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홀로 트럼프에 대응할 순 없다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5.01.17 07:00
수정 2025.01.17 09:03
한덕수 이어 '지휘봉' 잡은 최상목,
외교·안보 수습 위해 숨가쁜 일정 소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앞에서 한계는 극명
'여야정 협의체' 활성화 시급해
지난해 12월 3일 이후 현실이라고 믿기 힘든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를 시작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그리고 현직 대통령의 체포와 구치소 수감까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이어지며 국가 전반이 혼돈에 빠졌다.
혼란의 중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의 뒤를 이어 얼떨결에 지휘봉을 잡게 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의 긴 직함 만큼이나 복잡하고 무거운 책임 속에서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며 분투하고 있다.
무수한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외교·안보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로 정상 외교는 멈춰섰고,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의 방한 등 중요한 외교·안보 일정이 모조리 중단됐다. 그 여파로 국제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비상계엄 발효 2주 후 하락하는 대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 권한대행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처음으로 외신 기자들을 대상으로 공동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수습에 나설 정도였다.
최 권한대행 또한 대부분의 시간을 외교·안보 문제 해결에 쏟았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와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일본의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 G7·EU 주한 대사들을 접견해 불안정한 동맹의 균열을 틀어막는 데 주력하고, 정부 청사에 중국과 유럽계 경제인들을 이례적으로 초청해 한국 경제에 대한 지속적인 신뢰를 당부하며 "한국은 여전히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앞에선 최상목 대행의 한계는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기업가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너'가 없는 한국 정부를 신뢰하거나 진지하게 상대해줄 리 없단 지적이 지배적이다. 비상계엄 사태 초기부터 전문가들이 경고해온 문제였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은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한국에 대한 언급을 철저히 피하고 있다. 그의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 하지 않았다.
이 시각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야가 힘을 모아 최 대행과 함께 헌정 사상 유례 없는 이중의 공백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게 마땅할테지만,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 듯했다. 여당은 대통령 엄호에만 급급하고, 야당은 조기 대선을 노리며 정권 교체에 눈이 멀어 있다.
지난해 말 출범한 여야정 국정협의체는 존재감조차 희미해졌다. '협력'이라는 단어는 당리당략 속에 휘발됐다. 정치권의 분열이 대외 불확실성을 부채질하며 국가라는 배를 더욱 깊은 혼돈의 바다로 떠밀고 있는 형국이다.
최 대행 홀로 트럼프 당선인에 대응하기 역부족이란 점은 국회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의 직접적인 생활과도 직결된 외교·안보 앞에서는 여야도, 색깔도 무의미하단 것도 말이다. 초가집이 불에 휩싸인 상황에서 서로의 이익을 계산하고 다투는 것은 어리석음을 넘어선 직무유기다. 지금 국정 정상화보다 우선시 될 수 있는 것은 무엇도 없다. 정치의 본질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해야만 한다. 여야정 협의체의 활성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