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금융노트] 정치적 계산에 따라 춤추는 금융정책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입력 2020.11.23 06:00
수정 2020.11.23 05:57

서민들 요구는 "대출문턱 낮춰달라"인데…최고금리 연 20%로 낮춰

부작용 최소화 대책도 없이 '대통령 공약' 맞추려 서둘러 추진 발표

2019년 4월 12일. 금융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전북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보류 결정했다. 전북혁신도시를 금융중심지로 지정하기에는 지역의 기반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대통령 공약을 폐기한 과감한 결정이었다. 금융권에선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금융중심지의 현실과 미래만 따져 정책을 거둬들인 금융위의 용단에 소리 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최근 금융권에선 그날의 '용감한 결정'이 회자되고 있다. 일련의 두 가지 사건이 겹쳐지면서다.


첫 번째는 정부·여당이 법정 최고금리를 연 4%포인트 내리기로 결정한 일이다. 금융위는 당정 협의를 통해 현행 연 24%인 법정 최고금리를 내년 하반기부터 연 20%로 낮추기로 했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 사건은 금융권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안인 '가덕도 신공항' 논란이다. 최근 정부여당이 동남권신공항으로 추진하던 김해신공항안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가덕도신공항을 밀어붙이고 있다. '백년대계'인 신공항 사업에 선거를 앞둔 정치논리가 끼어들며 논란이 되고 있다.


금융권에선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금융정책 방향이 갑자기 전환되거나 새롭게 추진될지 우려하고 있다. "보류된 제3금융중심지가 부산이었다면, 이 역시 뒤집어졌을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도 금융권의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치거나 부작용을 최소화할 현실적인 대책 없이 정치적 시간표에 맞춰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당초 금융위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부정적 입장이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연 20%로 인하)인 만큼 계속 반대할 순 없었다. 부동산정책과 맞물려 금리‧대출 문제에 신중론을 고수하던 금융당국의 입장을 고려하면 다소 의아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공약과 수치까지 정확하게 맞춘 결정에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제3금융중심지 부산이었다면, 이 역시 뒤집어졌을 것"


'최고금리 인하'라는 타이틀만 보면 서민들이 환영할 일이다. 금융당국은 자체 시뮬레이션을 통해 올해 3월말 기준 연 20% 초과금리 대출을 이용한 239만2000명 가운데 87%인 207만6000명의 이자 부담이 매년 4830억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이는 산술적 계산인데다 연 20%로 내린 이자율을 소급적용하지 않는다는 금융위의 설명과도 배치되는 '장밋빛' 시뮬레이션 결과다.


정작 문제는 급격한 최고금리 인하로 금융기관이 대출창구를 좁히면서 저신용자들이 대출을 받지 못하거나 불법·사금융시장으로 내몰리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대부업·저축은행을 중심으로 저신용자 취급 축소에 나서고 있다. 아예 대출창구를 닫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분기 기준 대부금융협회 등록 회원사 26곳 중 11곳은 사실상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대부업을 찾아야 할 정도로 급전이 급박한 서민과 저신용자들의 요구는 '대출문턱을 낮춰달라'인데, 정책방향은 오히려 대출창구를 찾기 더 어렵게 만든 셈이다. 금융위도 연 20%대 금리로 돈을 빌린 대출자 가운데 31만6000명이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향후 3~4년에 걸쳐 민간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가운데 3만9000명은 '합법적 대출 시장'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내년 4월 보궐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금융권을 향해 선심성 정책을 내놓으라는 압박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자', '대출', '세율' 등 여론에 예민한 정책이슈가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려의 크기와 달리 금융권의 바람은 의외로 소박하다. "지난해 4월처럼 정치가 금융에 무관심하길."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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