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법 그 이후, 스포츠 인권 어디로 가고 있나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0.10.16 15:12 수정 2020.10.16 15:14

스포츠인 인권 보호 위한 스포츠 윤리센터 출범

사고 후 수습보다 사고 예방이 궁극적인 지향점

지난 6월, 트라이애슬론 유망주인 故(고) 최숙현 선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감독과 선배, 팀 관계자로부터의 반복된 폭력, 금품갈취 등 전형적인 체육계 악습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여론은 정치권을 부추겼고 일명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돼 지난 8월 4일 국회를 통과했다.


기존 마련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강화한 ‘최숙현법’은 폭력과 비리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시책이 담겨있으며 무엇보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엄벌, 더불어 성적중심주의 문화 개선을 위한 내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 체육계는 특유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폭력의 만연, 그리고 성적 지상주의로 인해 끊임없이 피해자를 발생시키고 있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관계 부처의 조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피의자에 대한 징계, 추후 재발을 막기 위한 관련 기구 설립 등이 이뤄졌으나 악습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결국 체육인에 대한 인권을 보호하고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관심은 지난해 1월 체육계 성폭력 사건(일명 스포츠 미투)을 계기로 다시 논의됐고 ‘스포츠 윤리센터’ 설립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스포츠 윤리센터와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최숙현법)은 궤를 함께 하고 있으며 체육계 비리와 폭력을 근절할 마지막 수단으로 여겨진다.


지난 8월 5일 출범한 스포츠윤리센터는 체육계 비리 및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가해자 처벌 현실화, 피해자의 회복을 돕기 위한 심리, 정서, 법률 등 종합적인 지원에 나선다.


또한 스포츠 윤리센터는 기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운영하던 스포츠비리신고센터, 대한체육회의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체육인지원센터의 신고 기능을 통합해 독립적인 지위에서 스포츠 인권침해와 비리를 조사하게 된다.


그러나 출항까지 가는 길이 어려웠다. 기획재정부는 스포츠윤리센터에 대한 예산으로 당초 문체부가 설정했던 29억 500만원에서 약 6억원이 줄어든 22억 9100만원을 배정했다. 다행히 기금변경을 통해 31억 9200만원을 확보했으나 기존 40명으로 구성되기로 했던 인력은 26명으로 축소됐다. 윤리센터 측은 기금변경이 승인되면서 상담사와 조사관 등 추가 전문 인력 5명을 더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지난 8월 스포츠윤리센터 개시식 자리에서 “조직 보강과 재원 확충에 대해서는 재정 당국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내년 예산을 두 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충분한 예산이 지원되지 않는다면, 독립성은 물론 전문성을 담보로 해야 할 스포츠 윤리센터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최근 YTN 보도에 따르면, 스포츠 윤리센터는 출범 당시 스포츠계 비리를 조사해야할 실무 최고 직급자 채용 과정에서 인사혁신처의 공정채용 지침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국회 문체위 소속의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체육계 공정성 확보와 체육인 인권보호를 위해 독립적으로 설립된 스포츠 윤리센터에서 직원 채용과정의 공정성 훼손 가능성이 농후하다. 불공정한 부분이 있었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추진 중인 특별사법경찰의 권한도 마땅히 부여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독립성과 전문성 등 설립 취지에 맞는 역할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포츠 윤리센터가 갖고 있는 권한은 수사가 아닌 조사에 그친다. 윤리센터를 통해 들어온 신고에 대해 조사하고, 언론 등 외부를 통해 접수된 사안에 대해서도 심의위원회를 열 수 있다. 자체 조사권과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한 징계 요구권도 있으나 거기까지다.


스포츠 윤리센터의 주된 업무는 엄연히 조사와 결정, 고발, 징계요구, 법률지원, 심리상담, 피해자 보호조치 요구 등 모두 사법권과 직결되는 사안들이다. 다만 실제 징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벌칙 조항이 없어 처벌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기존 운영되던 문체부의 스포츠비리신고센터, 대한체육회의 클린스포츠센터 등도 출범 당시에는 스포츠계 비리와 폭력을 척결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들 기구들은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스포츠 윤리센터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해줄 특별사법경찰권은 현재 국회에서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특사경법) 개정안으로 발의돼 논의 중에 있다.


출범한지 벌써 두 달이 지난 상황에서 일 처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스포츠 윤리센터는 지금까지 총 상담 및 신고가 각각 83건, 40건(9월 29일 기준)이라고 발표했다. 접수된 안건들의 특성상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 성폭력 등 심각한 사안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보다 빠른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급하게 처리할 경우 뜻하지 않은 제2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해 스포츠 윤리센터 측은 “접수된 모든 상담 및 신고 건에 대해서는 비밀 보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조사와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어렵다”라며 “일반적으로 사건접수 후 사전조사를 통해 조사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를 거치고, 조사 개시를 결정하면 신고인, 피해자, 피신고인 및 참고인 등을 조사해 조사결과를 심의위원회에 상정하고 의결조치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윤리센터는 8월 5일 출범 후 약 한 달간 규정 정비와 각종 매뉴얼 작업 등을 진행했고, 9월 2일부터 상담 및 신고 업무를 개시했다. 공백 기간에는 기존 센터들(스포츠비리신고센터, 대한체육회의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체육인지원센터)이 신고·상담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막 첫 발을 디딘 스포츠 윤리센터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다. 무엇보다 사고 후 수습이 아닌 사고 예방이야 말로 스포츠 윤리센터가 지향해야 할 부분임에 분명하다.


이를 두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김대희 박사는 “스포츠 윤리센터의 핵심기능인 교육 역시 교육 내용이나 방법 등을 정해 실행하고, 누구나 쉽게 신고하고 바로 조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홍보도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대희 박사는 “체육계 현장은 물론 국민들은 스포츠 윤리센터 설립을 통해 보다 나은 인권 친화적인 스포츠 환경을 바란다. 상대적 약자인 선수의 권익보호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만큼 이에 맞는 스포츠 윤리센터의 사업계획이나 세부 운영방안이 수립, 발표되고 실효성 있는 교육과 홍보도 하루빨리 진행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스포츠 윤리센터 측은 “우리 기관의 인지도 제고를 위해 카카오 및 SNS 채널 개설과 기관소개·신고절차 내용을 담은 홍보물을 배포하고 있다. 홍보영상 및 콘텐츠도 제작해 체육인들에게 더욱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며 “체육 기관 등 유관기관 홈페이지에 온라인 콘텐츠를 게재하여 더 많은 체육인에게 윤리센터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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