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디그라운드①] 가수 박소은, 음악이라는 ‘처방전’…그 안에 담은 위로
입력 2020.03.25 12:04
수정 2020.08.05 15:19
'슈스케7' 이후 벌써 5년, 스물 셋 박소은의 이야기
"첫 정규앨범 '고강동', 지워지지 않는 부담감 힘들었다"
2015년 엠넷 ‘슈퍼스타K7’에 한 여고생은 자작곡 ‘그믐달’로 무대에 올랐다. 녹화장에는 그의 담담한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짧은 머리에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중성적인 매력을 풍긴 그는 군더더기 없이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아냈다.
그로부터 벌써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슈스케7’을 울렸던 그 여고생은 어느덧 스물넷의 아티스트 박소은으로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데뷔곡 ‘그믐달’을 시작으로 첫 EP ‘일기’, 디지털 싱글 ‘위성에게’ 등을 내놓은 그는 26일 데뷔 후 첫 정규 앨범 ‘고강동’을 선보인다. 여전히 앳된 외모지만 음악은 더 성숙해졌다. 절제된 감성 표현과 사소한 이야기로 채운 가사는 듣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안기기에 충분하다.
이번 정규 앨범 ‘고강동’에는 동명의 타이틀곡을 비롯해 ‘인생이 박살나던 순간’ ‘생각을 해보니’ ‘왠지’ ‘보통의 연애’ ‘너와 가장 먼 곳에서’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 ‘너만 있으면’ ‘좀 더 살아 보려구요’ ‘너는 나의 문학’ ‘위성에게’ 등 총 11곡을 담아냈다.
D. ‘슈스케7’ 출연 후 벌써 5년이 흘렀다.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데, 벌써 5년 전 일이라는 게 새삼 낯설게 다가오네요. 그때 불렀던 ‘그믐달’이 데뷔곡이 됐는데 최대한 빨리 제 노래를 세상에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의 제가 가장 애정하던 노래이기도 해서 데뷔곡으로 하고 싶었나 봐요”
D.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던데.
“완전 관심이 있던 대회였어요! 중학생 때 음악학원에서 취미로 노래를 배웠는데 그 때 노래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수상곡인 ‘하늘’이라는 노래를 추천해주셨어요. 어린 나이였는데도 그 노래가 정말 좋아서 밤낮 가리지 않고 계속 들었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께서 ‘스무 살이 되어야 참가할 수 있는 대회다. 그때까지 음악을 하고 있다면 꼭 나가 보라’고 하셔서 칼을 갈면서 그 시간만 기다렸어요. 비록 지금은 고등학생도 참가할 수 있지만요(웃음)”
D. ‘그때까지 음악을 하고 있다면’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음악을 놓고 싶었던 적은 없나.
“글쎄요. 아주 어릴 때부터 이유 없이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면 성악가인 아버지의 영향일 수도 있겠네요. 열세 살 즈음 영화 ‘스쿨 오브 락’과 ‘원스’를 보고 평생 기타치고, 노래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한 것 같아요. 그 다짐은 지금도 유효하고요. 저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흔들린 적이 없어요”
D. 박소은의 노래는 철저히 본인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EP 타이틀곡이었던 ‘일기’가 특히 그랬고.
“철저히 제 이야기지만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오네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일기’라는 제목에 맞게 제 속마음 그대로를 꾸밈없이 썼어요. 그 곡을 많은 분들이 자기의 이야기 같다며 공감해주고, 사랑해주시더라고요. 저는 주로 그런 음악을 하는 듯 해요. 사적이지만 동시에 공적인 이야기를 하는 음악”
D. 박소은의 스타일로 만든 정규 앨범은 어떤가.
“이번 앨범은 ‘다양함’을 콘셉트로 하고 있어요. 제 스스로가 고정된 장르만을 고집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양한 도전을 시도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신스팝과 포크, 뉴웨이브와 어쿠스틱, 컨트리와 록을 각각 섞어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장난을 많이 쳐봤어요.(웃음) 물론 제가 지향하고 좋아하는 음악 성향은 그대로지만, 그 안에서 더 세분화되고 다양한 걸 만들고 싶었거든요”
D. ‘나는 아주 아주 돈을 많이 벌어서 고강동을 통째로 다 사버릴 거야’ ‘나는 아주 아주 많이 유명해져서 엄마한테 백화점을 줘버릴 거야’…타이틀곡 ‘고강동’의 가사다. 터무니없이 솔직해서 더 순수해 보이는 것 같다.
