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을 닮은, 서촌 속의 작은 서촌 ‘공간서로’ [공간을 기억하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1.17 14:00
수정 2025.01.17 14:00

[다시, 소극장으로⑰] 서울 종로구 서촌 공간서로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서촌을 닮은, 서촌 속의 작은 서촌 ‘공간서로’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서촌은 좁다란 골목길 사이사이에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다. 빛바랜 벽돌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담쟁이 넝쿨, 낡은 듯하면서도 정겨운 느낌을 주는 골목길에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트렌디한 공간들이 숨겨져 있다. 특히 출판사와 갤러리, 독립서점, 소극장 등 숨겨진 보석 같은 문화예술 공간들이 많이 더 매력적인 공간이다.


서촌 골목의 끝자락, 모던한 외관의 ‘공간서로’도 그 중 하나다. 이 건물은 1층은 카페로, 2층은 갤러리로, 지하 1층은 극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관만 보면 여느 건물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공간의 특색을 살펴보면 공간서로는 묘하게 서촌과 닮아있다.


먼저 규모다. 공간서로의 지하1층은 가로세로 약 7m의 정사각형 형태의 블랙박스 소극장 규모의 아담한 공간으로, 관객과 배우가 가까이에서 소통하며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에 작고 아담한 가게들과 갤러리가 숨어있어 골목길을 탐험하는 재미를 안기는 서촌의 소박한 매력과 닮았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또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도 그렇다. 공간서로는 실험적인 예술,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며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포용해왔고, 서촌 역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소상공인들이 모여 살며 개성 넘치는 공간들을 만들어낸다.


지난 2015년, 흔히 ‘공연의 메카’로 불리는 대학로가 아닌 서촌에 터를 잡게 된 것도 “서촌 특유의 고즈넉한 공간적 색깔, 그곳에서 발생되는 이야기, 더 다양한 창작자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하는 이지연 대표의 의지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극장의 이름인 ‘공간서로’ 역시 이야기를 담고, 예술을 담는 ‘공간’으로서의 역할과 그로써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예비 창작자들의 사랑방이자 연구소 같은 공간”


현재 공간서로는 신진영 프로듀서가 운영 중이다. 신 프로듀서와 공간서로의 첫 만남은 ‘대관 문의’로 시작됐다. 신 프로듀서는 한 공연의 프로덕션 매니저로서 공간서로라는 공연장을 처음 알게 됐고, 이후 이 공간에 애정을 느끼고 또 다른 공연을 올릴 때마다 공간서로 대관에 직접 나섰다. 그러던 중 공간서로가 새로운 운영자를 찾으면서 신 프로듀서에게 그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한 작품과 작가가 성장하려면 다양한 경험과 환경이 필요하잖아요. 안타깝게도 많은 극장이 ‘테스트’의 개념보다는 ‘완성된 공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공간서로에서 대관을 하면서 이곳은 테스트를 돌리는 작품들에게도 열려있는 공연장이라는 걸 느꼈어요. 흔하지 않은 경우죠. 평수가 작은 것 대비 설비들 스펙도 좋아서 작품의 초기 프로덕션을 돌리기에도 좋은 극장이고요. 더구나 작은 규모의 작품이라고 해서 쉽고, 간단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 공간은 대관하러 들어온 창작자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 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이곳의 여러 환경 중에선 ‘사람’이 속해 있어요. ‘대화’가 생산된다는 점이죠.”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실제로 공간서로는 자체공연을 꾸준히 올리면서도 대관도 꾸준히 진행하는데, 다른 공연장처럼 단순히 ‘공간 대여’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관으로 문의를 하셨다가도 협력의 가능성을 발견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대화를 통해 협업의 방식으로 바뀌는 경우인 거죠. 공간을 대여하면서 모든 창작진을 완비해서 작업을 하지 않다보니 어떤 부분을 협조하고, 만들 수 있을지 가능성을 타진하는 거예요. 극장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흥미를 가지시더라고요. 단순히 공간만 대여하는 형식 보다, 대관하러 오셨다가 (협업)제안서를 하나 더 가져오는 현상들은 저희 공간서로가 추구하는 행보와도 맞닿아 있어요.”


큰 틀에서 공간이 가지는 이지연 대표의 기존 방향성은 유지되지만, 운영자에 따라 공간서로의 색깔이 조금씩 변화된다는 점도 공간서로의 특색이다. 첫 번째 운영자 체제 당시엔 국악과 음악이 활성화되어 있었다면, 두 번째 운영자 체제에선 다원예술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3년 전부터 신 프로듀서가 이끄는 현재의 체제에선 본 공연으로 나아가기 전, 창작진을 만드는 실험적인 공간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종의 ‘문화예술 연구소’인 셈이다.


“한 작가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 공간이 쓰임을 다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리서치 단계는 1층에서 토론을 하고, 재료 실험이나 테스트는 지하 극장이나 2층을 쓸 수 있고요. 그런 실험을 하고 하나의 프로덕션이 이 건물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다면 공간서로가 가장 잘 사용되는 게 아닐까요? 하나의 장르 특성화로 가기보다 얼마만큼의 쓰임을 하느냐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갤러리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공간서로로 흡수해서 개방하는데, 이 공간 역시 실험극장처럼, 실험갤러리로 사용해주셨으면 합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2015년부터 10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새로운 창작자들과의 협업 기회를 얻는 건 늘 고민이다. 사실상 창작자들이 유입이 곧 공간서로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두드림을 통해 작업을 타진해볼 수밖에 없는, 조금은 수동적인 위치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공모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또 오늘날에 창작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물리적인 공간을 어떻게 향유하는지 스터디도 진행하고 있어요. 서로가 노력해야 만남이 촉발되니까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촌이라는 동네의 특수성을 살려 주변 상권과의 협업도 논의 중에 있다. 신 프로듀서는 “근처에 디자인 스튜디오, 퍼포먼스·문학 활동 관련 창작자들이 많다”며 “서로 매개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술창작자들 간에 연대에 관심이 많다. 운영하는 사람들끼리 연대가 필요하다”며 “소비자 입장에 맞춰 운영시간을 조율, 연계 프로그램 기획 등 협업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쉽고 편안하게 창작을 논하고, 테스트를 돌리고, 협업할 기회를 창출하고 그런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으면 해요. 어느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이 모인 창작의 요충지 같은 공간서로가 되길 바랍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