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원의 정치공학] 광화문광장에 실장님 카드단말기 놓아드려야겠어요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0.11.09 07:00
수정 2020.11.09 05:13

광화문집회 가리켜 "주동자는 살인자"라 일갈

"의원이 어떻게 불법집회를 옹호하느냐"고도

산자위원장 시절 '단말기 의혹'은 어찌된 영문

집회 대신 줄서서 시집 대금 긁으면 맘에 들까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4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비서실·국가안보실·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8·15 광화문집회 주동자들을 가리켜 "살인자"라고 외쳤다.


노 실장은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이른바 '재인산성'을 문제삼자 "국회의원이 어떻게 불법집회를 옹호하느냐"라며 "이 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곧이어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이 "코로나 초기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막지 않은 사람들도 살인자라고 불러야 하느냐"라고 추궁하자, 노 실장은 "논리가 견강부회(牽强附會) 같다"며 "광화문집회는 불법이지 않느냐"라고 맞받았다.


노영민 실장이 한학(漢學)에 밝은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지난 2017년 12월 베이징에 주중대사로 부임할 때, 신임장 제정식이 열릴 인민대회당의 방명록에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써서 뭇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만절필동은 직역하자면 '(황하가) 만 번을 꺾여도 결국 동쪽을 향해 흘러간다'는 뜻이지만, 실제 조선시대 때의 용례는 명나라에 사대모화를 다짐하며 새겼던 말이다.


우암 송시열이 '만절필동'을 충북 괴산 화양계곡의 바위에 새기고, 임진왜란 때 파병을 한 만력제와 명나라의 마지막 천자 숭정제를 제사 지내는 사당을 건립하라고 유명을 남기니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당이 '만절필동'을 축약한 만동묘(萬東廟)다.


공창미래란 글자 그대로는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간다'는 뜻이지만, 공(共)이 국공합작·국공내전 등의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공산당의 약칭으로 쓰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공산당이 미래를 만들어나간다'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만절필동 공창미래'가 논란이 되자, 노 실장은 SBS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만절필동이란 공자가 굳은 의지를 배워야 한다며 사용한 말인데, 나중에 조선시대에 사대하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라며 "조선시대 때 그렇게 사용됐다는 점도 알고는 있었다"고 말했다. 알면서도 굳이 그런 용례를 지닌 사자성어를 중의법까지 동원해 사용하는 정성이 가상하다.


이처럼 노 실장이 중국에 취한 지극한 자세를 고려하면, 코로나19 확산 위기의 근원지가 중국이라는 점을 새삼 지적한 곽 의원의 질의에 깜짝 놀라 "견강부회"라고 맞받은 것이 어떤 의중인지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면서 광화문집회는 '불법집회'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는데, 노영민 실장이 지난 2015년 3선 의원으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하던 시절에 불거졌던 또다른 논란을 회고해보면 과연 '불법'이라는 게 광화문집회에 경기를 일으키는 유일한 이유일지 의문이 든다.


당시 산자위의 피감기관인 한 공기업은 노 실장의 의원회관 사무실에 설치된 카드단말기를 통해 노 실장의 시집 구매 대금 수백만 원을 결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외에도 여러 공기업에서 노 실장 시집 '강매 의혹'이 제기돼, 결국 노 실장은 산자위원장을 사퇴해야만 했다.


사업장이 아닌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단말기를 설치해놓고 시집 대금을 결제했다면 여신금융전문업법상 가맹점 명의 대여와 가공계산서 발행에 따른 조세범처벌법·부가가치세법 위반 혐의가 문제될 수 있다. 노 실장이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에서 입버릇처럼 "불법" "불법"을 되뇌었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불법의 소지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노 실장이 이러한 행적을 고려하면 "국회의원이 어떻게 불법집회를 옹호하느냐"라는 일갈이 공허하다. 노 실장 본인이 국회의원 시절 불법과 합법에 자못 엄격했다고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집회, 유원지의 행락객들, '핼로윈 불금'을 맞이해 포차에 넘쳐나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광화문집회만 '눈에 가시'처럼 여겨져 "살인자"라고 부르짖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광화문집회의 성향,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외치는 '반정부 구호'가 실장 보기에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광화문광장에 카드단말기를 놓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광화문광장에 사람들이 운집해 줄을 이뤄 시집 대금을 긁는다면, 설령 '사회적 거리두기'가 엄격히 지켜지지 않더라도 실장이 과연 이를 문제삼을지, 그 광경을 보며 "주동자는 살인자"라고 일갈할지 궁금하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