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픽] 현실인 듯 꿈인 듯 ‘몽환적 컨템포러리 아트’로 만나는 자연, 임진선 작가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0.11.21 03:33 수정 2020.11.23 10:18

임진선 작가의 수상 이력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지난 2016년 ‘나혜석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임 작가는 1965년생, 미술계에서 작가가 50대라는 사실은 본인의 색깔이 가장 두드러지는 시기로 해석한다. 유명 작가의 마스터피스가 50대에 그려진 작품이 주를 이루는 이유다. 작가 역시 이 시기에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나혜석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가 주최하고 나혜석미술대전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나혜석 미술대전은 한국미술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여성 미술의 창의적 장을 형성하고자 나혜석의 다재다능한 삶과 치열했던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 1997년 10월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나혜석 화백은 경기도 수원을 대표하는 화가로 1896년에 태어나 1948년에 작고한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로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화가다. 나혜석 미술상은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가 주최하며, 나혜석의 여성주의 선각자적 위상을 기리며 여성주의에 기반,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내외 우수 작가를 대상으로 개최된다.


임진선 작가가 나무와 달빛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수채화로 표현한 작품으로 참여한 제20회 나혜석 미술대전에는 총 302점의 작품이 제출됐다. 1차 심사에서 158개 작품이 선정됐고, 2차 심사를 통해 특선과 입선 수상자 154명 중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임 작가의 수상작인 ‘자연예찬2’는 수채화 작품이지만 유화 같은 색감을 연출, 달빛 아래 자유로이 흔들리는 나무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재료와 표현력의 한계성을 넘어선 작가 개인의 독특한 실험성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으며 실험성 등 심사위원 전원 합의로 대상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가장 많이 출품된 장르는 서양화 분야였으나 거뜬히 대상을 받았다.


임진선 작가는 “나무가 바람과 달빛에 자유롭게 흔들리는 것을 통해 선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려 했다”고 작품 의도를 밝혔다. 실제로도 전통과 현대적 언어가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통해 구상성과 추상성이 혼재하면서도 완성도 있게 잘 표현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가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나 생각, 발상 등을 작품으로 전이시켜 가는 과정에는 각자의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한 작가로서 독창성을 이루는 데 중요한 부분이 된다. 무엇을 보느냐, 어디에서 어떤 의미를 추출하느냐, 라는 형식의 차별성에 평가의 주안점이 놓여 있는 이상 ‘차별성’, 즉 자신만의 방법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임진선 작가가 다루는 자연물은 이미 미술작품의 소재로 많이 시도됐으며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준 소재이기도 하다. 다만 임 작가의 자연물에 대한 탐닉이 색다르게 여겨지는 것은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느낌의 수풀, 나무, 꽃 등 손대지 않은 자연의 만개한 당당함 그리고 푸르스름한 색상들로 가득한 화면에 놓인 소재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다가오는 운동감에 기인하고 있다. 이런 것들의 어우러짐이 작가의 작품에서 얻게 되는 인상이자 보는 이로 하여금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받는 요소다. 그것은 단순히 대상의 재현이 아닌 한 공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자유로운 움직임과 청량감, 이미지의 애틋함과 친밀함 등 복합적 요소들로 나타난다.


“주로 자연물에서 영감 받아 작업하며, 붓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캔버스 안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바람에 나부끼듯 부드러운 붓질과 자유로운 선들의 움직임, 정서적 유희로 자연 그 자체를 만끽합니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새로운 형상들이 나타나고, 외형이 아닌 내면의 언어로 무아의 작업세계에 빠져듭니다.”


대표 작품인 ‘자연예찬’ 시리즈만 봐도 재료와 표현력의 한계성을 넘어선 작가 개인의 독특한 실험성이 돋보인다. 작가 고유의 기법으로 수채화 위에 아크릴 혼합재료를 더해 마티에르(재료 또는 재질의 의미에서 전화하여 미술용어로는 기법상 화면의 심미성과도 관련 있는 회화용어) 효과를 주어 풍부한 시각적 효과로 회화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임진선 작가는 마티에르를 위해 캔버스 위에 기초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기초 작업 후 친환경 소재로 베이스를 깔고 마르는 과정들이 반복되고 나면 다양한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과 다른 재료들을 섞는 과정에서 비율이 정교해야 하며, 베이스 작업 이후 밑그림을 그리고 본인만의 고유 기법으로 마티에르가 두껍게 표현되게 함으로써 현대적 컨템포러리 아트를 추구한다. 작업 재료는 ‘mixed media’로 소개되는데, 나비와 꽃들을 형상화하여 마지막 유화로 그 형상을 강조함으로써 무게감을 더한다.


마티에르를 통해 다져진 견고한 조형성 위에 마치 안개가 스며들 듯 채워지는 ‘번짐 기법’으로 색채 효과를 더해 미묘하고 부드러운 공간감을 조성시키는 임진선 작가는 자연 이미지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감성적이고 원초적인 공간감을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방식을 통해 작가의 그림은 익숙함과 생경함 사이에서 의미를 만들고 지워간다. 배경의 나무보다 더 큰 풀꽃이거나 배경마저 현실적 실재성이 고려되지 않고 제공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작가의 그림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놓여 있고 가상과 현실, 허구와 실재 사이에서 우리 의식의 매듭을 풀었다 맺었다 한다.


캔버스 위에서 만나게 되는 알 것처럼 익숙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자연물들은 우리 인식의 거짓과 참 사이의 구별을 의미 없이 만들어 버린다. 새삼 풀꽃인가 나무인가 하고 의문을 던지면서도 작가의 그림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림과 실제, 거짓과 참, 허구와 실재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작업, 구상성과 추상성이 혼재하며 회화성이 돋보이는 작업, 그것이 임진선 작가의 작업이다.


임진선 작가/호남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 국제미술협회 부회장이며,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 한국자연동인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2016 개인전(일본, 도쿄도 미술관), 2014 개인전(OVOCO Gallery), 2013 서울국제미술협회 한일교류전, 2012 개인전(대한민국예술인센터), 2011 파리국제아트쇼(프랑스, Paris “Espace commines) 등 그룹전 및 해외아트페어 100회 이상 출품한 화려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수상 이력은 2017AURA아트회 선정작가상, 2016 제20회 나혜석 미술대전 대상·밀라노 NOVOTEL아트페어 선정작가상, 2011~2013 매년 도쿄 삭일회 국제공모전 초대작가상·우수상·최우수상 외 다수 수상했다.


글/김지웅 갤러리K 아트딜러 jwkims77@naver.com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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