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일, 김유진PD, 이럴 거면 왜 사과했나?
입력 2020.04.23 08:20
수정 2020.04.23 08:11
애매한 말로 진실 피해가면서 덮어놓고 사과
사과도 제대로 해야 진심이 전달되는 법
김유진 PD의 학교폭력 논란에 대해 김유진 PD와 예비 신랑인 이원일 요리장, 그리고 이원일 요리장의 소속사에서 모두 사과문을 내놨다. 사과문만 3개다.
이원일 요리장은 ‘사실을 떠나 결과론적으로 가슴 아픈 상처를 되새기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사실을 떠나’라는 부분이 문제다.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사과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과를 왜 한다는 말인가? 사과는 잘못한 사실이 있을 때,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고 하는 것이다.
‘가슴 아픈 상처를 되새기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라는 부분도 문제다. 여기서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무거운 주체는 이원일 요리장 측으로 해석된다. 학교폭력이 있었다면 그 피해자가 트라우마에 시달릴 일인데, 피해자는 건너뛰고 자신의 마음이 무겁다는 걸 내세웠다. 피해자 입장에서 이런 걸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폭로가 만약 모함이라면 이원일, 김유진 PD 측이 피해자가 되는데, 그렇다면 사과할 이유가 없다. 김유진 PD가 가해자라면 피해자를 우롱하는 듯한 이상한 사과이고, 피해자라면 할 필요가 없는 의문의 사과인 것이다.
김유진 PD는 ‘사실 여부를 떠나 저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오랜 시간 동안 아픔을 잊지 못한 피해자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했다. 김 PD도 ‘사실 여부를 떠나’라고 했다.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데, 사실 인정이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진심으로’ 하는 사과가 가능할까? 게다가 소속사 사과문에도 ‘사안의 사실을 떠나’라는 대목이 있다. 왜 자꾸 사실을 떠나나?
또, 김 PD는 ‘저와 관련된 학교 폭력 논란에 대하여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 드립니다’라고 했다. 폭력 가해가 아닌, ‘논란’에 대해 사과한다는 의미다. 논란에 대해 누구에게 사과한다는 말인가? 논란에 대한 사과는 폭력 피해자가 아닌, 논란으로 피해를 본 제작진이나 소속사 등 관계자들을 향한 것이다. 엉뚱한 사과다.
이렇게 논리가 꼬이는 것은 김 PD가 폭력 가해 행위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과만 했기 때문이다. 이원일 요리장도 ‘김유진 PD와 관련된 논란으로 불편함을 드리게 된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며 ‘논란’을 사과했다. 소속사는 ‘김유진 PD가 학교 폭력 가담이라는 의혹에 대해 참담함을 느끼며 사과의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폭력이 아닌 의혹이 참담하다는 것이다.
무려 세 개나 되는 사과문이 나왔는데, 그 어느 사과문에도 잘못을 인정하는 부분이 없다. 잘못 인정 없이 하는 사과는 거짓 사과로 받아 들여질 수 있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한다. 안 하니만 못한 사과가 된 것이다.
김유진 PD는 ‘논란’,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애매한 말로 진실을 피해가면서 덮어놓고 사과만 하지 말고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 자신이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모함당한 것인지, 사과든 항변이든 그 다음 일이다. 이원일 요리장과 소속사는 사실관계를 확실히 파악한 다음 나서야 한다. 사실관계는 모르는데 어쨌든 논란이 터졌으니 누구에게든 사과한다는 식의 태도는 빈축만 살 뿐이다. 만약 김 PD가 가해자가 맞는다면 피해자를 더 괴롭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과도 제대로 해야 진심이 전달되는 법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