껑을 열자 사실상 이 대표 요구대로 19조5000억원이 책정됐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피해계층을 두텁게 지원하자며 선별지급을 강조해왔다. 이번 4차 재난지원금이 선별지원 형태인 건 맞지만 편성 규모는 지난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됐던 1차 지원금(14조3000억원)보다도 높았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그토록 강조했던 재정건전성을 홍 부총리가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이는 홍 부총리가 여당과 '실리 싸움'에서 완전히 패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홍 부총리는 올초 정치권이 재보선을 앞두고 4차 지원금 편성 이야기를 꺼내자 "전 국민 지급은 불가하다"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당정 대립이 첨예해지자 문재인 대통령까지 중재하고 나섰다.


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달아오르 당정 간 충돌이 해소된 건 '타협점'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대통령 중재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서로의 추경안에서 절충을 보기로 했다.


정부가 '보편지원 대신 선별지원'을 관철한 대신 정치권은 '전국민 지급은 추후 방역 상황을 고려해 재추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소신을 잇따라 밝혀온 홍남기 부총리의 버티기 전략이 통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같이 당정 간 갈등이 해소돼가는 분위기 속, 정치권은 예상치 못하게 '편성 규모'에 있어 정부 허를 찔렀다. 정부도 이미 선별지급을 하자는 카드를 썼고 정치권이 그 말을 들어줬으니 강하게 저항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선별 지급임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여당 정치인들이 증액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재난지원금 규모가 당초 기재부 안(12조원) 대비 8조원 가까이 늘었다. 1차 14조3000억원(전국민), 2차 7조8000억원, 3차 9조3000억원 등 지난 세 차례 재난지원금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게 책정된 것이다.


9조9000억원 국채 발행은 고스란히 국가채무 증가로 이어졌다. 본예산 때 956조원이었던 국가채무는 이번 추경으로 965조9000억원까지 늘게 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본예산 47.3%에서 0.9%포인트 늘어 48.2%로 상승한다.


결과적으로 홍 부총리가 그토록 강조하던 재정건전성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그가 선별 지급을 고수했던 이유도 사실 국가 재정건전성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조금씩 뒤로 물러 절충을 했다지만 사실상 불균형적인 맞교환이었던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관료 흔들기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달 14일 비공개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홍 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 지금 소상공인들이 저렇게 힘든데 재정 걱정을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재정건전성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경제관료를 "나쁜사람"으로 몰아간 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지적이다.


1월엔 정세균 총리가 자영업 손실보상제 법제화에 난색을 표한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을 향해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지난해 코로나 이후 정치권의 관료패싱이 심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사실상 문 대통령이 언급한 ‘전 국민 위로금’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철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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