“고강동은 제가 살던 부천시의 한 동네에요. 전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편하고 그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게 점점 힘들어졌고 그것에 의문을 품게 됐어요. 의문의 답은 ‘돈’과 ‘시간’이더라고요. 두 가지가 점점 나에게 사라져가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아주 유명해지기로 다짐했어요. 자동차 한 대쯤 눈 감고 선물할 수 있을 때까지(웃음). ‘고강동’은 그 거대한 포부에 담긴 야망을 이야기한 노래에요”
D. 수록곡들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겪을 일들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맞아요. ‘인생이 박살나던 순간’은 진짜 제 인생이 박살 나버렸다 싶었던 날의 감정을 담았고, ‘생각을 해보니’는 잃어버린 제 카드를 누군가 사용했는지 저에게 결제 문자가 왔던 당시를 생각하며 쓴 곡이에요. 그런데 그 와중에 돈이 없어서 ‘결제 실패’ 문자가 왔어요. 헛웃음이 나오고 동시에 곡도 나오더라고요(웃음)”
“또 ‘보통의 연애’는 말 그대로 특별한 줄 알았던 사랑이 지나고 나면 다 보통의 연애였음을 알게 된 후의 이야기에요. 곡 제목도 최대한 평범하게 짓고 싶었어요. ‘너와 가장 먼 곳에서’는 관계 단절의 어려움을,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는 우스꽝스러운 세상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마음을, ‘너만 있으면’은 따뜻하고 행복하지만 동시에 간절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좀 더 살아 보려구요’는 어떤 일에 있어서 자책을 한 후 찾아오는 안정감을, ‘너는 나의 문학’은 사랑을 문학 책에 대입해 본 곡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수록곡인 ‘위성에게’는 밤하늘 나를 지켜주듯 떠 있는 별(사실은 인공위성이었지만)에게 받은 위로를 담았어요”
D. 빼곡하게 11곡을 담아냈다.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다.
“확실히 정규앨범의 무게가 다른 앨범보다 묵직하더라고요. 처음 발매하는 정규라서 더 그렇겠지만 부담이 컸어요. 정규를 내겠다고 자신 있게 말해놓고 막상 시작하니 내가 조금은 무모했나 싶은 생각도 했고요. 한 곡, 한 곡에 큰 에너지를 쏟다보니까 음악 작업하고, 아르바이트 하고, 집에 돌아와서 잠드는 것의 반복이었죠. 열심히 작업하면서도 자꾸 지워지지 않는 부담감이 조금 힘들었어요”
D. 그래서인가, 스스로에게 약을 처방하듯 노래를 만들었다고.
“맞아요. 즐겁다가도 당장 살아가야 할 내일이 지겹고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스스로 약을 처방하듯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것들이 모여 ‘고강동’이 되었고요.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제 노래가 좋은 처방전이 되길 바라요. 제가 제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도 위로를 받았으면 해요”
D. 노랫말이 제법 거칠고, 우울한 부분이 많은 것 같은데.
“외로움이나 우울함, 그리고 무기력함은 평생 사람을 쫓아다니는 숙제 같아요. 저는 그 숙제를 딱히 미뤄놓거나 숨겨놓고 싶지 않아요. 그 자리에서 다 풀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것 봐요, 별로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었고요. 그러다 보니 어두운 감정들에 대해 많이 노래하게 되네요”
D. 앞으로의 음악적 방향성이 궁금해진다.
“‘누구랑 비슷하다’ ‘누가 생각난다’라는 말을 듣지 않게 그냥 ‘박소은’ 세 글자로 표현될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박소은’하면 떠오르는, 색이 확실한 음악을 만들어 볼 거예요. 아! 여러 가지 장르를 섞어보는 도전도 계속 해보고 싶고요”
D. ‘박소은’ 같은 음악으로 돈 많이 벌고, 유명해져서 고강동을 통째로 사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제가 돈을 아주아주 많이 벌고, 아주아주 많이 유명해져서 고강동을 사게 된다면 모두에게 지분을 나눠드릴 거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