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왜곡으로 성폭력 여론 반전됐다"

김현 기자 (hyun1027@ebn.co.kr)
입력 2012.03.17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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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간부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이정희 사무실 앞서 촛불시위

"피해자 어렵게 글 올렸는데 진보 표방 통진당은 아직도 정진후 옹호만"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역공으로 인해 트위터 여론이 반전되고 있습니다. 유 대표에게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16일 오후 6시 서울 관악구 서원동의 한 빌딩 앞. 노란색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내 10여명의 사람이 모였다.

이들은 민주노총 간부인 김모씨의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지지하는 모임(이하 지지모임)에 속해 있는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이 정진후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을 개방형 비례후보로 결정한 것에 대해 강한 항의의 뜻을 표하고자 했다.

정치적 오해와 왜곡된 시선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오직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이모 교사의 ‘피맺힌 절규’를 전달하기 위해 비가 내리는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섰다. 그들이 선 곳은 바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선거사무실 앞이었다.

이들이 많지 않은 숫자지만,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칼바람에도 뭉친 이유는 “피해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전날 피해자 이모씨는 최근 유 대표가 한 방송사 토론회에서 비례후보로 확정된 정 전 위원장을 옹호한 데 대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분노에 찬, 억울함을 호소했다.


"피해자 어렵게 글 올렸는데, 힘 실어주기 위해 모였다"

정 전 위원장은 직접적인 가해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피해자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한다. 피해자 이씨는 2010년 9월 진보성향의 매체인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사건 발생 이후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상처주고, 아프게 한 것은 가해자보다, 민주노총보다 전교조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 지도부인 정진후 위원장을 비롯한 조직의 간부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정 전 위원장이 당시 사건을 민주노총 지도부 등과 함께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대표는 지난 13일 MBC <100분 토론>에서 정 전 위원장에 대한 한 논객의 질문에 “정 전 위원장이 성폭력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근거는 있느냐”, “정 전 위원장은 피해자쪽 의견을 듣고 동의를 했다”, “이런 분을 성폭력 사건을 무마하려는 사람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 등의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정 전 위원장을 옹호했다.

이에 격분한 피해자는 15일 통진당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100분 토론에서 유 대표가 거짓말을 태연스럽게 하는 것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글을 쓴다”며 유 대표에 대한 분노를 표하는 한편 과거 정 전 위원장과 나눴던 대화 등을 낱낱이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지지모임의 한 활동가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피해자가 정말 어렵게 글까지 올렸는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모였다”고 밝혔다.

"성폭력 피해자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숫자는 적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당초 촛불시위를 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내리는 바람에 촛불은 켜지 못했다. 흡사 피해자의 억울한 눈물이 비가 돼 내리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들고 있던 피켓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 날로부터 나의 불행은 시작되었다”는 피해자의 말로 시작된 피켓엔 “피해자는 아직도 피눈물을 흘립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치유와 복귀를 외면하는 사람은 비례대표 공천의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를 위한 진보이며, 누구를 위한 성평등인가. 진보와 여성의 권리보장은 다른 가치인가”라고 호소하는 내용도 있다. 차로를 따라 두 사람이 펼쳐든 현수막엔 “잘못된 공천을 철회하는 것이 진보와 개혁의 출발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집회의 진행을 맡은 사회자는 “여기까지 오는 데 힘들었다. 선거법 위반 등 말이 많았다”고 운을 뗀 뒤 “우리가 통진당에 하는 얘기가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일보)이나 타당에서 통진당을 공격하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서...”라며 “하지만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단 한가지”라고 말했다.

사회자는 “성폭력 피해자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자는 이어 “성폭력 피해자 외면하면 진보정당 될 수 없다”, “누구를 위한 성평등인가 피해자 목소리 외면말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여자 때문에 망할 당이면 망해도 싸다"

어느 덧 참석 인원이 30여명으로 늘었고, 참석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한 여성 활동가는 “통진당은 더 이상 진보와 성평등의 가치를 절대 표방해선 안 된다”며 “유 대표 등이 피해자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 사건해결 방법에 대한 사실왜곡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사실왜곡 하지 말고 정진후는 사퇴하라”, “진보정당이라면 피해자 목소리 외면하지 말라”의 구호를 외치며 자신의 발언을 마무리했다.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 활동가는 이정희 대표를 향해 “이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에 눈물을 흘린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게 여성에 대한 안타까움, 여성 폭력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인지, 단지 국가에 관한 문제나 일본에게 유린당한 한국의 문제로 생각하는지, 그게 이 의원이 생각하는 근본인지, 여성은 오직 국가의 이름 아래 있을 때만 보호 받을 수 있고 그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고 부연했다. 이 여성은 구호로 “여자 때문에 망할 당이면 망해도 싸다”, “여성이 행복해야 진보가 산다”고 외쳤다.

또 다른 여성 활동가는 “통진당 앞에 오니까 심상정 공동대표가 한 말이 생각난다. ‘여성을 위해 힘쓰겠다. 우리는 여성의 권리를 대표할 수 있는 당’이라고 얘기한 모습이 떠오른다”면서 “하지만 그렇게만 얘기하면 뭐하나. 통진당이 여성을 대표하는 행동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들의 국회의원 배지를 위해 피해자의 평범한 삶을 무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고 성토했다.

몇 차례 발언이 있은 후 집회를 정리하기 위해 나온 사회자는 “유 대표의 역공으로 피해자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사과는 반드시 하라”고 꼬집었다.

사회자는 마지막 구호로 “정진후 후보 비호하는 통진당은 사과하라”, “성폭력문제 책임지고 정진후는 사퇴하라”등을 참석자들과 함께 힘껏 소리쳤다. 지지모임은 각자 포스트잇에 의견을 적어 ‘통합진보당에 고함’이라고 판에 붙인 뒤 이 대표의 사무실에 있는 당직자에게 전달한 것을 끝으로 집회를 종료했다.

한편, 지지모임측은 논의를 가진 후 오는 18일 촛불집회를 개최할 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서울 관악을 선거구에 출마한 이 대표는 17~18일 양일간 여론조사를 통해 김희철 민주통합당 후보와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을 치른다.[데일리안 = 김현 기자 / 이혜미 수습기자]

김현 기자 (hyun1027@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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