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열되는 '넥스트 스마트폰' XR 경쟁…韓 부품사도 웃을까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4.12.14 06:00
수정 2024.12.14 06:00

메타·애플 이어 삼성도 구글·퀄컴과 손잡고 XR 기기 내년 출시

가격, 무게, 편의성, 사용성 등 소비자 선택권 넓어져

실제처럼 생생한 화면 구현 관건…삼성·LGD, 기술 개발 총력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구글 캠퍼스에서 진행된 'XR 언락(XR Unlocked)' 행사에서 소개된 XR 기기 '프로젝트 무한(無限)' 관련 이미지ⓒ삼성전자

삼성전자의 XR(확장현실) 기기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메타, 애플이 진출한 XR 시장에 삼성마저 가세하면서 'XR 대중화 시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들의 간택을 받기 위한 디스플레이 및 각종 부품업체들의 물밑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구글 캠퍼스에서 개발자 대상으로 열린 'XR 언락(XR Unlocked)' 행사에서 '안드로이드 XR' 플랫폼과 이를 탑재할 '프로젝트 무한'을 소개했다.


지난해 2월 갤럭시S23 언팩에서 XR 시장 참전을 공식화한 삼성전자는 1년 10개월 만에 구글, 퀄컴과 3자 협력한 XR 기기 실물을 공개했다. 디바이스 제조는 삼성이 주도하되 OS(운영체제), SW(소프트웨어)는 구글과, 반도체·칩셋은 퀄컴과 협력하는 방식이다.


안드로이드 XR은 삼성전자, 구글, 퀄컴이 공동 개발한 플랫폼으로, AI 모델 구글 제미나이(Gemini)가 탑재되며 퀄컴의 스냅드래곤 XR2플러스 2세대가 적용된다. 안드로이드 XR이 탑재되는 '프로젝트 무한'은 내년 출시된다.


XR은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포괄하는 단어로, 몰입감과 직관성을 갖춰 모바일을 뒤이을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을 받고 있다. 개인이 직접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라는 점에서 고객 접점을 대폭 늘릴 수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회계·경영컨설팅 업체 PWC는 VR ·AR 산업의 글로벌 GDP(국내총생산) 창출 규모가 2025년 4764억 달러에서 2030년에는 1조5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는 삼성의 신규 XR 기기가 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지 주목한다. 그간 삼성은 기어 VR(2014년), 오디세이 플러스(2018년) 등 관련 기기를 출시했으나 별 다른 반향은 일으키지 못했다. 하드웨어의 기술적 한계, 높은 가격, 콘텐츠 부재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 메타, 애플 등 빅테크들이 이 시장에 속속 진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격, 무게, 콘텐츠, 플랫폼 등 특징을 세분화함에 따라 XR 새 판이 짜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메타 퀘스트3.ⓒSKT

현재까지 가장 장악력이 큰 곳은 메타다. VR 스타트업 오큘러스를 2014년 인수하며 XR헤드셋 시장에 진출한 뒤 2020년 오큘러스 퀘스트2, 2022년 메타 퀘스트 프로 등을 줄줄이 내놨다. 작년 10월부터 판매한 '메타퀘스트3'는 3개월간 100만대가 팔렸다.


메타는 지난해 VR 피트니스업체 '위드인', 스마트렌즈업체 '럭섹셀', 광학기술 스타트업 '개리샤프 이노베이션스'를 인수하는 등 XR 시장을 잡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선두주자 메타를 잡기 위해 애플도 지난 2월 XR 헤드셋 '비전 프로'를 출시하며 XR 기기 전쟁에 뛰어들었다. '공간 컴퓨터'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비전 프로를 차별화를 꾀한 것이 특징이다.


공간컴퓨터는 현실세계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와 환경 사이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기를 말한다. 그러나 3500 달러라는 높은 가격과 저가 제품 공세로 시장에서는 비전 프로의 올해 판매량이 50만대를 밑돌 것으로 본다.


현재까지는 미국 업체들이 선전이 두드러지나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IT기업도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엘스리얼(Xreal)은 AR 기술 스타트업으로 AR 안경 제품 'Nreal Light(엔리얼 나이트)' 2020년 일반 소비자용으로 출시했다. 이후 2022년 더 가벼워진 '엔리얼 에어', 2023년 차기작 '엑스리얼 에어2', 2024년 고급형 '엑스리얼 에어2 울트라'를 출시하며 AR 안경 시장에서 선두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일본 소니의 경우 자사 콘솔 플랫폼에 대응하는 VR 헤드셋에 집중하고 있다. 2016년 'PS VR'을 출시하며 VR 헤드셋 시장에 진입했고 2024년 1월 산업용 VR 헤드셋을 공개했다.


