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늪’ 한전, 칼 빼들었다…전기료 인상 불가피
조재학 기자
입력 2019.11.01 06:00
수정 2019.10.31 22:00
입력 2019.11.01 06:00
수정 2019.10.31 22:00
한전, 특례할인 제도 폐지 검토…연료비연동제 단계적 도입
정부, 전기요금 인상 ‘난색’…“폐지 여부 논의 적절치 않다”
한전, 특례할인 제도 폐지 검토…연료비연동제 단계적 도입
정부, 전기요금 인상 ‘난색’…“폐지 여부 논의 적절치 않다”
적자 수렁에 빠진 한국전력이 전기요금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연간 약 1조원에 달하는 각종 한시 특례할인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1일 한전 등에 따르면 김종갑 사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온갖 할인 제도가 전기요금에 포함돼있다”며 “새로운 특례할인은 없어야 하고, 운영 중인 한시적 특례는 모두 일몰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물론 주택용 절전 할인, 신재생에너지 할인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충전 할인, 전기차 충전 할인, 초‧중‧고교 및 전통시장 할인 등 특례할인 제도를 원칙적으로 모두 없애 부담을 덜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해에만 한전은 특례할인 제도로 인해 1조1434억원을 부담했다.
김 사장의 ‘전기요금 인상’ 발언은 대규모 적자와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전은 208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6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에도 9285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으며, 최근 3분기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김 사장은 적자 원인 중 하나로 각종 정책비용을 지적했다.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의 정책비용은 6조2983억원으로, 2016년과 비교해 33.5% 급증했다. 올해 1분기에도 정책비용만 1조5111억원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제유가 상승기에 탈원전 중심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비용까지 겹치면서 한전이 사면초가 상황에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료가가 오르고 정책비용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기요금은 고정돼 있어 옴짝달싹 못하는 모양새다. 김 사장도 어쩔 도리 없이 국제유가만 쳐다보는 ‘천수답(天水畓)’식 경영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 때문에 한전은 궁극적으로 연료비, 정책비용 등 원가 변동요인을 주기적으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전력도매가격 연동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석탄‧LNG(액화천연가스) 등 원료 가격이 오르면 전기요금도 인상된다.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정책비용 회수체계를 제도화하는 등 경영 안정성 확보가 가능하고, 수요 측면에서 합리적 전기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국내에서는 1998년 가스요금, 1998년 열요금, 2003년 화물 항공요금, 2005년 여객 항공요금에 적용되고 있지만, 전기요금에는 도입되지 않고 있다.
해외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상위 50개 중 37개국(74%)이 도입했다. 전력산업 성숙도가 낮거나 발전자원이 풍부한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기요금 연료비연동제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김 사장은 인터뷰에서 “연료비연동제는 장기적으로 요금체계를 예측 가능성 있게 바꾸자는 취지에서 제안했다”며 “이미 휘발유나 가스도 그렇게 하고 있다. 다만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 사장이 용도별 요금원가 공개를 시사해 주목받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에 앞서 요금원가 공개를 통해 국민 수용성을 높이겠다는 복안으로 분석된다.
한전은 지난 2009년 6월, 2010년 10월, 2011년 7월과 12월 네 차례 원가회수율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원가회수율 공개는 전기요금 조정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2011년 한 해에만 전기요금을 두 차례 인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이후 원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 사장은 인터뷰에서 “정부와 용도별 요금원가 공개를 협의하고 있다”며 “현재 주택용은 원가의 70%가 안 되며, 농업용은 30% 조금 넘고 산업용은 원가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가와 비슷한 수준은 일반용 요금뿐”이라며 “야단을 맞더라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이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물꼬를 텄지만,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어 실제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줄곧 현 정권 내에서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앞서 김 사장은 지난해 7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콩(원료)보다 두부(전기)가 더 싸다”며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또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도 “전기소비와 자원배분 왜곡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요금체계 개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론이 불거질 때마다 정부는 길목을 막고 이를 덮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3월 대정부질문에서 “2022년까지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 없다”며 전기요금 인상론을 차단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한전 적자 때문에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건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정부는 즉각 진화에 나섰다.
성윤모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한전이 한시적으로 적용해온 각종 전기요금 특례할인 제도에 대한 폐지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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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학 기자
(2jh@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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