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갈등 우려하는 미국에 '도움 받겠다'는 한국
입력 2021.02.19 04:30
수정 2021.02.18 23:02
'평행선' 달리는 韓日관계
정의용, 日 외무상과 통화도 못해
"필요하다면 美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18일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한일 문제에 있어 "필요하다면 미국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일관계가 풀리지 않으면 한미관계도 정상화될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도발보다 한일 갈등을 더 우려한다는 입장까지 밝힌 상황이지만,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띠기보단 미국 '중재'를 기대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 장관은 취임 열흘이 다 되도록 일본 외교수장인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전화통화를 갖지 못했다. 강경화·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의 취임 후 첫 통화상대가 일본 외무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냉랭한 한일관계가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평가다.
정 장관은 취임 사흘 뒤인 지난 12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통화를 시작으로 △러시아 △아랍에미리트(UAE) △중국 △캐나다 외교장관과 잇따라 소통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일본 외무상과의 통화가 이뤄지지 않은 게 우연이 아닌 것 같다"며 "우리가 요청했는데도 일본이 답을 안 했을 것이다. 그냥 넘어갈 게 아니라 미묘함을 읽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가급적 빠른 시기에 모테기 외무상과 통화할 의사가 있다"며 "곧 통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韓日관계 개선하라"는 초당적 요구에도
'투트랙 기조' 재확인…"사법부 판단 존중"
이날 전체회의에선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한일관계 개선을 요구했지만, 정 장관은 과거사 문제와 협력 사안을 분리 대응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일 '투트랙 기조'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정 장관은 "한일 간 (북한) 비핵화·한반도 평화 외에 협력할 분야가 많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우리(문재인 정부) 입장은 단호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과거에 이미 밝힌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을 일절 안 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일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본이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정 장관은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죽창가를 언급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일각에서 제기된 '한국 정부의 대위변제' 가능성에 대해선 "우선 피해자들이 수용해야 한다"며 "행정부로선 법원 판단도 존중해야 한다. 여러 가지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 일본 측과 계속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대위변제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은 인정하되 금전적 배상은 한국 정부가 책임지는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 장관이 '사법부 판단 존중'이라는 기존 문 정부 입장을 재확인한 만큼, 관련 방안이 단기간 내 추진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일본 역시 한일 청구권 협정·위안부 합의를 통해 강제징용·위안부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주장하고 있어 조만간 양국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앞서 모테기 외무상은 정 장관 취임 당일 기자회견에서 "최근 수년간 한국에 의한 국제약속 파기, 양국 간 합의가 이행되지 않은 것 등으로 양국 관계가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美, 韓日갈등 해결할 수 없어"
적극적 중재보단 상황관리 접근 가능성
결국 정 장관이 한일 문제와 관련해 '미국 도움'을 언급한 것은 한일 양국이 양자적으론 접점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미국 전문가들은 얽히고설킨 한일관계에 미국이 적극 개입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는 미국이 적극적 중재에 나서기보단 상황관리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일 관계에서 미국이 집중해야 할 건 '상황관리'"라며 "미국이 한일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미국의소리(VOA)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브루스 클링너 해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역시 "미국이 한일 갈등 해결에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도 "이는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은 아닐 것이다. 미국은 한일 사이의 '재판관' 이미지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