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이명박의 ´아름다운 시절´
입력 2007.10.20 09:02
수정
<데일리안 대선기획> ´유력 대통령후보, 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6>
"회사 돈을 내 돈 같이…" 뚝심과 피눈물로 일궈낸 샐러리맨 성공신화
“그렇게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현대건설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할 때 기자들이 늘 하던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비슷했다.
“회사 돈을 내 돈 같이 생각하고 회사를 내 회사로 생각하는 겁니다.” - 이명박, <온 몸으로 부딪쳐라>(2007) 중에서
이명박의 ‘뚝심’, 청와대 지시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다
이명박 후보가 현대건설 중기사업소(현대중공업의 전신)에서 과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이 후보가 일하던 서빙고 공장의 인근엔 골재 생산업체인 공영사 공장이 있었는데 이 업체에서 발생한 분진 문제로 말썽이 잦았다.
알다시피, 기계 조립에 있어 분진은 절대 금물.
당시 공영사는 분진방지 시설을 갖추기로 약속을 해놓고도 이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청와대로 ‘레미콘’을 공급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건 청와대와 당신네 사이의 일이고, 우리와의 약속부터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청와대에서 시키면 그만이지 현대와의 약속이 무슨 소용이오?”
화가 난 이명박 ‘과장’은 공영사 측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공장을 돌리지 못하게 하겠다’고 경고하면서 6시간의 말미를 줬다.
다음날 아침, 그는 직접 불도저를 몰고 공영사로 향했다.
그리고 트럭이 드나드는 진입로를 불도저로 깊숙이 파버렸다.
도로가 봉쇄된 탓에 난리가 났다.
그를 찾는 전화가 청와대로부터 직접 걸려오기까지 했다.
“공영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람에 우리도 고속도로 공사를 못하게 생겼습니다. 골재 납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으나 이건 청와대가 간여할 일이 아닙니다. 길을 복구하는 것은 공영사의 태도에 달려 있으니 그쪽으로 연락하십시오.”
그렇게 하루 낮이 지났다.
마침내 저녁이 되자 공영사에서 무릎을 꿇었다.
중동 열도 건설 현장을 지휘할 때도 이 후보의 ‘불도저’식 뚝심은 그 진가를 발휘했다.
그러나 ‘불도저’라는 표현이 항상 이 후보에게 긍정적으로 쓰이진 않는다.
강한 추진력은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드는’ 맹목적임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후보는 그냥 ‘불도저’가 아니라 ‘컴도저’, 즉 ‘컴퓨터가 달린 불도저’란 애칭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피눈물은 그저 문학적 수사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1980년대 중공업 분야의 중복 투자를 쇄신하겠다며 ‘신군부’가 추진한 ‘중화학공업 투자조정’ 정책은 현대그룹엔 큰 위기였다.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는 ‘현대와 대우, 아세아자동차’, 그리고 ‘옥포조선과 현대중공업, 현대양행’ 등을 하나로 통합하겠다며 현대 측엔 발전설비를 맡길 테니 자동차는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를 선택했지만, 국보위의 압력에 못 이긴 나머지 회사 도장을 이 후보에게 내주고 만다.
당시 이 후보는 “기업의 경쟁 구조는 시장경제의 원리이자 원동력”임을 강조하며 “난 회사를 넘긴다는 서류에 도장을 못 찍겠으니 찍으려면 당신들이 찍어라”고 국보위의 장교들에게 정 회장의 도장을 내밀었다고 한다.
한밤중에 돌아간 현대 사옥.
정 회장이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는가.”
“도장을 안 찍어줬습니다. 내일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날의 사건에 대해 이 후보는 훗날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통해 “그저 문학적 수사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피눈물이 실제로 내 눈에서 흐르고 있었다”면서 “이때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이 통합됐다면 인도 수준에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고 적고 있다.
‘이명박의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계속됐다.
공휴일도 없이 하루 18시간 넘게 일을 했다.
기업주의 목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대규모 건설 수주를 따내려고 중동과 동남아시아를 누볐고, 한소경제협회 창립을 주도하며 등 북방 진출을 시도했다.
20여년간 대기업의 CEO(최고경영자)로 있으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도 벗어났다.
이 후보가 회사를 떠날 당시 현대는 임직원 17만명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의 부인 김윤옥씨와 결혼, 세딸(주연, 승연, 수연)과 아들(시형)을 뒀다.
“이명박, 그는 현대와 연애하듯 살아온 사람이었다. 자신이 몸담은 직장과 지고지순한 로맨스에 빠져 다른 세계는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이다.” - 심현영(전 현대건설 사장), <아름다운 시절>(2007)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