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민간인 억류한 북, 또다시 생긴 협상카드

하윤아 기자
입력 2016.03.17 17:43
수정 2016.03.18 10:13

전문가들 "미국 견제하면서 향후 대화국면 대비하기 위해..."

북한에 억류된 미국 버지니아종합대학 학생 프레데리크 오토 웜비어(21)가 2월 2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화면캡처.

북한이 억류 미국인 프레데리크 오토 웜비어(21)에게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이 또 다시 민간인 억류를 일종의 '협상 카드'로 활용해 얼어붙은 북미관계를 풀기 위한 움직임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16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북한에 3개월째 억류 중인 미국 버지니아종합대학 학생 웜비어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웜비어는 지난해 12월 29일 북한에 입국했으며, 올해 1월 1일 양각도 국제호텔의 제한구역에서 선전물을 훔치려다 적발돼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미국 버지니아종합대학 학생 왐비어 오토 프레데리크는 미국정부의 묵인, 조종 밑에 조선의 일심단결의 기초를 허물어버릴 목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관광의 명목으로 입국하여 반공화국적대행위를 감행하다가 적발되어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통신은 지난달 2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회견에서 "웜비어가 일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결심을 내리고 조선인민과 정부를 반대하는 엄중한 범죄를 감행한데 대하여 사죄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날 북한이 공개한 영상에서 웜비어는 여러 차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죄한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국이 주도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이처럼 미국인 억류 사실을 공개한 것은 향후 북미관계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북한은 과거 핵실험 도발 이후에도 억류된 민간인을 일종의 협상카드로 꺼내들어 경색된 북미관계를 풀어보려는 시도를 보인 바 있다.

지난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당시, 국제사회는 18일만에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통해 북한의 무기금수, 수출통제, 화물검색 등의 경제 제재를 가했다. 벼랑 끝에 몰린 북한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억류 중이던 미국 여기자 유나 리와 로라 링을 협상 카드로 사용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유나 리와 중국계 미국인인 로라 링은 2차 핵실험에 앞선 2009년 3월, 북한과 중국 국경에서 취재 활동을 하다 북한에 억류됐다. 이후 북한은 이들에 대해 '조선민족 적대죄', '국경 무단 침입죄' 등의 죄명을 붙여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은 이후 두 명의 미국인 석방 문제를 놓고 미국과 물밑 협상을 벌였고, 결국 그해 8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면담에 나서면서 두 사람의 석방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북한은 2013년 2월 단행한 3차 핵실험 직후에도 억류자 카드를 활용했다. 역시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제 제2094호로 북한을 압박하고 나서자 북한은 억류 중이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의 석방을 놓고 미국과 힘겨루기에 나섰다. 케네스 배는 2012년 11월 함경북도 나진항을 통해 관광 명목으로 입국했다가 체포됐으며, 3차 핵실험 직후인 2013년 4월 '국가전복음모죄'라는 죄명으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당시 막후협상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고, 이에 북한은 이례적으로 케네스 배의 수감생활 모습을 공개하는 등 미국의 적극적인 교섭 움직임을 유도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2013년 8월 로버트 킹 국무부 인권특사의 방북 계획을 발표했으나 북한은 별도의 고위급 인사의 방북을 원하며 킹 특사의 방북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후 북-미간의 기싸움이 장기화되면서 두 명의 미국인(매튜 토드 밀러,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이 북한에 추가로 억류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다 돌연 북한은 2014년 10월 파울을 석방했고,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에 남아있던 2명의 미국인도 무사히 풀려났다.

이 같은 전례에 미뤄 북한은 이번 억류자도 미국과의 교섭용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는 17일 '데일리안'에 "일단 이번 억류는 안보리 제재와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에 대한 반발의 연장선에서 취한 조치로 보인다"면서 "다만 북한에서는 앞으로 태양절, 건군기념일, 7차 당대회 등 큰 행사가 예정돼 있고, 이러한 행사가 끝나면 대화모드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 (억류자를) 협상 카드로 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북한은 이미 억류한 사람들을 협상의 카드로 쓰는 부분에서 상당한 재미를 봤다"며 "이번에도 활용 카드를 하나 비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도 본보에 "전형적으로 미국의 행동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이고, 북한은 여차하면 북미교섭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향후 대화 국면으로 유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홍 실장은 "그러나 이것이 큰 국면에서 북미관계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며 "할 수 있는 게 없는 북한으로서는 나름대로 강온양면책을 쓰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미국 역시도 제재는 제재대로 하면서 때가 되면 억류자를 풀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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