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묻지마 폭로' 결국 공천 때문에...?

조성완 기자
입력 2014.08.08 11:41
수정 2014.08.08 11:45

아님 말고식 폭로 언론 노출이 목적 "면책특권 제한해야"

지난 5월 28일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사전검증팀 연석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11일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노무현 정부 간의 여러 유착 의혹을 제기하던 중 SNS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 전 회장이 삼계탕을 먹고 있는 사진이 유포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인물은 유 전 회장이 아니라 참여정부 당시 경제보좌관을 지낸 조윤제 서강대 교수이며, 조 의원도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 법사위에서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세월호 사건 발생 훨씬 이전’이라는 주장이 담긴 마을 주민들의 녹취록을 공개하며, 의혹을 제시했다.

하지만 한 종편의 취재 결과 녹취록에 등장한 주민들은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확답을 피했다. 박 의원 역시 ‘본인은 잘 모르는 일’이라며 유야무야 넘어갔다.


#박범계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7·30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9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시신은 유 전 회장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 관계자를 인터뷰한 한 기자가 ‘경찰 관계자는 유병언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는 제보를 바탕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후 추가 증거와 증언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재보선을 하루 앞두고 표심을 흔들기 위한 ‘무책임한 의혹 제기’라는 비난과 함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회의원들의 ‘아니면 말고 식’ 폭로가 도를 넘고 있다. 면책특권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특권의 악용’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마치 고질병처럼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다.

헌법 제45조에 의하면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 국회 밖에서 책임지지 않는 면책특권이 규정돼 있다.

일반적으로 ‘국회에서’라는 표현은 국회의사당 외에 상임위원회나 국정감사 등을 위해 다른 국가기관을 방문해 활동한 경우도 포함한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문서로 하는 의사표명도 면책특권의 범위에 포함된다.

‘직무상 행위’도 직무집행 그 자체 뿐 아니라 정부 및 행정기관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 등 직무행위에 부수된 행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면책특권을 허용해주는 것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서 자유롭게 발언하고 표결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헌법에 의해 부여된 권한을 적정하게 행사하고 그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과거부터 이를 악용한 사례는 빈번하게 발생했다.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면책특권 뒤에 숨어 명예훼손이나 악의적인 의혹제기를 하는 게 대부분이이다. 정치권 내에서도 면책특권을 악용한 무차별 폭로가 오히려 국민들의 뇌리 속에 정치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7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면책특권을 이용해 명확하지 않는 사실을 사실인양 폭로하는 건 정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더욱 큰 문제는 정치권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차례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결국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 채 다람쥐 챗바퀴 도는 상황만 연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치열했던 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국회의원 면책·불체포특권 폐지를 약속했다.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폐지’에서 한발 물러선 국회의원 면책·불체포 제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후 김한길 전 대표도 지난 2월 ‘국회의원 특권방지법’을 발표했지만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불체포특권·면책특권 완화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 모두 정치쇄신 차원에서 온갖 법안을 발표하지만 특권 차원에서는 내려놓은 게 거의 없다”며 “말만 잘할 뿐 실천은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수차례 시도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면책특권 "결국 공천을 위한 것"

일각에서는 결국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면책특권을 악용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보통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서 어필하는 것도 있지만 폭로성 발언 등을 통해 언론에 자주 노출돼 지명도를 올리는 방법도 유용하다”며 “결국 공천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흔히 ‘언론에 나온 것 중 부고 빼고는 다 유리하다’는 말이 있다. 어떤 내용의 기사인지를 떠나 일단 언론에 자주 노출될수록 지명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의미다.

실제 국회의원들의 공식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 의정활동을 소개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언론기사가 실려 있다. 해당 기사의 대부분은 현장방문이나 정책발의, 그리고 인터뷰 기사다. 자신의 활동을 알리기 위한 객관적인 증거자료로 언론 기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면책특권은 거짓인 줄 알면서도 상대를 공격하라고 준 게 아니다”며 “허위사실인 줄 알면서도 퍼뜨리는 경우에 대해서는 일정한 제한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성완 기자 (csw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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