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로 귀결된 아시아나, 플랜B 성공할까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입력 2020.09.04 12:16
수정 2020.09.04 13:13

채권단 경영 체제로 기안기금 투입 검토 본격화

구조조정-사업재편 불가피...업황 회복 요원 변수

HDC-금호, 2500억 계약금 놓고 소송전 펼쳐질듯

항공업계 빅딜로 주목받았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결국 노딜로 귀결되면서 채권단 경영 체제로 전환될 전망이다. KDB산업은행의 플랜B가 가동되면서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이 투입되도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재매각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HDC현산과 금호산업은 인수 무산 책임 공방과 함께 2500억원 계약금을 놓고 소송전을 펼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HDC현대산업개발로의 인수가 결국 무산되면서 산업은행은 채권단 경영 체제로 전환하는 플랜B를 가동할 전망이다.


HDC현산이 산은의 1조대 인수 지원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거절하고 재실사를 고집하면서 인수협상은 빈손으로 마무리됐다. 사실상 공식적인 노딜 선언만 남겨둔 상태로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은 내주 중 HDC현산에 거래 해지를 통보할 전망이다.


HDC현산은 지난 2일 산은에 이메일을 통해 “아시아나 인수에 대한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지난 26일 정몽규 HDC 회장을 만나 1조원 대 인수 지원 등을 제안했지만 기존 입장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이로써 아시아나항공 M&A는 지난해 11월 HDC현산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10개월만에 결국 노딜로 귀결되면서 거래당사자였던 금호산업, HDC현대산업개발, 산업은행에는 상당한 후폭풍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 아시아나, 6년만에 다시 채권단 체제...기안기금 투입


공식적인 인수 무산 선언 이후 관련 일정은 사실상 산은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이 결정할 전망으로 아시아나항공은 6년 만에 다시 채권단 체제 하의 경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아시아나항공은 박삼구 전 회장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며 금호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지난 2009년 12월 채권단과 구조조정 방식의 일종인 자율협약 절차를 밟은 바 있다. 회사는 자율협약을 체결한 지 5년만인 지난 2014년 12월에 졸업했다.


당초 HDC와의 공동투자 및 유상증자를 통해 2분기 말 기준 2291%인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을 400%대까지 떨어뜨린다는 계획이었지만 무산되면서 채권단은 우선 출자전환 등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취득해 최대주주에 오른다는 계획이다.


우선 영구채 주식 전환과 기안기금 투입을 통해 당장 급한 자본 위기를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현재 보유한 8000억원 규모의 아시아나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고 약 2조원 가량의 기안기금을 투입해 지분을 37%로 끌어올려 현 대주주 금호산업(지분 30.7%)을 제치고 최대 주주가 된다는 것이다.


플랜B의 첫 단추가 잘 끼워지기 위한 조건은 기안기금 투입 여부다. 현재 산은과 기안기금 심의위원회는 기금 투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아시아나항공이 지원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기안기금이 코로나19 사태 이전 부실이 발생한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경제, 고용안전 및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업종을 대상으로 기금을 지원한다’는 취지에는 부합한다하더라도, 코로나 사태 이전에 부실이 발생한 기업은 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기로한 원칙에는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의 자기자본은 올해 반기 기준 약 5600억원(개별 4800억원)에 불과하고 지난 6월 말 기준자본잠식율은 49.8%에 달하며 지난해 말 18.6%에 비해 크게 악화된 상황이라 당장 자금투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실상 정상화가 불가능한 상태다.


또 기안기금이 투입되도 막대한 이자비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아시아나항공에만 국한될 수 밖에 없다는 문제도 있다. 기안기금이 지원 조건으로 계열회사에 대한 지원 금지를 내걸고 있어 저비용항공(LCC) 자회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에는 자금대여·채무보증·일감몰아주기 등 우회적 지원도 원천 차단된다.


양 LCC를 포함한 6개 자회사가 아시아나항공의 영향력 하에 유·무형의 지원을 받고 있는 터라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각 사별로 경영 정상화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HDC현산과의 인수 협상서 논의됐던 통매각보다 분리매각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강도 높은 체질개선 이뤄도 당장 재매각 어려워


기안기금이 투입돼도 체질개선을 위한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불가피할 전망이다. 채권단도 향후 재매각을 염두에 두고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등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등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HDC현산과는 통매각 원칙을 고수했지만 재매각때는 분리 매각 가능성까지 감안해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항공업계에서는 재매각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황 회복이 여전히 요원한 것이 현실로 시장 변화에 따라 새 인수자를 찾는 일이 채권단의 기대와 달리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채권단 경영 체제로 전환, 운영되다 재매각된 대우조선해양은 10년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지난 2008년 한화로의 M&A가 논의되다 계약 지연으로 딜이 무산된지 채권단 체제 하에 놓여 있다가 지난해 3월 현대중공업으로의 인수가 마무리됐다.


채권단이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하려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 채권단 입장에서 불황 속에서 아시아나항공을 보다 빠르게 재매각하려면 최대한 군살을 빼서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항공업계에서는 채권단 체제에서의 아시아나항공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주도로 공공 경영 하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진 대표적인 사례인 대우조선과 현대상선의 경우에도 수 조원대 자금을 투입하고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안기금이 투입돼 자본측면에서 어느정도 위기를 극복한다고 해도 채권단 하의 경영체제에서 정상화를 꾀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며 "업황 회복뿐만 아니라 항공사로서 경쟁력 유지가 재매각 성사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금호-HDC, 무산 책임공방 속 2500억원 소송전 예고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노딜로 귀결되면서 거래 당사자인 금호산업과 HDC현산은 서로에게 무산 책임을 떠넘기며 HDC현산이 금호에 지급한 이행보증금과 관련해 법적 소송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양사는 지난해 12월 말 아시아나항공 주식거래계약(SPA)을 체결했는데 당시 HDC현산은 금호산업에 2500억원의 계약금을 지급했는데 반환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딜 무산 직전까지 재실사와 대면협상을 각각 요구해 대표이사간 회동까지 이뤄진 것도 인수 성사를 위한 노력을 피력하며 이러한 법적 공방을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인수 무산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계약금 반환과 사수를 위해 필사적인 법적 공방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HDC현산은 아시아나의 계열사 부당지원과 회계상 부실이 심각했다는 점을, 금호산업측은 HDC현산이 고의적으로 거래를 미뤄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각각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서로 주고받은 공문과 실사관련 주요 사항들이 근거로 제시될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딜이 무산되면서 한화가 이행보증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는데 일부 승소했다. 당시 법원은 확인 실사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한화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행보증금 일부와 지연이자를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시아나항공 매각대금으로 그룹 재건에 나설 계획이었던 금호산업으로서는 인수 무산으로 자금난이 더 심화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소송전에 더욱 필사적일 수 밖에 없다. 차입금 상환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식 매각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데다 계약금까지 반환하게 되면 가뜩이나 심화된 자금난이 더 가중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양사간 소송전은 불가피한 수순이 될 것"이라며 "양측의 입장이 너무 첨예하고 사안도 복잡해서 소송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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