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기획┃‘F등급’ 영화②] ‘벌새’·‘82년생 김지영’…서서히 변하는 한국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입력 2020.06.17 00:17
수정 2020.06.17 18:31

연출·제작 여성 영화인 드물어

여성 감독작 꾸준히 느는 추세

여성 영화인들이 참여한 'F등급' 영화는 국내보다 할리우드에서 더 많이 등장했다. 2015년 개봉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는 샤를리즈 테론의 활약이 돋보인 작품이다. 강렬한 여전사 캐릭터를 입은 그는 무자비한 악인들에 맞서는 투혼을 보여준다.


'원더우먼'(2017)은 히어로 영화 사상 처음으로 여성 감독이 연출했으며, '캡틴마블'(2019)은 마블의 첫 여성 히어로 솔로 영화로 국내에서 580만명을 모으며 흥행했다.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도 여성의 연대기를 다루며 기존에 나왔던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결을 달리했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개봉해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은 '벌새', '82년생 김지영'은 여성 감독과 배우들이 뭉친 작품으로, 그간 보기 힘들었던 여성의 평범하면서 일상적인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두 작품 외에 '돈', '가장 보통의 연애', '말모이', '생일', '메기', '아워 바디', '정직한 후보'도 여성 감독의 연출작이다.


최근에는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배치한 작품들이 여럿 보인다. 손원평 감독과 송지효가 만난 '침입자'를 비롯해 신혜선 주연의 '결백', 여성 스포츠인을 다룬 '야구소녀'가 그렇다. 김혜수 주연의 '내가 죽던 날'과 이정현 주연의 '리미트'도 개봉을 앞두거나 촬영을 진행 중이다. '리틀 포레스트'를 만든 임순례 감독은 '교섭'을 통해 대작에 도전한다.


여성 영화인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국내 영화계에서 ‘F등급’을 세 개 이상 받는 작품은 찾기 힘들다. 여성을 주연으로 하거나 여성 감독이 연출에 나선 사례는 많지만 연출과 제작을 여성이 모두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10월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10년간 개봉한 한국영화를 전수 조사한 결과, 한국영화의 남성 편중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영화산업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 중간발표 내용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개봉한 한국영화 총 1433편에서 여성 제작자 비율은 11.2%, 프로듀서는 18.4%, 감독은 9.7%, 각본은 17.4%, 촬영은 2.7%로 집계됐다. 10년간 전반적으로 여성의 비율이 뚜렷하게 상승한 분야는 없었으며 거의 모든 직종의 여성 비율에 큰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2018년 개봉 영화 164편 중 여성 감독 영화는 20편(12.3%)이지만, 10억 또는 최대 스크린 100개 이상의 영화 77편 중에서는 9명(11.7%), 순제작비 30억 이상 영화 40편 중에서는 단 1명(2.5%)으로 감소했다.


남성 편중 현상은 캐릭터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10년간 전체 흥행순위 50위 영화 총 468편을 대상으로 캐릭터를 분석한 결과, 여성 주연 영화의 비율은 24.4%에 그쳤다. 반면, 남성 주연 영화의 비율은 75.6%에 달했다.


10년간 크레디트의 등장인물 순서에 따른, 주연 1과 주연 2가 모두 남성인 경우는 45.1%로 전체 영화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반면 주연1과 주연2를 모두 여성이 맡은 영화는 8.3%에 불과했다. 10년간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는 6.2%로 집계됐다.


영진위는 "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증가하면서 남성 중심의 액션, 범죄물이 주로 제작되고 있다"며 "여성 이야기의 부족으로 극장에서 관객들이 수용하는 이야기와 관점에서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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