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기획┃지속 가능한 코미디③] 윤형빈 “코미디의 미래, 우리 힘으로 만들어야”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0.04.01 11:33
수정 2020.04.01 11:33

개그 아이돌 코쿤, 그룹 형태의 코미디로 활동반경 넓혀

"기획력 갖춘 개그 기반 회사 만들어져야"

“개그맨이 된 이상, 열심히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웃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개그맨들은 이를 자신들의 ‘숙명’이라고 말한다. 오프라인과 방송의 연계는 우리나라의 공개 코미디의 강점이었지만, 명맥이 끊어지면서 새로운 영역을 찾아 헤매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하나의 통로가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 마냥 방송사의 탓을 하며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개그콘서트’에서 왕비호 캐릭터로 큰 인기를 끌었던 데뷔 16년차 개그맨 윤형빈은 ‘코미디와 문화의 접목 발전’을 목적으로 신개념 개그문화 브랜드 윤소그룹을 설립했다. 기존 극단 형태를 브랜드화 시켜 신인 개그맨을 육성하고 있으며 코미디와 다양한 분야와의 접목을 시도 하는 그는 한국 코미디가 마주한 현실과 변화하는 시장, 그리고 안정적인 코미디의 미래를 위한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먼저 윤형빈은 지금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흥행과 침체를 겪으면서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코미디’라는 개념이 축소된 것에 안타까움을 보였다. 대다수 시청자들에겐 ‘개그=공개 코미디’로 인식되고 있지만 코미디는 슬랩스틱, 콩트, 시트콤, 스탠드업, 넌센스, 넌버벌, 패러디 등 소개하기 힘들 정도의 다양한 장르로 나뉜다.


“코미디는 굉장히 다양한 장르로 존재한다. 주로 코미디라고 하면 개그프로그램만 떠올리지만 인기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tvN ‘플레이어’는 즉흥 콩트를 선보이고 분장을 하는, 사실상 코미디의 형태를 보인다. 종영한 MBC ‘무한도전’도 코미디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 다만 시청자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방송사에서 개그맨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지 않아하고 ‘예능’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로 대강 표현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다”


코미디가 방송에서 설 자리를 잃었지만 그는 “이제야 다른 장르가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개인 방송, 즉 유튜브를 통한 활약은 상상을 넘어서는 인기를 얻고 있다. 방송 외의 공간으로 눈을 돌려 직접 개그 아이템을 만들고, 대중들의 니즈에 맞는 기획까지 만들어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지금 각자가 보여주는 성과들은 또 다른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윤형빈은 코미디의 장르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윤소그룹에서는 개그와 마술, 콩트 등의 다양한 볼거리,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식 개그 등을 선보이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개그 아이돌’이라는 다소 생소한 구성의 그룹을 만들었다. 2018년 코쿤(KOKOON)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이들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며 K-코미디의 선두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그룹 형태의 코미디다. 공연 안에서 아이돌처럼 춤과 노래를 하고, 개그 코너도 선보인다. 음악 방송은 물론, 개그 프로그램 등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 예를 들자면 ‘무한도전’을 방송사가 아닌 기획사 주도 하에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실제로 ‘무한도전’ 멤버들이 한 회사의 소속 그룹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시너지는 어마무시할 것이다. 아직 개그 아이돌로서 대단한 성과를 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법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한다”


개그 아이돌은 코미디가 사회구조 속에 잘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첫 단추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의 경우 코미디언들은 모두 소속사와 전속 연봉계약을 맺고 매달 일정한 월급을 받는다. 이러한 시스템엔 장단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한국의 수많은 코미디언 지망생, 혹은 신인 코미디언에게 이 시스템이 적용된다면 최소한의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개그를 기반으로 한 기획력을 갖춘 회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이야기다. 가수나 배우들이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같은 시간 동안 개그맨들이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정말 뼈아프다. 최근 유병재, 박나래 등이 끌어가는 쇼들이 화제가 됐다. 좋은 개그맨을 주체로 하는 쇼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이런 이슈는 성장이 더딜 가능성이 높다”


“앞서 개그맨들은 공개 코미디의 압도적인 성공을 두고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을 썼다. 스타를 폭발력 있게 배출하는 것은 좋지만 ‘공채 개그맨’이라는 이름으로 방송국 주도하에 있는 인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쓰일 곳이 있어서 뽑았던 인력인데 지금은 쓸 수 있는 통로가 사라지게 되면서 방송국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책임지는 주체는 없고 개그맨들은 그 틀 안에 갇힌 셈이다”


한국 코미디 시장에 주어진 장기적인 문제는 인재 양성이다. 또 이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국 코미디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말은 소속사와 소속 코미디언의 ‘공생’의 어려움을 시사한다. 윤형빈 역시 코미디언이자 제작자로서 이 짐을 짊어지고 있는 처지다.


“꿈을 원대하게 가졌던 적이 있다. 하지만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다 보니 한치 앞을 예상하기가 어렵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신인을 발굴하고, 그들이 설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뛰는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현재 방송국 위주의 시스템에서 탈피해나가는 수순인데, 그 이후가 중요하다. 우리 힘으로 해나가야 하는 시기가 왔고, 시장이 형성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결국 코미디의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