애플 비전프로를 착용한 모델.ⓒ애플

글로벌 IT기업·스타트업 가세로 XR 시장이 커지면서 디스플레이·부품사들도 수혜를 얻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디스플레업계는 마이크로 디스플레이에 주목한다.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는 실리콘 웨이퍼를 기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올레도스(OLEDoS·OLED on Silicon)'와 '레도스(LEDoS·LED on Silicon)로 불린다. 실리콘 웨이퍼를 기판으로 사용하면 높은 화소 수를 구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제품 크기와 무기를 줄이는데도 도움을 준다.


애플이 출시한 비전프로에도 올레도스가 탑재됐다. 이 올레도스를 단독 공급한 일본 소니는 2011년 올레도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바 있다.


애플 뿐 아니라 삼성전자가 내놓을 XR 헤드셋에도 소니 올레도스가 적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강민수 수석연구원은 3월 열린 컨퍼런스에서 소니가 화이트 올레드(W-OLED) 방식의 올레도스를 삼성전자에 공급할 것이라고 전했다.


소니에 질세라 한국 기업도 글로벌 제조사들과의 협업을 위해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를 위해 지난해 미국 RGB 올레도스 전문기업인 eMagin(이매진)을 인수하고, 전담팀을 별도로 꾸려 양산을 준비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SID 디스플레이 위크 2024에 선보인 올레도스용 'FSM'ⓒ삼성디스플레이

올해 1월 열린 CES에서는 RGB 방식의 초고화질 올레도스를 선보였다. 크기는 1.03형 초소형으로 500원 동전만큼 작지만, 화소 밀도가 3500PPI(1인치당 픽셀수)에 달해 4K TV 1대와 비슷한 선명도를 보여준다. VR용 디스플레이는 외부의 빛이 차단된 상태에서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일반 디스플레이보다 높은 화면 밝기와 해상도를 필요로 한다.


지난 5월에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위크 2024'에서 RGB 올레도스 용 3500PPI 파인실리콘마스크(FSM) 실물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RGB 올레도스는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구현을 위해 RGB 서브픽셀 크기를 수 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증착해야 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를 위해 8인치 실리콘 웨이퍼를 기반으로 FSM을 제작했다. FSM은 기존 파인메탈마스크(FMM) 대비 더 조밀한 픽셀 구현이 가능해 RGB 올레도스 제조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이청 당시 삼성디스플레이 중소형 사업부장(부사장)은 지난 4월 'IMID 2024' 개막식에서 XR 기기용 마이크로 디스플레이에 대해 "아직은 가격과 무게 등의 장벽이 존재하지만, 이런 부분을 개선한 디스플레이가 나온다면 XR기기 시장은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CES 2023에서 0.42인치 3500PPI 올레도스 시제품을 공개한 바 있다. 올해 디스플레이 전시회 'SID 2024'에서는 화면 밝기와 해상도를 기존 대비 획기적으로 높인 VR용 올레도스 신기술을 공개했다.


LG디스플레이 올레도스는 신규 개발한 고성능 OLED 소자에 빛 방출 극대화 기술 MLA(Micro Lens Array)를 결합해 휘도(화면 밝기)를 기존 대비 약 40%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다.


스마트워치용 올레도스도 공개했다. 1.3인치 크기에 4K 해상도로 손목 위에서도 콘텐츠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무안경 3D 기술인 ‘라이트 필드 디스플레이(LFD, Light Field Display)’ 기능까지 탑재해 마치 홀로그램과 같은 효과를 구현한다.


이밖에도 LG디스플레이는 LX세미콘·SK하이닉스와의 협업을 통해 올레도스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5월 14일(현지시간) 美 새너제이에서 열린 'SID 2024' 전시회에서 LG디스플레이 모델이 1.3인치 올레도스(OLEDoS)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LG디스플레이

이처럼 IT 기업들이 앞다퉈 기술 개발 및 양산 구축에 힘을 쏟고는 있지만 XR이 '넥스트 스마트폰' 위상을 가지려면 생태계 구축이 더 탄탄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확한 타깃 부재, 적은 콘텐츠, 높은 가격, 무게 등이 XR 기기 대중화에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는 만큼 디스플레이 패널 등 일부 기업이 아니라 관련 소부장 기업과 협업해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R&D(연구개발), XR 부품 지원, 콘텐츠 핵심역량 확보 등이 거론된다.


산업연구원은 '주요국 XR산업 동향 및 국내 산업 활성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XR 전용 디바이스 개발, 실감형 콘텐츠 구현을 위해서는 첨단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광학 모듈 등 핵심부품이 필요하며, 향후 XR 시장의 확대에 대비한 국내 핵심부품 R&D의 선제적인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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