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던진 '임단협 주기 확대'…연례파업 해법 될까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0.09.14 12:02 수정 2020.09.14 14:05

매년 소모적 노사 줄다리기, 생산 차질 '고질병'

교섭주기 확대시 근로자도 불확실성 제거 측면 유리

자동차 업계가 매년 노사간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놓고 벌이는 줄다리기와 노조의 상습적 파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한국GM이 노동조합에 제시한 ‘임단협 교섭주기 확대’가 해법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최근 노조에 올해와 내년치 임금협상(임협)을 묶어서 교섭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내년 인상액까지 올해 임단협 교섭에서 결정한 뒤 내년에는 별도의 임협 없이 올해 결정된 인상액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교섭 결렬을 선언했지만, 업계에서는 한국GM이 2년 주기 임협이라는 첫 사례를 만들어낼 경우 매년 완성차 업체들이 연례행사처럼 겪어야 하는 노사갈등 리스크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보고 한국GM 노사간 교섭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임단협 교섭 주기 확대는 이번에 한국GM에서 업계 최초로 노조에 제안하긴 했지만, 그동안 자동차 업계와 재계에서 계속 언급됐던 화두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은 매년 반복되는 교섭구조와 교섭의 장기화로 인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며 “현재 최대 2년인 단협의 유효기간을 3~5년으로 연장하고 단협과 임협이 같은 시기에 함께 논의될 수 있도록 임협의 유효기간 한도를 변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산직 근로자들도 임단협 주기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회장은 지난 7월 28일 ‘제4회 산업 발전포럼’에서 “자동차업계 생산기술직 직원들은 노동유연성과 개인별 차별 보상을 희망하고 시장 수요변화에 따른 생산물량조정이 잘 안 되는 데는 노조와의 협의 어려움이 있다고 인식하며, 임단협 교섭주기는 2년 이상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실제 자동차산업협회와 중견기업연구원이 완성차 및 자동차부품업계 130개사, 63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산력 확충 및 생산성 제고방안 마련 과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3.7%가 적절한 임단협 주기로 ‘2년 이상’을 택했다.


특히 응답자 중 생산기술직 직원들은 77.8%가 임단협 주기로 2년 이상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 관리직을 포함한 전체 비율보다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협상 교섭 주기를 2년으로 확대하려는 한국GM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산업계에 의미가 큰 모범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매년 임금협상과 단체협약 때문에 노사가 줄다리기를 하고 파업으로 생산차질을 빚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다. 일본도 매년 임금협상을 하지만 수십 년째 파업이 없었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매년 생산차질을 빚고 교섭에 수십, 수백 명의 인원이 투입되느라 비용과 생산성에 손실을 입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존 법제상 단협은 2년마다 갱신해야 하지만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는 노사간 합의가 있으면 이 기간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법적으로는 기간을 2년보다 늘리는 게 가능하다.


임협은 노조법 개정 이전이라도 2년으로 확대하는 데 법적 제약이 없다.


단협 주기는 차차 늘리더라도 당장 임협이라도 2년으로 확대하는 게 기업 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게 업계 지적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단협이 4년 주기로 가면 기업들도 그걸 바탕으로 장기적 사업계획을 짤 수 있다”면서 “당장 1년으로 관행화된 임협이라도 2년으로 주기를 늘리면 사업계획을 훨씬 효율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노동계의 반발이다. 한국GM 노조는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지침이 매년 임협을 갱신하도록 돼 있다는 점을 들어 사측의 2년 주기 임협 교섭 제안을 거부했다.


여기에 ‘매년 사측을 압박해야 조금이라도 더 받아낼 수 있다’는 인식이 노동계에 팽배해 있어 근로자들이 임협 주기를 늘리는 것 자체가 손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장기 불황 시기에는 근로자 입장에서도 회사 실적 변동에 따른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2년간 예측 가능한 임금 인상을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내년 교섭의 기준이 되는 올해 실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현 시점에서 미리 내년치 교섭을 해 놓는 게 유리할 수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 국면에서 소득에 대한 불안감이 많은데, 올해 2년 단위 임협을 미리 해놓는다면 근로자들도 확정적인 금원 수입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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